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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게 먹고 많이 크는 독일사람

나는 많이 먹는 작은 사람

by 조희진

십여 년 전 런던에서 처음 유학생활을 시작하며 내가 많이 먹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업이 끝나고 매번 학생식당으로 혹은 학교 주변 카페로 가서 점심을 먹을 때에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북유럽 그 어느 친구도 밥다운 밥을 먹지 않았다. 몇 학기를 같이 함께 다니며 본 그들의 점심은 커피하나 머핀하나, 혹은 바나나에 샌드위치 한 조각, 초코바에 사과하나 등 이렇게가 전부였다. 딱히 다이어트를 위해서 적게 먹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많이 못 사 먹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들은 늘 그렇게 먹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저녁을 엄청 거하게 먹느냐? 글쎄, 저녁도 그냥 나만큼 먹더라.


다행인 건 종종 만나는 다른 한국 유학생들이 나와 동일한 힘듦을 겪고 있었고 우리끼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었다. 늘 배고픈 유학생활을. 처음엔 마음이 허해서 먹어도 차지 않는 느낌인 걸까 했지만 사실상 한국에 비해 훨씬 적게 먹고 있었던 것이다. 뭘 시켜도 한국처럼 푸짐하게 나오는 식당이 드물다 보니 매번 적당히 먹고 나온 기분이었다. 그러나 칼로리는 높은 것들로 먹었으니 배는 고프지만 살은 찌는 그런 유학생이었다. 한참을 유럽에서 살면서 천천히 깨달았다. 한국인이 많이 먹는 편이었고 우리나라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따뜻한 요리로 3끼를 해서 먹는 나라는 손에 꼽는다는 것을.


크루아상에 커피는 프랑스, 에스프레소에 작은 달달한 빵은 이탈리아, 건강한 곡물 뮤즐리에 요구르트는 스위스, 추로스에 커피는 스페인, 소시지와 베이컨이 들어간 푸짐한 영국식 아침식사까지 유럽의 국가들은 대표되는 아침식사가 있다. 한국문화에 흥미가 높은 친구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한국의 아침식사는 뭐야?" 혹은, "나 한국 여행 갈 건데 아침식사로 뭘 먹어야 해?"인데 그럴 때마다 웃음이 난다. 당당하고 자신 있게 대답해 준다."뭐든 먹고 싶은데로 오전에 먹으면 그게 아침식사야"라고.


"한국은 아침에도 점심이나 저녁과 크게 다르지 않게 따뜻한 밥과 국에 반찬을 먹어.

상대적으로 가볍긴 하지만 그것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야.

어떤 사람은 아침을 거하게 먹고 저녁을 가볍게 먹기도 하거든.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침에도 그릴(삼겹살 구이)을 해먹기도 해.

한국은 아침식사 든든하게 먹는 게 하루의 활력을 위해 좋다고 여기거든."


이 말에 따르는 여러 가지 질문과 놀라움의 세례가 있고 대부분 비슷하다. 어떻게 아침부터 따뜻한 음식을 하느냐? 다들 아침에 시간이 많은가? 어떻게 세 번이나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지? 누가 요리를 하루 종일 하는 건가? 그렇게 먹는데 왜 다들 날씬한 거야? 한국사람 중에 뚱뚱한 사람을 거의 못 본 거 같은데. 등등.


독일사람들에게 한국의 식문화는 놀라움만 가득할 뿐이다. 특히나 독일은 하루에 한 번 따뜻한 음식을 먹는 문화이기 때문에 매우 실용적이긴 하지만 꽤나 심심하다. 반대로 내가 놀란 독일 식문화 중 하나는 이들의 저녁식사였다. '아방트브롯(Abendbrot, 저녁 빵)'이란 단어가 일반 가정의 저녁식사를 말하는 단어이고 말 그대로 빵이다. 커다란 갈색 곡물빵을 얇게 썰어 그 위에 버터, 햄, 치즈, 오이피클을 얹은 게 대표적이다. 세상 간단하지 않은가? 퇴근길에 빵을 사 와 냉장고에 있는 버터와 햄, 치즈를 꺼내고 병에 들은 오이피클을 준비하면 끝이다. 누가 준비해도 5분 이상 걸리지 않을 이 실용적인 저녁식사는 1차전 쟁이 끝나고 남녀모두 일을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때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하루 한번 구내식당에서 따뜻한 식사를 하고 남편과 아내 모두 풀타임 일을 하는 일상에서 저녁은 간단하게 먹는 것이 일반화된 것이다.


독일 문화는 손님이 와도 저녁은 아방트브롯. 발터의 가족행사가 있어 다녀오는 길이면 나는 항상 배고프다. 시끌시끌 할머니 손자 가족 모두 모여도 따뜻한 음식을 하루에 한 번 먹는 식문화는 변치 않기에 따뜻한 점심식사를 함께하고 저녁에는 차가운 저녁을 간단히 먹고 헤어진다. 라면을 즐기진 않아도 이날만큼은 집에 오는 길 라면생각이 간절하다.

dirndlkitchen_Abendbrot.png 이미지 출처: https://dirndlkitchen.com/abendbr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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