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구하기가 취업하기보다 더 어렵다는 베를린에서 6번의 이사를 하고 7번째 집은 드디어 내 이름으로 사인을 한 월세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집을 구매한 것도 아니고 고작 방 2개짜리 월세 계약인데도 수월하진 않았다. 집의 조건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처음 계약할 때에는 몰랐는데 살다 보니 느껴지는 피할 수 없는 불편함이 하나둘씩 나왔는데 그중 가장 큰 단점은 큰 도로옆에 자리 잡은 집이라는 것. 버스정류장이 건물 현관문 바로 앞에 있었다. 건물 뒤편으로는 지상전철인 에스반(S-Bahn) 역이 있어 좋게 말하면 교통의 요지였고 나쁘게 말하면 밤낮으로 앞으로는 버스가 뒤로는 기차가 지나는 매우 시끄러운 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에는 이 시끄러움을 느낄 겨를이 없이 드디어 또다시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사실에 신이 났으므로 내가 첫 하웁트미터(Hauptmieter, 주 세입자)가 된 소중한 집을 공들여 채워나갔다.
흔히 말하는 깡통집으로 주방조차 설비된 것이 전혀 없었고 수도꼭지와 콘센트만 있어서 수납장과 선반부터 냉장고까지 모두 직접 채워 넣어야 하는 곳이었다. 다행히 욕실엔 세면대와 욕조까지는 설치되어 있었고, 그 외의 모든 가구는 세입자가 채워 넣고 나갈 때에는 처음 있었던 것과 같이 정리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집을 구하면서 잊지 못할 복잡한 서류준비와 기나긴 시간이 걸렸기에 이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겠다는 초보의 마음으로 가구 준비를 시작했다. 차 없이 홀로 침대, 옷장, 책상, 식탁과 같은 덩치가 큰 것들을 배송하고 조립하고 이리저리 배치하는 일은 처음엔 들뜬 흥분으로 어느 정도 진행하지만 생각해 보면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비용을 들여 이삿짐센터나 가구 운반 및 조립까지 해주는 직원들을 고용한다면 수월하겠지만 만만치 않은 비용에 타협할 수 있을까.
냉장고를 사야 했다. 가스레인지보다 더 시급하게 필요했던 냉장고를 어느 중고 사이트에서 찾았다. 중고이지만 독일에서 그래도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보쉬 Bosch브랜드를 구매했다. 매우 아담한 사이즈로 100리터가 조금 넘는 크기였다. 높이가 약 1미터가 안 되는 크기로 전체가 냉장실이고 상단 부분에는 높이가 약 20센티미터 정도 되는 냉동고도 있었다. 친구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 봐왔던 냉장고와 비슷했기에 고민 없이 구매했고 아래 투명한 박스에는 과일을 넣고 중간에는 치즈와 요구르트 등을 넣어 불편함 없이 사용하는 냉장고였다.
내 애정하는 냉장고가 우리 엄마의 안타까움을 자아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 이상 몇 개월 기간의 단기로 이사를 가야 했던 집이 아닌, 기한 없이 오래 살 수 있는 월세를 구하면서 당당하게 부모님께 놀러 오셔도 충분하다며 초대를 했다. 엄마 아빠는 직항 없는 베를린에 환승까지 해가며 오셨고 도착하셔서는 왜인지 나는 만족스러운 우리 집이 부모님께서는 그다지 탐탁지 않으신 듯했다. 딸이 낯선 곳에서 오래도록 지내는 게 늘 안타까우셨고 그 마음은 늘 더해줄 수 없는 부분에서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정작 나는 괜찮은데 말이다. 그런 부모님에게 집은 어쩔 수 없지만 냉장고쯤은 하나 사줄 실 수 있는 가전제품이었던 것이다. 냉장고가 이렇게 작아서 어떻게 하냐며 매일 아침 우유를 꺼낼 때마다, 계란을 꺼낼 때마다 속상해하시며 급기야 한국으로 돌아가실 때에는 '우리 딸이 이렇게 지내는 게 안타깝다'라는 마음이 냉장고로 귀결되는 듯했다. "엄마, 돈이 없어서 못 사는 게 아니고 내가 큰 게 필요가 없어서 안 사는 거예요."라는 명확하고 직접적인 내 대답에도 마지막까지 여전히 큰 것으로 하나 마련하라며 선물로 사주겠다고 하셨지만 고집 센 딸은 역시나 거절했다.
그게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그 뒤로 두 번의 이사를 더했고 다행히 조금씩 더 좋은 조건의 집으로 옮겨가고 기능이 더 좋은 가전제품으로 바꿀 수 있었지만 냉장고의 크기는 변하지 않았다. 아직도 이 1미터가 채 안 되는 높이의 냉장고를 사용하며 심지어 꽉 찰일이 없다. 채소와 과일은 되도록 그날, 혹은 다음날까지 먹을 것만 그때그때 장을 보기에 냉장고에 넣을 틈 없이 요리해 버리고 냉동식품을 먹지 않으니 냉동실은 엄마가 주신 고춧가루와 들깻가루만 들어있다. 냉장고는 작지만 엄마 사랑은 가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