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퇴사, 대해고, 그리고 대단념
2022년 4분기에 진입하면서 채용 시장에 여러 급격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여러 매체에서 소위 '대OO 시대'라는 말로 채용 시장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설명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23년을 앞두고 채용 시장에 대해 전망하는 콘텐츠들이 조금씩 나오는 것 같은데, 나 역시 2022년 4분기 기사와 콘텐츠들을 살펴보며 2023년을 준비해보고자 이 글을 쓰게 됐다.
MZ 세대가 주도하는 '대(大) 퇴사 시대', 2022.10.13, 뉴스핌
"MZ 세대"라는 단어로 억지로 묶어서 트렌드를 해석하려는 움직임은 썩 유쾌하지 않지만, 최근 이야기하는 대퇴사 시대를 이끄는 건 MZ 세대로 대표되는 2030이라 할 수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청년층의 첫 직장 평균 근속 기간은 1년 6.8개월로 약 18개월 남짓이며, 임금 근로자 중 65.6%는 1년 2.3개월 만에 첫 직장을 그만둔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공무원 쪽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100대 1을 넘어서던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올해 29대 1로 떨어지며 43년 만의 최저를 기록했고, 20대 공무원의 약 44.1%가 이직을 희망한다고 답했다.
KBS '시사기획 창'에서는 <MZ, 회사를 떠나다>를 통해 2030의 퇴사 현상에 대해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이 영상에서 도출된 2030 퇴사 현상의 핵심은 '자율성'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일하고 싶은 곳에서, 내가 일하고 싶은 시간에 주도성을 가지고 일할 수 없다면 기꺼이 퇴사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회사에서 재택근무제, 자율출퇴근제 등 다양한 방식의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현상에 대한 대응책이라 할 수 있다.
대퇴사 시대의 연장선으로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라는 키워드도 함께 떠오르고 있다. 조용한 사직은 틱톡 발 신조어로, 퇴사하진 않지만, 이미 직장에 마음이 떠났기 때문에 최소한의 업무만 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맡은 업무를 '문제 생기지 않을 정도로' 처리하고, 정시 퇴근 후 원하는 일을 하는 것도 자율성의 맥락으로 볼 수 있다.
“1년 만에 해고될 줄이야”… 꿈의 직장 ‘빅테크’ 배신의 계절, 2022.11.22, 세계일보
대퇴사 시대의 맞은편에는 대해고 시대가 도래했다. 판데믹으로 인해 비대면 수요가 급증하며 파격적인 처우로 대규모 채용을 진행해 왔던 이른바 '빅테크 기업'들이 줄줄이 인력 감축을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 후 밀어붙인 50% 정리해고를 시작으로 메타 1만 1천 명, 아마존 1만 명, HP 6천 명 등 인력 감축 계획이 발표되었고,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11월 빅테크 기업의 확정 감원 규모는 3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지만, 금리 인상 전 벤처나 스타트업 쪽으로 흘러갔던 자금들이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이후 대폭 줄어들면서 실적 대신 사업 영역 확대에 집중해왔던 테크 기업들이 특히 많은 타격을 받았다. '보상 경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치열했던 개발자 채용 규모를 시작으로 많은 회사들이 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채용 자체를 하지 않는 걸 택하기도 했다.
“일자리 부족, 스펙도 부족”… 취준생 66%가 ‘구직 단념’, 2022.10.24, 동아일보
이런 상황이다 보니 취업준비생들의 심리적 위축이 심화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진행한 2022년 대학생 취업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4학년 또는 졸업 예정이거나 졸업한 대학생 10명 중 7명(65.8%)은 사실상 구직 단념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적극적인 채용이 어려운 상태에서 퇴사로 인해 발생한 결원을 채워 넣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빠르게 업무에 투입되어 성과를 낼 수 있는 경력직에 대한 선호도는 자연스레 높아지게 된다. 실제로 동일 조사에서 대학생 및 대학 졸업자들은 취업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경력직 선호 등에 따른 신입 채용 기회 감소(28.2%)를 가장 많이 꼽기도 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경제 불황을 겪고 있고, 가까운 시일 내 경제 회복을 전망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시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대OO 시대의 공란은 긍정적인 키워드가 채워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