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했지만 여전히 글은 씁니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땐 막연했다. 뭔가를 쓰고 싶었지만 뭘 써야 할지 몰라 그저 일기만 썼다. 그러다 친구에게 이제부터 글을 쓰기로 했다고 말했더니 “글쓰기 챌린지”를 해보라고 조언을 해줬다. 소정의 돈을 내고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하루에 하나의 글을 주제에 맞게 써서 카페에 올리는 형태였다. 이것을 100일간 꾸준히 하는 모임이었다. 글감을 주는 이는 코치님이 따로 계셔서 그분이 글감을 매일 보내어주셨다. 그리고 글을 꾸준히 쓸 수 있게 옆에서 동기부여를 해주시고 글에 대한 간단한 피드백도 해주셨다. 그렇게 꾸준히 100일 동안 글을 썼다. 처음엔 길게 글을 쓰는 게 힘들어 A4 반장을 채우는 것도 힘들었다. 물론 관심 있는 주제는 쓸 말이 많아서 괜찮았지만 관심이 없는 주제는 글을 써내려 가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100일 동안 꾸준히 썼다. 물론 100일을 다 채우진 못했다. 96일인가? 썼던 거 같다. 하지만 100일을 다 채우는 게 목표가 아니라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 면에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썼기 때문에 나름대로 만족했다.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니 어떤 이는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물론 힘은 들었지만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기에 힘들어도 기분 나쁜 힘듦은 아니었다.
그 후에도 꾸준히 글을 썼다. 주제는 그때마다 생각나는 것들을 썼다. 주로 영감을 얻을 땐 아침에 출근하는 출근길에 특히나 많이 떠오른다. 이른 아침부터 출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얻기도 하고 문득 길을 걸으며 떠오르기도 한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 쓰고 싶은 글이 떠오르기도 하고 친구나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때마다 작게 메모를 해둔다. 쓰고 싶은 주제를 키워드로만 적어둔다. 그리고 나중에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그때를 상기시키며 글을 쓴다.
언제나 그런 글감이 떠오르는 건 아니다. 매일 글을 쓰고 싶지만 뭘 써야 할지 모를 때는 그냥 아무 말이나 쓰기도 한다. 낙서일 수도 있고, 그냥 일기일 수도 있고, 순간의 감정일 수도 있다. 사실 글쓰기에는 왕도가 없다. 그냥 쓰는 수밖에 없다. 유시민 작가가 말하길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뭐라도 쓰려고 했다.
쓰고 싶은 글감이 있어도 글이 잘 써내려 가지지 않을 때가 있다. 눈앞에 흰 화면 위에 까만 커서만 깜빡깜빡 거리는 것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만 보낼 때도 많다. 그럴 때면 천천히 기다린다. 머릿속의 글감에 대한 여러 가지 파편들이 흩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마치 퍼즐 조각처럼 한 조각 한 조각 짜 맞추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난감한 것은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은 글의 시작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관찰을 해봤지만 사실 그것에는 답이 없다. 그냥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시작하는 것도 어떻게 그냥 시작하는지 몰라 일단은 그냥 써 버린다. 그렇게 쓰다 보면 하나씩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것도 내일 다시 보면 별로라 삭제하고 추가하는 건 늘 있는 일이다. 글을 퇴고하면 할수록 더 좋은 글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퇴고만 하고 앉아 있을 순 없으니 그 적당히라는 기준을 스스로 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끝도 없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이슬아 작가의 영상이 떠서 봤다. 자신의 글 한 편을 매일 이메일로 보내주는 프로젝트를 했던 그녀는 자신을 연재 노동자라고 칭했다. 그렇게 매달 구독료를 독자들에게 받고 글을 보내주는 프로젝트로 인해 그녀의 글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이슬아 수필집을 독립출판물로 만들었고, 그것은 곧 그녀를 세상에 나오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도구가 되었다. 어느새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녀가 세바시라는 스피치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말했다. 그녀의 말 중 가장 공감 가는 내용은 바로 글을 씀으로 인해 하루의 삶을 두 번 사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었다. 어쨌든 글을 쓰려고 하면 세상 모든 것에 귀를 기울이고 눈을 부릅뜨고 보고 느끼고 들어야 한다. 그래서 그저 일상에서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일들을 스쳐 지나가게 놔두지 않고 붙잡아 둔다. 그것을 글로 쓸 때면 그때를 다시 상기해야 한다. 한 번은 경험하고 한 번은 상기하며 두 번을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은 나 또한 느낄 때가 많다. 이렇다 보니 그냥 지나가는 일상들이 그저 허무하게 흘러가는 하루가 아닌 무언가를 남기기 위한 하나의 특별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의미 있는 일 같다.
일상의 작은 일들은 쉽게 사라질지 모르지만 인생에 큰 사건이나 특별했던 일들은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잔상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것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이야기다. 우리의 기억은 때로 왜곡될 때가 있다. 오래된 것은 변하고 낡기 마련인 것이다. 그래서 기록을 해 둬야 한다. 1년 6개월간 여행을 하며 매 순간이 새롭고 특별했다. 하지만 그 특별한 순간들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필름이 낡아 부분 부분 끊기는 것처럼 그렇게 서서히 기억에서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그제야 기록이 중요하단 걸 느꼈다. 그래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한 것이다.
하루에 한 편의 글이라도 써내면 그날은 마치 하루를 잘 살아낸 날처럼 느껴진다. 오늘도 세상에 뭔가를 하나 남겼다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늘 무엇을 쓸지 고민한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오늘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쓰는 것이고, 쓴다는 것은 남긴다는 것이고, 남긴다는 것은 의지를 갖는다는 것이다. 의지를 갖는다는 것은 곧 나를 그리고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글쓰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