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화장장 견학

독일은 화장장도 오픈데이가 있구나!

by 조희진

Tag des Krematoriums. 화장장 방문의 날. 화장장을 방문하고 견학한다니 참으로 독일답다. 모든 것을 말로 차근차근 설명하는데 도가 튼 사람들. 또, 누군가의 설명을 차곡차곡 깊이 새겨듣는 것도 매우 잘하는 독일사람들은 경험하고 새로운 정보를 아는 것에 유독 큰 기쁨을 얻는 것 같다. 어느 나라던 박물관에 가면 독일인 관광객이 가장 많다고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그랬다. 심지어 발터에게도 서울에서 제일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국립 중앙박물관이라고 말해서 웃기면서도 놀랐었다.


도대체 화장장에는 무슨 볼거리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한껏 게을러질 수 있는 일요일에 심지어 0도의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갔다. 1년에 딱 하루, 11시부터 오후 17시까지 오픈한다는 화장장에 내가 도착한 오후 1시 반쯤엔 이미 사람이 가득했다. 마치 미술관 전시 행사가 있는 것처럼 건물을 둘러보며 모여있는 사람들은 나를 들뜨게 했다. '와, 뭔가 재미있는 게 하긴 하나보다'라는 생각에. 여러 프로그램 중 '건축 설명 투어'와 '테크닉 투어'를 듣고 싶었다. 약 30분간 진행되는 투어는 시간당 2번씩 진행함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꽉 찼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취소하길 기다리며 기다렸고 드디어 마지막 회차에 합류할 수 있었다. 아니, 화장장 견학이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층고가 매우 높은 실내는 천장을 받치는 수십 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높이 뻗어있었다. 수직으로 강조된 디자인에 곳곳에 틈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거대한 예배당을 연상시켰다. 오늘이야 수백여 명이 방문해서 북적거리지만 평소에는 발걸음 소리도, 숨소리도 들릴 것 같은 고요하고 적막한 건물이었다. 특수한 화이트 콘크리트에 마감에 부쩍 신경을 써서 곱게 다진 기둥면은 차가우면서도 매끈했다. 빛이 들어오지만 그 어디에서도 따뜻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가 참여한 테크닉 투어는 화장을 담당하는 직원을 따라 화장장 지하의 화장로가 있는 곳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약 600개 이상의 시신이 보관될 수 있는 방은 늘 7도로 유지되었고 콘크리트 벽면과 관이 놓일 수 있는 선반은 모두 철제로 이루어져 영하의 바깥보다 더 추운 기분이었다. 오늘의 행사를 위해 시신을 모두 다른 화장터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시신보관방을 지나 화장로의 방으로 한층 더 내려갔다. 처음 시신이 들어오면 신원확인 과정을 거친다. 신원이 확인된 시신은 관에 바코드를 부착하고 이후 진행되는 모든 과정은 일련의 자동화 시스템으로 진행된다. 화장하기 전 가족들과의 입관예식을 치르는 방의 바닥은 자동으로 열리며 지하 시신보관방에서 예식방까지 자동으로 운반된 관이 올라온다. 예식이 끝나 다시 지하로 내려간 관은 '관 보내기'버튼 클릭 한 번에 무인 운반차량을 통해 화장로까지 이동된다. 그 후 1차 화장은 900도 온도에서 80분, 2차로는 1400도에서 45분. 이 시간이 지나면 시신은 재가 되고 재를 식히는 과정과 타인의 재와 섞이지 않는 과정을 모두 통과해 유골함에 넣어 담당 장의사 손에 넘겨진다. 가장 인간적일 줄 알았던 마지막 과정이 마치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처럼 온통 버튼과 알 수 없는 기기들로 자동화되어 있음이 낯설었다. AI가 인간을 대신한다는 삶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음 이후의 과정은 아날로그일 줄 알았나 보다. 왜냐하면 죽고 살고 하는 문제이니까.


약 스무 명 남짓한 견학참여자들은 남녀노소 10대부터 80이 넘어 보이는 노인까지 다양했다. 화장로 앞에서는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10대의 질문과 80대의 질문이 새삼 달랐다. 10대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관이 불속에 들어가면 더 이상 관찰 할 수는 없는지 궁금해했고 담당 직원은 불에 타는 과정 모두 모니터링된다고 친절히 답해주었다. 처음 20분은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80대의 할아버지의 질문은 조금 더 실질적이었다. 가장 잘 타는, 이상적인 관의 소재는 무엇인지, 유골함의 선택은 개인이 할 수 있는지 등등. 직원은 관은 나무이기만 하면 어떤 종류이든 상관없다고 했고, 독일 법상 유골함은 화장터에서 정해진 유골함을 사용하고 가족에게 전달할 수 없이 반드시 담당 장의사에게 보내져야 한다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또 다른 중년의 참여자는 유골함이 썩는 데까지 얼마나 걸리며 소재가 무엇인지 물었고 4-5년이면 완전히 썩는다는 답을 받았다.


화장로를 지나오며 직원은 마지막 재를 정리하고 유골함에 담기 전에 수술로 인하여 몸에 박힌 금속 나사나 철심, 금속판들은 불에 타지 않아 수작업으로 분리해야 한다며 예시를 보여주었다. 병원 수술방에나 있을 법한 테이블 위에 과연 사람 몸에 들어있을 수 있을까 싶은 공업용 나사 같은 것들이 적나라했다. 그리고 동시에 9시간이 넘는 긴 수술을 2번이나 한 후 커다란 철심을 박았다는 아빠의 왼쪽 다리가 생각이 났다. 우리 아빠의 몸에도 들어있을 쇳덩이도 저런 모양일까 가슴이 무거웠다. 호기심에 갔던 견학이 죽음 이후의 절차가 메마르게 텍스트로 정리되어 마무리되었다. 나는 슬펐는데 동시에 너무 건조했다. 날씨도, 기분도, 사람들의 이성적이게 주고받는 죽음 이후의 과정을 논하는 대화도. 오랜만에 굉장히 독일스러움을 경험했던 날이다.


IMG_5825.HEIC
IMG_5868.HEIC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20화적게 먹고 많이 크는 독일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