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 다 호르몬 때문이에요!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날이 있다. 생리 시작하기 전날. 테마는 다양하다. 아니, 어떤 테마에도 감정을 이입하게 되면 숨이 넘어가게 흐느낄 수 있다. 그 순간 함께 있는 상대방이 누구든, 난간함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고 동시에 미안함 마음도 있다. 특히나 공공장소라면 더더욱 크게 말하고 싶다. '이 거 다 호르몬 때문이에요!'라고. 모든 여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몇몇은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다. 호르몬의 노예가 되는 시간을.
오늘도 멀쩡히 주말아침 일찍 일어나 볼일을 보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피해 커피 한잔하고 가자며 카페에 들렀다. 비 오는 주말아침은 여지없이 카페가 만석이다. 사람들이 비가 오면 집에서 안 나올 것 같지만 오히려 산책이나 야외 활동이 불편하니 실내 카페에 사람이 많다. 커피를 주문하는 줄도 길겠다, 두어 명의 직원이 서두르지 않게 커피를 내려주니 천천히 기다리는 사이에 운이 좋게도 자리가 생겼다. 이 전 남자친구들과는 다르게 발터와는 카페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 지나가다 우연히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를 발견하면 한 번쯤 들러보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내용을 주저앉아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는 수다 친구처럼 부담이 없다. 그런 부담 없는 친구 같은 사람 앞에서 두 번 눈물을 쏟아냈는데 그게 모두 공공장소였고 오늘이 그 두 번째 날이었다. 시시콜콜한 수다 중 흘리는 눈물인 만큼 이유야 시답지 않다. 앞으로 뭘 해야 할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뭘까 뭐 그런 얘기하다가 '아, 나는 왜 마흔이 넘어서도 좋아하는 것도 하나 모를까'에서 시작된 호르몬이 만들어낸 눈물.
가까이 붙은 테이블 사이 사람 많은 카페에서 남녀가 앉아있는데 여자가 눈물을 쏟아내면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을지 싶다. 게다가 내가 십여 년 넘게 보고 느낀 독일 문화는 남 앞에서 울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텔레비전을 켜면 시간과 요일 상관없이 어느 채널에 선가는 항상 범죄드라마가 방영 중이다. 러브스토리보다는 범죄 드라마가 10배는 많고 초반 10분의 진행방식은 거의가 비슷하다. 누군가가 죽는 것. 시체는 곧 우연히 발견되어 경찰이 조사하고 사망자의 가족이나 지인에게 방문해 죽음을 알리는 방식도 비슷하다. 현관에서 벨을 누르고 '당신의 남편, 아내 혹은 자녀가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라고 안내하는 것이다. 이다음 장면이 나는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는데,
소식을 들은 가족은 항상 '잠시만요' 혹은 말도 없이 현관문을 닫고 혼자 크게 흐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가다듬고 다시 경찰을 마주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계속 혼자 우는 장면이거나.
궁금해서 물어본 적도 있다.
- 독일사람들은 남 앞에서 안 울어?
- 뭐 누군가 우는 사람보고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 아닐까?
개인적인 것, 사적인 것을 쉽게 공유하는 문화가 아니다 보니 본인의 사적인 순간과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하게는 한국은 누군가 아파서 입원하거나 집에 몸져누워있으면 음료라도 사서 병문안을 가는 게 예의 아닌가. '병문안'이라는 단어도 있는 것처럼 이것이 서로를 챙기는 방식이고 예의인 반면에 독일에서는 아프면 찾아가지 않는 게 환자를 생각해 주는 것이라고 들었다. 평소보다 못한 아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테니 굳이 찾아가지 않는 것이 존중하는 것이라고. 개인이 힘들고 아플수록 더욱 관계의 연결됨을 강조하는 한국의 문화와는 정반대로 늘 개인의 존엄성이 우선이 되는 독일인의 태도가 엿보였다. 살면 살수록 하나둘씩 밝혀지는 깊은 문화의 차이는 정말이지 끝이 없다. 그런 독일인들 사이에서 나는 주룩주룩 눈물을 흘렸고 나이 먹으니 호르몬의 힘이 더 세지는 것만 같아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