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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Jul 16. 2020

빵과 베지밀 그리고 오 만원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은행을 방문하는 분들 중에 나를 거치지 않고 가는 분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항상 문 앞에 대기 중이기 때문에 나의 인사를 가장 먼저 받으시고 가장 마지막에 받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도 가장 많이 받기도 한다. 사실 은행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진 않아 큰 도움은 못 드리지만 안내를 하는 것과 기본적인 사항 특히 스마트 폰 어플이나 스마트 폰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잘 알려드리는 편이다. 


특히 이번 5월은 재난 지원금 때문에 정말 너무나도 정신없는 한 달을 보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어 스마트 폰을 자유롭게 만질 수 있는 사람은 문제가 없지만 아직 스마트 폰이 익숙하지 않은 중년의 어르신들이나 노인 분들은 아무래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실 알고 나면 어렵지 않지만 모르면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난 지원금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에게 방법을 알려드리거나 대신 받아 드렸다. 이런 것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것들을 요청하신다. 인터넷 송금은 물론이고, 통장 정리부터 공과금 납부, 계좌이체, 입출금 어쩔 때는 집에 티브이가 나오지 않는다고 나 보고 대신 전화 상담을 해달라고 할 때도 있다. 은행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것들도 나에게 도움을 구할 때면 ‘내가 이런 것 까지 해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어디다 도움을 청할 때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나에게까지 온 게 아닐까를 생각하면 그냥 뿌리 칠 수만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렇게 도움을 드리면 꼭 답례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항상 도와줘서 고맙다고 바카스를 사 오시는 분도 있고, 커피를 주시거나 어쩔 때는 밥 먹고 자리로 돌아오면 빵이 한가득 올려져 있을 때도 있었다. 가끔 할머니들은 나에게 현금을 주실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현금을 받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서 극구 사양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혼이 났다. 어른이 주면 받는 거라고 하시면서 굳이 주머니에 돈을 쑤셔 넣으셨다. 밥이라도 한 끼 사주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 이 돈으로 밥 사먹으라시며 만 원씩 주고 가셨다. 오히려 내가 더 감사했다.


하루는 자주 오시던 할머니가 계신데 말씀도 조용조용하게 하시고 점잖으신 분이셨다. 할머니가 은행 볼 일을 다 보시고도 나가지 않으시고 자꾸 내 주위를 맴돌고 계셔서 도와드릴 게 있나 싶어 다가가니 슬쩍 오 만원 짜리를 책상에 두고 휙 나가시는 게 아닌가. 아니 만 원도 아니고 무려 오 만원이나 되는 돈을 난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쫓아 나가 다시 돌려 드리려고 하니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항상 마음속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서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서 그랬어. 총각 그냥 받아줘.” 

“네... 제가 더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듣는데 진심이 느껴졌다. 할머니가 왜 내 주위를 맴도셨는지 어떤 마음으로 돈을 건네셨는지를 말이다. 난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건 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날 받은 그 오 만원은 세상에서 가장 진실되고 깨끗한 돈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루는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은행에 오셨다. 뭔가 묻고 싶은 게 있는 거 같은 눈치여서 내가 먼저 다가가 “어떤 걸 도와 드릴까요?” 하고 물으니 카카오 뱅크 사용법을 몰라서 묻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알고 보니 돈을 보낸 사람이 아주머니 카카오 뱅크로 보내었는 데 사용법을 몰라서 난처하다고 하셨다. 난 워낙 자주 쓰다 보니 이 정도는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해 도와드리려 했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비밀번호를 모르시는 바람에 도와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비밀번호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해봤지만 잘 되지 않아 포기하려고 했는데 결국 비밀번호를 찾아내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사실 카카오 뱅크면 냉정하게 말하자면 타 은행권이라 굳이 해드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도움을 청하는데 그냥 무시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 굳이 도와드렸다.


다음날 아주머니는 다시 오셨다. 빵과 베지밀을 사들고 오셨다. 


“어제는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냥 가는 게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요.”

“아닙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사실은 아주머니를 보고 난 엄마를 떠올렸다. 나이 때도 비슷해 보였고, 엄마도 스마트 폰을 다룰 줄은 알지만 아직 인터넷 뱅킹을 할 때면 항상 나 아니면 동생에게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도와줄 때 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었다. 이럴 때면 항상 뿌듯한 마음이 든다. 물론 대가를 바란 것이 아닌 그저 일의 연장선으로 생각했지만 예기치 않게 대가가 돌아오면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진 않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 않다 해도 사실은 괜찮다. 난 일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받는 일은 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어쩔 땐 하찮은 일을 하고 있는 기분도 들고 발전적인 일이 아닌 정체되어 있는 일을 하고 있어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차별에 억눌리고 힘들 때도 있지만 이렇게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나로 인해 괜찮아지면 잠깐이지만 만족감을 느끼고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조금은 생기는 것 같다. 그렇게 난 오늘도 은행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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