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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레인지 없는 삶

에어프라이도 없는 삶

by 조희진

"생팥 찜질팩이라고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간편하게 쓸 수 있어, 한국 온 김에 하나 사가"

"생팥? 좋을 거 같긴 한데 집에 전자레인지 없으면 어떻게 데워야 해?|

"전자레인지가 없어...?"

"없어.. 전자레인지.."


지난달 한국에서 돌아오기 전 독일의 어둡고 스산한 겨울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나 보고자 한국의 저렴하고 기능 좋은 방한 용품을 찾는 나에게 친구들은 생팥 찜질팩을 추천해 주었다. 생팥이라니, 자연주의 느낌 가득하고 몸에도 플라스틱과는 다르게 더 좋을 것 같아 솔깃했는데 전자레인지에서 막혔다. 전자레인지가 없으면 어떻게 데워야 하는지 묻는 내 질문에 딱히 그런 고민을 해본 적도 없다는 듯이 모두들 갸우뚱하는 표정만 보일뿐 해답은 없었다.


유럽에서 사는 15년 동안 한 번도 전자레인지의 부재를 의식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전자레인지가 없어서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게다가 주변 친구들 집에 초대받아 놀러 가거나, 지인집을 방문해서도 전자레인지를 많이 보지 못해서 딱히 이 가전제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늘 사고 싶은 주방용품목록은 파니니 그릴, 발코니 그릴, 계란찜기, 오븐용 유리그릇, 베이킹 틀과 같은 것들로 줄을 지었고 기회가 될 때마다 한 개씩 장만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전자레인지는 목록에도 없었다. 한식을 드물게 해 먹으니 차가운 밥을 데울 일도 없고, 독일 냉동식품이나 완제품이 한국처럼 다양하지도 퀄리티가 좋지도 않아 잘 안 사게 되는 이유도 한몫한다. 대부분 오늘 사온 재료로 갓 요리한 식사를 하고 남김없이 끝낸다. 파스타소스가 남아봤자 프라이팬에 한 번 더 익히면 되는 어쩌면 이 불편한 방식이 몸에 베이기도 했고.


또 하나, 에어프라이도 없다. 사실 에어프라이는 몇 년 전 재료를 기름 없이 튀긴다는 획기적인 아이템으로 등장해 빠르게 유행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할 때 나도 솔깃했었다. 구입을 마음에 두고 여러 사이트를 알아보던 중, 두 가지 이유로 망설이다 구매를 포기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메뉴였다. 에어프라이로 하면 맛있는 음식, 에어프라이 최고 레시피 등을 보면 만두, 베이컨, 치킨, 돈가스 등의 육류가 많았고 더 큰 에어프라이어의 장점은 손쉽게 조리할 수 있도록 나온 냉동식품을 더욱 맛있게 조리할 수 있다는 평이 많았다. 육류를 먹지 않고, 냉동식품을 자주 애용하지 않는 나에게는 감자구이, 치즈 토스트, 떡 정도로 범위가 좁혀지는데 독일에서 귀하고 귀한 떡을 빼면 감자와 빵류를 요리하자고 살만큼 매력적이진 못했다. 두 번째로는 집에는 애용하는 오븐이 있고, 이 오븐의 기능 중에 열을 내는 기본기능인 히터에 팬기능을 더해 뜨거운 공기를 빠르게 순환시키는 컨벡션기능이 에어프라이와 흡사하다. 단지, 에어프라이보다 크기가 커서 에너지 소비가 많겠지만 나같이 한 번에 가득 야채를 굽는사람에겐 작은 용량보다는 대용량이 더욱 편리하게 쓰인다.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 별거 아닌 듯 하지만 한국과 독일에서 주방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요리를 하는지 차이점을 크게 보여주는 예시가 아닐까. 다음 편엔 우리 집 냉장고에 대해 써봐야겠다. 몇 년 전 베를린 딸 집을 방문하신 엄마가 세상 속상해하셨던 그 냉장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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