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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Jun 30. 2020

삶은 연속되는 과정이다

삶이 실패했다고 느낄 때.

살면서 성공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을까?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서 이뤄 본 경험이나 원하는 결과를 얻었던 적이 있었을까? 10대 때는 ‘대학’이라는 목표를 가지게 되지만 나에게 ‘대학’은 그렇게 간절한 목표는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나에게 어울리는 곳에 가는 것일 뿐 목표를 정해서 그곳에 오르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대학에 와서도 성적에 그렇게 목을 매지 않았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수업이면 열심히 했고, 그게 아니면 대충 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이 또한 그리 간절하지 않았다. 


삶을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말하기가 힘든 게 남들처럼 열심히 살았다는 느낌이 없었다. 간절히 원하는 게 없었고, 원하는 목표도 없었으니 당연히 성공도 없었고 실패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채로 대학을 졸업할 때쯤 나에게 풀리지 않는 문제가 앞에 놓였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이 물음으로 인해 내 삶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예정에도 없었던 세계여행을 떠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껏 무미건조했던 내 삶에 아주 뜨거운 불을 지폈던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게 생겼고, 그것을 얻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20대 후반 나의 모든 시간과 젊음을 다 바쳐 여행을 떠나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는 성공이었다. 호주에서 1년 동안 돈을 모아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호주를 도착하자마자 내가 세운 목표는 돈을 모아 호주를 떠나는 것이었다. 호주를 떠나는 공항에서 난 ‘만족’이란 게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고, ‘성취’이라는 게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6개월을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삶은 연속적인 것이다. 단편 영화가 아닌 장편 다큐멘터리인 것이다.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해서 내 삶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순 없다. 그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다른 것들도 그렇다. 반대로 어떤 한 부분에서 실패를 했다고 내 삶 전체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패를 했을 당시엔 마치 내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내린 것처럼 절망하고 아파하고 삶 전체가 실패한 것처럼 느껴진다.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난 다음 스텝을 밟기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그동안 미뤄뒀던 ‘취업’이란 걸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내 나이 스물아홉에 가진 스펙이 거라곤 대학 졸업장뿐이었다. 그래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세계여행 뽕이 들어서 인지 그냥 아무 회사나 들어가서 일하고 싶진 않았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냥 월급만 받는 회사원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이 구체적이진 않았다. 그냥 막연했다. 


여행을 하며 알게 된 사회적 기업이 있었다. 스타트업 회사이긴 하지만 그 회사가 가진 비전이나 추구하는 바가 인상적이라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무조건 그 회사에 들어가려고 했다. 결국 그곳만 바라보고 서울로 상경했지만 정작 그 회사에서 난 도망쳤다. 이유는 사실 지금도 정확히 모르겠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 말곤 다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스스로 첫 번째 실패를 했다.

그 이후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부모님께는 큰소리 떵떵 쳐 놓고 서울로 올라왔기 때문에 회사에서 도망쳤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래서 급한 김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난 지금까지 실패한 4년을 보냈을까? 아니면 성공한 4년을 보냈을까?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사회적으로 정해진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개인이 스스로 느끼는 바가 실패에 가까우면 실패이고, 성공에 가까우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난 아주 철저히 실패한 4년을 서울에서 보냈다. 그 이유는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 생활에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지금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월세를 내는 것부터 시작해 통장의 잔고 또한 변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길을 걷다 문득 이 길을 작년에도 걸었던 기억이 났다. 그 당시 길을 걸으며 고민했던 걸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고 있었다. 1년 동안 한 발짝도 앞으로 내딛지 못했던 것이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은행 경비원을 하고 있는 내가 성공했다고 말하긴 힘들 것이다. 난 4년간 무엇을 했을까?


은행 경비원을 시작한 건 3년 전이다. 그때는 아르바이트 대신 구한 직장이었기에 내가 원하는 일을 찾을 때까지 임시로 하기로 생각했다. 당시에 문화기획 일을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기 위해 10개월 만에 퇴사를 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공모전에 도전하고 창업을 하기 위해 1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였다면 못했을 일을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일의 진척은 점점 더뎌졌다. 각자가 일에 대한 태도와 무게가 달랐기에, 그에 따르는 실망과 책임은 서로를 갈라서게 만들었다. 그렇게 두 번째 실패를 했다. 한 동안 수입이 없어 컵라면만 먹으며 지냈는데 이젠 다음 달 월세를 낼 돈도 없었다. 그렇게 난 다시 은행 경비원으로 돌아왔다. 내가 해 본 일이라곤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평생 은행 경비원으로 살 순 없었기에 다른 것을 해보기로 했다. 바로 책을 쓰는 일이었다. 1년 6개월간의 여행을 글로 써서 여행 에세이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6개월간 틈나는 대로 열심히 글을 썼다. 하지만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다. 현재의 나와 글 속의 내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난 행복하지 않은데 비해 글 속에 있는 난 행복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여행 에세이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갖고 있었다. 여행이라고 하면 무조건 희망찬 이야기를 써야 할 것 같았다.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들만 써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런 스토리를 짜내다 보니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인양 지어내기도 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부분도 그냥 적당히 퉁 쳐 버리는 등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하는 것임에도 스스로가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 지경이 되니 더 이상 내 글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봐도 너무나 형편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세 번째 실패를 했다.


글쓰기를 실패한 후 한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쓰고 싶은 글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도 없었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그냥 아무런 변화 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일 년 후에도 똑같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우울해졌다. 계속된 실패에 긍정적이었던 내가 점점 부정적인 생각과 말들을 하게 되었고, 패기 넘치고 자신감 가득했던 내가 점점 무기력하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격증을 따고 토익점수를 만들어 적당한 사무직 회사에 취직을 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자신이 없었다. 한 번도 이 사회 시스템 안에서 성공과 성취를 느껴 본 적이 없는 나로선 토익 점수를 만드는 것과 자격증을 따지 못했을 때 오는 실패와 좌절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도전하지 않았다.


더 이상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너무 힘들었다. 더 이상 타지에서 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부산으로 다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식으로 서울을 떠나면 나에게 서울이란 곳은 실패한 곳으로 기억될까 봐 무서웠다. 무엇보다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었다.


작년 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이런 나의 모습을 글로 쓰면 어떨까 생각했다. 낮에는 은행 경비원을 하고 밤에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조금은 지질하고 많이 가난하지만 이런 나의 솔직한 모습을 글로 쓴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에게 1년이란 시간을 더 주기로 마음먹었다.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기준은 내가 정하는 것이기에 올해 안에 책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자고 마음먹었다. 올해가 나의 서울 생활의 마지막 해가 될 것 같다. 올해는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까? 지금까지 실패해 왔던 서울 생활에 그나마 작은 성취를 얻을 수 있을까? 올해도 절반이 흘렀다. 시간이 많진 않지만 조급하지 않기로 한다. 만약 실패한다 하더라도 전처럼 우울해하거나 절망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지금도 이미 충분하니까. 


삶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실패와 성공,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게 바로 삶이다. 삶은 연속되는 과정일 뿐이다. 삶엔 결과가 없다. 그저 계속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에 실패와 성공을 논할 순 없다. 다만, 유한한 삶이기에 끝에 인생이 어떠했는지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실패냐 성공이냐로 구분 짓기는 아마도 힘들 것이다. 삶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난 더 이상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그 순간에 나로서 살아있느냐에 내 온 힘을 다해 느낄 뿐이다. 삶엔 실패도 성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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