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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살면서 독일어만큼 중요한 것

손재주. 시간당 100유로의 기술자를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by 조희진

예전에 베를린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있어 한국에서 종종 출장을 오던 지인이 있었다. "아니, 왜 베를린 사람들은 만나면 의식주얘기를 그렇게 많이 해요?"라고 농담처럼 던진 질문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러네, 독일사람이던 한국사람이던 상관없이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꼭 그중 누구 하나는 집을 찾고 있다. 혹은 집주인과 작게는 시시콜콜한 전기세나 난방비의 논쟁부터 시작해 크게는 물이 세는 등의 문제로 공사가 필요하거나, 강제로 이사를 나가라고 통보받아 소송을 진행 중이거나. 주변의 누군가는 늘 무언가 집과 관련된 이슈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만나서 물어보는 안부가 "집은 어떻게, 해결은 좀 되었어?"인 경우가 흔하다.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독일에선 한국에선 전혀 해볼 일이 없던 것들을 자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20대 후반까지 부모님 집에 얹혀살다 유럽으로 나오며 혼자 살게 된 나는 흔히 말하는 전구 한번 갈아본 적 없었다. 나 홀로 공구상가에 갈 일은 전혀 없었으며 부모님 집에 어떤 공구가 있는지 관심도 없었어서 십자드라이버와 펜치 정도가 내가 아는 공구의 전부였다. 그런데 베를린에서는 모르는 만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것도 최소 시간당 50-70유로는 될 것이다. 오늘 전화한다고 당장 오는 것도 아니고, 운이 좋아 빠르게는 며칠 혹은 몇 주까지 기다려야 한다. 전기기사나 배관공 같은 기술자들을 부르려면 드는 시간과 비용이다.


그나마 전화하는 대로 빠르게 와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열쇠공. 집에 문이 잠겨 못 들어가는 상황에 전화하는 것이니 열쇠공은 무엇보다 시간이 생명이다. 나도 몇 년 전 한번 부를 일이 있었는데 정말 1분 만에 문을 열어주고는 현금으로 120유로를 받아갔다. 기본적으로 열쇠는 여유분으로 2개 혹은 3개를 받는데, 새로 이사한 집에 적응하기도 전에 열쇠를 손잡이 안쪽에 꽂아두고는 열쇠를 챙겨야 한다는 강박에 나머지 열쇠를 들고나간 것이다. 문을 열기 위해 열쇠를 꽂으니 이미 안쪽에 꽂혀있는 것 때문에 꽂을 수가 없었다. 열쇠를 잊고 나온 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 문이 잠겼으니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독일은 자동키 시스템이 아주 드물다. 있는 집도 본 적은 있는데 100% 자동키가 아니라 밖이나 안의 추가 문하나정도는 수동열쇠로 잠가놓아 어찌 되었든 열쇠는 들고 다녀야 하는 집이었다. 즉, 대부분의 독일인은 집열쇠, 자전거열쇠, 회사 사무실 열쇠 등 기본 서너 개의 열쇠가 달려있는 꾸러미를 들고 다닌다. 자동키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여러 번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문의 종류에 따라 자동키가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고, 그 자동키를 설치하기 위해 드는 인건비도 꽤 있고, 고장 날 때마다 매번 기술자를 불러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은 자동키가 과연 안전할 수 있는가였다. 열쇠를 들고 다니지 않기 위해, 더 복잡할 수도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아직은 큰 것 같다.


또, 독일 집 벽면은 도배가 아닌 페인트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페인트공을 부르지 않는다면 직접 페인트를 사고, 바닥과 가구에 온 비닐을 씌우고, 페인트가 묻어도 상관없는 버릴만한 옷을 입고 창문을 활짝 열고 페인트를 칠한다. 여기에 창문을 통해 이웃과 너무 잘 보일 수 있으니 커튼을 달아야 할 터이고 그러려면 먼저 천장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커튼레일을 설치한 후 취향에 맞는 색의 커튼을 달고 주방 상판이나 벽면 타일을 필요에 맞게 변경하는 것. 혹여 이사 가는 집에 주방이 설치되어 있으면 '주방 완비'라는 타이틀 아래에 월세 비용부터 조금 더 높아질 수도 있다. 그만큼 주방은 해야 할 일이 많은 곳이다. 수납장을 위아래 공간 크기에 맞춰 설치하고 선반을 올리고 싱크대와 수도꼭지를 고르고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이 한국에서는 기술자가 하는 일인 줄 알았으나 독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더라.


이케아마저도 꽤나 완제품처럼 느껴지는 수작업 세상이다 보니 살림살이에 대한 대화가 일반적일 수밖에 없다. 만나서 주방은 다 완성되어 가는지 혹은 정원이 마무리되면 초대할 테니 바비큐 파티를 하자느니와 같은 질문이 나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인터넷으로 어떤 가정용 드릴을 사고 싶은지 여러 브랜드를 비교해 보며 욕심을 내는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면서 웃긴데 여전히 아직은 초보라 공업용 드릴 아니고 가정용으로 보고 있는 중이다.


문득, 인건비와 손재주에 대해 쓰다 보니 노르웨이친구가 생각이 난다. 노르웨이도 만만치 않게 인건비가 높은 나라라 미용실이 너무 비싸서 대부분의 노르웨이 남자들은(당시 대학생) 다들 자기가 직접 자르거나 그냥 기른다고. 유럽에 유독 금발 긴 머리의 남자들이 많은 이유를 그제야 알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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