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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당근마켓

클라인안자이겐 Kleinanzeigen

by 조희진

요즘은 한국에서도 당근마켓이 익숙해져 중고물품 거래가 낯설지 않다. 그렇지만 약 10년 전에는 독일에서 내가 중고가구를 산다는 말에 엄마는 왜 남이 쓰던걸 사느냐고 한소리 하실 정도로 불편한 문화였다. '남이 쓰던 것'이라는 불편함. 그렇지만 독일의 중고마켓 문화는 한국 당근에 비교도 안될 만큼 길고 깊고 넓은 시장이 긴 시간 동안 발전해 왔다. 감히 추측하건대 독일에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서 미국의 대형 쇼핑몰 아마존을 보는 사람만큼 '클라인안자이겐 Kleinanzeigen'을 보거나 혹은 더 많은 수가 이 웹사이트를 방문할 것이다. 독일의 당근마켓인 '클라인안자이겐'.


Klein 클라인 = 작다

Anzeigen 안자이겐 = 공고하다, 알리다


즉, 작은 공지 정도의 뜻이다. 과거에는 이베이 Ebay에서 여러 카테고리 중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카테고리로 만들어 놓아 '이베이 클라인안자이겐'이라고 불렸었다. 몇 년 전부터인가 개별적인 회사로 독립을 했는지 '이베이 Ebay'를 떼어버리고 '클라인안자이겐'으로만 베를린 중앙역에 대형 광고판을 걸어놓기도 했다.


나는 이 중고웹사이트를 통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구했다. 중고제품을 판매하는 시장의 성장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작은 소품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구할 수 있는 마켓이 되는 것 아닌가. 지난번 하노버에 이사 갈 때에도 다시 포츠담에 집을 구할 때에도 그 어떤 부동산 앱보다 효과적이었다. 집을 구한 후, 이사를 도와주는 업체도 집에 들여놓을 가구도 모두 클라인안자이겐에서 찾았다. 내가 유독 이 중고마켓의 애용자라기보다는 독일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 앱을 통해 무언가를 구매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사기도 당해보았을 것이고. 몇 년 전 조명을 구매하려다 심플하고 빠르게 사기를 당했다. 간단했다. 돈을 보냈으나 아무리 지나도 물건이 오지 않았다. 반은 내 실수였다. 심지어 페이팔을 통해 송금하는 것이었고 안전거래 옵션이 있었으나(일정의 수수료를 내고 송금 후 물건을 못 받을 시 송금을 취소할 수 있음) 순진하게도 판매자의 높은 별점을 보고 믿었다. 이미 거래를 왕성하게 한 신용등급이 높은 판매자였기에 큰 고민하지 않았는데 디지털 시대의 무지가 이렇게 피해를 낳았다. 분명 그 판매자는 사기 치지 않았을 것이다. 단, 판매자의 계정이 해킹당했으며 높은 신용등급을 이용하여 해킹한 누군가가 중간에서 사기를 친 것이다.


자주 애용하는 만큼 내 물건도 자주 판매한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스피커나 드라이기 같은 가전제품부터 잘못 산 사이즈가 맞지 않는 신발이나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겠다고 사서 새책으로 그대로 있던 독일어 문법책 등등. 혹여나 사기이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구매자의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송금이 확인되자마자 바로 우체국으로 달려가 소포를 부친다. 배송을 추적할 수 있는 택배 번호는 물론이며, 포장상태와 보내는 과정까지 모두 사진으로 담아 메시지를 보낸다.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내 물건을 다 보내놓고는 또다시 앱을 킨다. 마치 SNS 하듯 관심 있는 제품을 보는데 가끔은 인스타보다 더 재밌다. 주로 가구나 소품을 검색하며 특정 디자이너의 이름이나 회사를 키워드로 넣으면 더 이상은 살 수 없는 귀한 빈티지 제품이 자주 나오고 마치 인테리어 제품 잡지를 보는 듯하다. 제작연도가 언제이고, 사용감이 어느 정도 있으며 XXX 디자이너의 70년대 대표적 아이템이라는 등의 설명을 읽다 보면 요즘 유행하는 가구나 소품이 이 디자이너의 영감을 받은 거였구나! 하며 흥미롭게 연결되는 부분도 눈에 보인다. 진짜 운이 좋으면 현재 꽤나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빈티지 가구를 판매자가 큰 욕심 없이 예전 가격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사기만 조심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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