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체인점
어느새 베를린 되너(Döner)가 8유로가 하는 시대가 왔다. 베를린 하면 대표적으로 소개되는 되너는 터키 음식인 듯 하지만 막상 터키에 가면 없다고 한다. 베를린으로 이민온 터키 사람들이 자신들의 음식인 케밥을 바탕으로 단순하게 샌드위치처럼 만들어낸 베를린의 음식이다. 되너는 길거리 노점에서 주문하자마자 얇은 또르띠야 같은 얇은 빵에 뜨끈뜨끈한 고기를 수북이 썰어 조미료 가득한 양념을 뿌리고 양파와 야채를 더해 마늘향이 나는 요구르트 소스를 가득 뿌려주는 양도 푸짐한 음식이다. 2014년 베를린에 처음 왔을 때 사 먹었던 길거리 되너가 2.5유로였다. 런던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막 넘어온 나로서는 잊지 못할 비현실적인 가격이었다. 2.5유로면 2파운드 겪인데 그 돈으로 런던에서는 슈퍼에서 껌두 개 살 정도인 가격이니까.
저렴한 스트리트푸드가 많아서인지 베를린에서 맥도널드는 되너에 비해 비쌌고 만만한 햄버거가게가 아니었다. 버거킹, KFC도 다 있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큰 인기가 없었고 그런 이유로 관광객이 많이 있는 중앙역이나 알렉산더플라츠에만 이런 체인점 패스트푸드 가게를 볼 수 있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스타벅스도 몇 없는 이곳에 그나마 성공한 체인점으로는 아인슈타인 카페 Einstein Kaffee가 있다. 체인점이긴 하지만 독일 다른 도시에는 없고 베를린에만 있다. 1978년도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문화(비너 카페하우스 Wiener Kaffeehaus)를 베를린에서도 즐긴다라고 시작되어 고풍스러운 실내 인테리어와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유명하다. 즉, 단순한 체인점이라기보단 약 200년 전 시민들의 카페 문화를 만든 곳이라 그런지 여전히 인기 있는 곳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큰 성공을 거둔 대형 체인음식점이 베를린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가격 경쟁력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길에는 더 싸고 맛있는 되너가 있고 따뜻하고 정겨운 로컬 커피숖이 있어서라고. 그런데 올해 여름,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한 카페체인점이 등장했다. LAP. 파란 간판에 요즘에 걸맞게 모던한 글씨체로 LAP이라고 크게 쓰고 미니멀한 인테리어로 시선을 끌었다. 듣자 하니 가격도 아메리카노는 1.5유로, 카푸치노는 2.5유로란다. 보통 커피숍의 아메리카노는 3유로 카푸치노는 4유로에 비하면 확실히 저렴하다. 단,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고 매장용 자동커피머신이라 커피맛이 너무 별로라는 평이 많았고 이를 풍자한 숏츠가 SNS상에 빠르게 퍼졌다. 이 새 카페이름을 알게 됨과 동시에 맛이 별로라는 평을 들은 것이다. 오픈한 지 반년정도 지나나 지금 베를린에 16개의 매장, 뮌헨에 5개, 함부르크에 2개의 매장이 있다고 하니 맛이 없어도 가격이 저렴하면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가 의아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성공이라기보다는 애초부터 큰 자본을 투자해 한번에 여러 개의 지점을 오픈하면서 이목을 끌었고 싼 값에 많은 매장으로 곳곳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 맛없어도 부담 없이 한잔 마실 수 있는 심리를 이용한 게 아닌가 싶었다.
전형적인 대기업의 마케팅 수법. 그렇지만 베를린사람들은 상업주의와 대기업을 누구보다 싫어한다지. 아니나 다를까 엊그제 밤 누군가 베를린의 모든 LAP 매장에 '페인트 공격'을 했다고 뉴스에 나왔다. 브랜드의 색인 파란색의 극명한 반대인 빨간색 페인트를 통으로 유리창에 부은 것이다. 무자비하게 저렴한 가격으로 밀고 들어오는 커피체인점이 오래된 지역 카페를 위헙한다는 비판이 많았고 환경보호에 한껏 예민한 베를린에서 부담 없이 일회용 컵을 대량사용하는 것도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16개의 매장이 같은 밤에 페인트 공격을 당했으니 단 한 명의 객기는 아닐 것이다. 나도 썩 좋아하지 않는 콘셉트의 카페였고 무엇보다 맛이 없다니 가볼 생각은 안 해봤지만 없어져도 크게 아쉽지 않을 것 같다. 베를린도 매년 쭉쭉 오르는 집값이며 높은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는 대도시이긴 하지만 이렇게나마 온몸으로 비판을 하는 걸 보니 아직은 삐딱한 베를린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