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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룩샴(Flugscham)

비행기 타는 것을 부끄러워하다.

by 조희진

독일어 단어 중 플룩샴(Flugscham)이라는 단어가 있다. 뜻은 '비행기 타는 것을 부끄러워하다'이다. 영어로 번역하면 Flight Shame으로 비행기를 타는 것에 대해 떳떳하지 못하고 죄책감을 갖는 마음을 말한다. 비행기 타는 것이 왜 환경하고 연관이 있는지 아직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앞으로는 비행기를 안 타겠다고 선언한 친구들도 내 주변에는 있다. 왜인지 북유럽 친구들이 더 강한 '플루샴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찾아보니 이 단어의 어원도 'flygskam'로 스웨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산화탄소 배출. 비행기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원인은 이산화탄소 배출양이다. 자동차에 비교하면 3배, 기차에 비교하면 최대 20배까지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사실상 이산화탄소를 kg단위로 얘기하면 양을 가늠하기 어렵기도 해서 얼마큼의 오염인지 몸으로 느낄 순 없지만 우선 '몇 배의 차이'라고 등장하는 숫자를 보면 다른 교통수단보다 비행기가 월등히 오염을 많이 시키긴 하는가 보다.


전 남자친구가 그랬다. 비행기 안타는 사람, 환경에 진심인 사람. 나름 그의 신념을 존중했지만 나도 함께하기엔 너무 큰 신념이었다. 3년을 만나면서 제대로 여행을 다녀본 기억이 없었고 이제는 추억 속 좋은 사람으로 남았다. 무엇보다 나는 정기적으로 한국을 가야 하니 비행기를 안 타겠다고 선언은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시간과 경제적 상황이 가능하다면 비행기를 피하고자 노력했고 지난여름 첫 장거리를 기차로 다녀왔다. 베를린에서 마르세이유까지.


베를린 - 마르세이유 구간은 기차로 가기 편하게 연결되어 있다. 베를린에서 아침에 출발해 프랑크푸르트에서 갈아타고 파리에서 갈아타면 저녁에 마르세이유 도착이다. 파리에서 시내를 둘러보기 위해 반나절정도 시간차를 두었다. 근사한 빵집 찾아 커피 한잔하고 다시 기차에 오르니 밤이 되어 마르세이유에 도착했다. 오는 내내 기차에서 노트북으로 일도 하고 책도 읽고 하다 보니 12시간의 기차여행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기억이 좋았기에 올 연말도 기차를 타고 가는 곳으로 알아보고 있었다.


늘 12월 31일 자정이 되면 베를린은 수많은 폭죽으로 시끄럽고 위험하다. 나와 발터는 비 오고 축축한 시끄러운 밤을 베를린에서 보내고 싶지 않아 매년 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목적지는 늘 내가 희망하는 따뜻한 남쪽 나라였고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섬나라였다. 올해는 발터의 바람대로 눈이 가득 쌓인 곳으로 가기로 했다. 독일을 제외하고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웨덴을 찾아보다 정한 곳은 스웨덴이었다. 베를린에서 스웨덴까지 직행으로 가는 야간기차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밤에 타면 침대칸에서 한숨 자며 12시간을 달려 아침에 도착한다니 숙박비도 아끼고 좋을 것 같았다.


연말은 성수기이고 미리 여행계획을 짜는 독일인에 비하면 늦어도 아주 늦었기에 스웨덴으로 결정이 되자마자 기차티켓을 예약할 심산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기차는 매진된 날도 많았고 그날을 피해 겨우 하나 찾고 보니 1인당 왕복 500유로(약 85만 원). 두 명이면 1000유로. 지난달 한국 가는 비행기값이 900유로였으니 '여기서 조금 더 보태면 한국 가겠는데?'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결국 결제하지 못했다. 너무 비싸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금액이었다. 원래 기차가 비행기보다 월등히 비싸니 예상했어야 하는 금액일지도 모른다. 늘 기차로 다니는 친구들을 이 가격이 놀랍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부끄럽게도 아직 저가 항공이 익숙한 사람이라 고민이 되는 티켓값이다.


연말은 여행 성수기라 호텔도 교통도 평균이상이라는 것은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너무 비싸니 비행기 값은 얼마하나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저가 항공으로 비난의 가장 큰 표적이 되는 라이언에어와 이지젯도 모두 스톡홀름은 운행하고 있어 찾아보니 기차의 반값이었다. 환경을 생각하고 내 삶을 온전하게 즐기는 진보적이고 모던한 북유럽의 젊은이들처럼 되기엔 아직 내 경제력이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곳에 덜 쓰고 아껴서라도 비행기 대신 기차를 타야 하는 것이 진정 환경을 생각하는 삶일까? 나름 플라스틱 안 쓰고 새거 안 사면서 환경에 꽤나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고 자기만족이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머리 위로 떠오르면서 '그럼, 스웨덴 말고 다른 데를 가자고 해야겠다.'라고 여행장소를 다시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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