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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Aug 17. 2020

신용카드 판매 1등인 직원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은행은 순환 근무를 한다. 그래서 매년 연말이 되면 오래된 사람은 다른 지점으로 떠나고 새로운 직원이 온다. 하지만 은행 경비원만은 그대로다. 우리는 순환 근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지점에 10년 넘게 근무하시는 분도 계신다는 말을 듣곤 존경심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은행원들도 짧게는 1-2년에서 길게는 4-5년 정도 한 지점에 있는다. 내가 있던 지점에도 오래된 직원이 있었다. 그는 은행에 입사하고 발령받은 첫 지점에서 4년째 근무하고 이제 5년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나와 비슷한 30대 남자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항상 나와 함께 밥을 먹었다. 1년 동안 같이 밥을 먹었지만 난 그와 친해질 수 없었다. 뭔가 보이지 않는 벽이 놓여 있는 느낌이었다. 나이가 비슷하다고 했지만 그 보다 내가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한순간도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 적이 없었다. 물론 나 또한 굳이 가까워지고 싶진 않았다. 그는 뭔가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열심히 였다. 누구보다 일을 열심히 했고, 심지어 잘했다. 그래서 상도 많이 받고 승진도 빨랐다. 입사하고 5년 만에 과장을 달았고, 전국 모든 은행 직원들이 그를 알았다. 그는 신용카드 부분 은행 전체 판매 1등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같이 손님들에게 신용카드를 팔았다. 그리고 잘 팔았다. 특히 내가 있던 은행은 어르신들이 많았기 때문에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쓰지도 않을 신용카드를 많이 팔았던 것 같다. 물론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손님께도 다 권유를 했을 것이다. 그는 늘 어떻게 하면 잘 팔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 같다. 은행 문을 닫으면 그의 머리를 늘 헝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그는 인정을 받고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생각했다. 과연 무엇이 그를 그토록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일까? 그냥 적당히 월급만 받을 수도 있고 그런 사람도 있는데 그는 그런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은 밥을 먹으며 물어봤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냐고 말이다.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그냥 좀 없이 살았어요. 그래서 열심히 하는 게 몸에 밴 거 같아요.”     

열심히 사는 것도 습관인 것 일까? 없이 산다고 모든 사람이 다 열심히 살진 않을 텐데 난 그가 한 대답으로는 납득이 가질 않았다. 뭔가 더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만 했다. 왜냐면 난 그처럼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그렇게 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의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건 또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와 나를 비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비교 대상 자체가 되지 않으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한심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이 나이에 은행 경비원이나 하고 있으니까. 그것도 지방에서 올라와 월세 내면서 사는데 직업이 은행 경비원에다가 돈벌이도 안 되는 글이나 쓴답시고 있으니 아마도 한심하게 생각했거나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망상이다. 사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고 알 방법도 없다. 설령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관계없다. 다만, 그가 그렇게 열심히 살면 살수록 상대적으로 난 더욱 위축되는 게 조금씩 느껴졌을 뿐이다. 

    

하루는 이런 적도 있었다. 출근을 했는데 모르는 직원이 와 있었다. 그래서 새로 오신 직원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신입 직원도 아니고 1년인가? 2년 차 직원인데 다른 지점에서 내가 있는 지점으로 신용카드를 어떻게 파는지 배우러 왔다고 했다. 그래서 새로 온 직원은 그분 뒤에 붙어서 어떻게 판매하는지 하나하나 꼼꼼히 적으면서 물어보고 했다. 타의 귀감이 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매번 1등을 놓치지 않는 그를 지점장님은 항상 예뻐하셨다.     


내가 있던 지점은 꽤 회식을 자주 했다. 그때마다 그는 꽤 많이 취하곤 했다. 지점장님이 술을 좋아하셨던 터라 그는 늘 지점장님과 함께 술을 마셔서 만취하는 날이 많았다. 그는 취하면 꼭 나에게 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말을 놓자고 하면서 친하게 다가왔지만 다음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주임님”으로 칭호가 바뀌어있고, 다시 높임말을 꼬박꼬박 썼다.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그는 지점에서 그리 높은 위치도 아니거니와 자신보다 아랫사람인데 나이도 많으니까. 어느 정도 불편했을 거다. 아마도 내가 그보다 나이가 어렸다면 조금 친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그는 한 해가 지나고 다른 지점으로 발령받아 떠났다. 5년간 지점에 있으면서 내방하는 손님들과 꽤 친밀했고, 손님들도 그분을 좋아했다. 그래서 떠나는 소식을 들은 손님들은 그분에게 선물을 사 들고 오셨다.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손님들도 좋아했던 거 같다. 특히 순대 할머니의 별명도 그가 지었다. 순대 할머니는 유독 섭섭해했다. 떠나는 그는 남아 있을 손님들에게 짧은 편지를 남기고 떠났다. 그가 떠나고 가끔 그의 소식이 들려올 때가 있다. 직원들끼리 이야기를 할 때면 그의 이름이 언급될 때가 있다. “올해도 걔가 1등 했지? 정말 대단해” 새로 온 신입직원도 그를 봤다고 했다. 신입 직원 교육을 받으러 갔는데 그가 와서 강의를 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변함없이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것이다. 난 그의 그 모습이 어쩔 땐 짠하기도 하면서 어쩔 땐 존경스럽기도 했다. 과연 난 그처럼 뭔가에 최선을 다 해본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그는 승진을 하고 지위가 높아져도 지금 모습 그대로일 것 같다. 가끔은 생각한다. 그를 일터가 아닌 사석에서 만난다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가 항상 건강히 잘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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