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좋아하는 게 뭐야?
예전 직장 동료 중에 손금을 잘 본다고 소문난 분이 한분 계셨다. 우연히 기회가 있었을 때 망설임 없이 내 손바닥을 쫙 펼쳐 보여드렸는데 다른 직원들에게 얘기할 때와는 좀 다르게 별말 없으셨다. 불길한 것일까. 뭐 안 좋은 거면 듣고 넘기자라는 심정이었는데, 하신다는 말씀이 '운명선이 안 보여서 잘 모르겠어요.'였다. 대부분의 성인들은 운명선이 어느 정도 나왔는데 간혹 안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서 '나쁜 것은 아니고' 어린아이들이나 자신의 방향이 아직 확실하게 자리잡지 않아서 안 나온 것일 수도 있다고 위로같이 남기신 멘트가 잊히지 않는다. 사실, 그때 속으로 조금 뜨끔했다. '아, 내가 이 회사에 오래 남지 않을 것이라는 게 너무 보였을까?' 하는 비밀을 들킨 것 같은 심정으로.
미술을 공부하고 현대미술 분야에서 일을 하다 모두가 힘들었던 코로나 시절 뜬금없이 회계분야로 회사에 취직했다. 전 세계가 꽁꽁 싸매고 빗장을 걸어 닫은 시기에 불안 높은 나는 큰 고민도 없이 변경했던 진로였다. 예술보다는 직장인. 그렇게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고 낯선 업무는 생소하지만 배우는 재미가 있었고 무엇보다 살뜰한 동료들 덕분에 즐거웠다. 코로나의 시기가 지나고 어느 정도 일상이 회복되었고 3년을 채워가는 즈음, 내가 계속 회계팀 일원으로 있을 것인가에 대에 한창 고민하던 시기에 재미 삼아 본 손금이었고 그 동료분이 아주 틀린 것 같진 않았다.
그 후, 몇 회사를 거쳐, 예전에 했던 다짐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내가 이렇게 착착 월급 받는 회사원으로 정년까지 살려고 유학온 게 아니지. 이 직장인 생활을 안 하려고 유학을 결심했었지!'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내 진로와 미래와 나 자신에 대한 질문과 고민이 세게 찾아온 2025년이다.
시간이 흘렀고 특별히 표 나게 한 것이 없었다. 불안해하는 마음만 있을 뿐 막상 새 프로젝트를 기획한다던가, 사업기획안을 어딘가에 보낸다던가 등등. 가까이서 나를 보는 친구들과 가족들은 이런 나를 지원하며 응원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우선은 시도해 보기를 원했다. 고민만 하지 말고, 생각만 하면 생각으로 끝나니 뭐라도 해봐야 되는지 안되는지 알 수 있다고. 그 끝에는 늘 같은 질문이 따른다.
"네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뭐야?"
"꼭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너에게 의미가 있고 하면 할수록 즐거운 것이 있지 않을까?"
글쎄, 남들은 다 그런 것이 있을까? 본인이 뭐를 좋아하는지 다 파악하고 있는 걸까? 수도 없이 들은 질문이지만 영원히 답을 모를 것 같은 질문이라 버겁다. 게다가 좋아만 한다고 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 같은데. 잘해야 하지 않겠나. '좋아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업으로 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 온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것'과 나의 직업을 연결시키자니 그저 막연할 뿐이다. 그럼, 좋아하는 것을 모르니 찾아야 할 텐데 그 또한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감도 안 잡히면서 서러웠다. 나이 마흔이 되어도 스무 살 때 했던 질문을 돌림노래처럼 다시 하고 있고 답은 여전히 모르는 나 자신이 하찮아 보였다. 그러나 이러지 말자. 정신 차려야 한다. 우울로 내려가려는 길목을 막아야 한다.
하나 다행인 건, 나를 깎아내리고 나를 업신여길수록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좀 안다. 수도 없는 반복을 통해 배운 것이다. 내 기분이 나를 바닥으로 내던져 놓더라도 나는 꽤 그럴싸한 사람이니까 어제 했던 일을 오늘도 무리 없이 해 나가면 된다. 사소한 글쓰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