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는 반드시 아이를 가지고 싶었고 이미 계획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얼마나 오래도록 유지될까

by 조희진

나와 발터가 조지와 마리아를 만나기 전 궁금해하며 기대한 이유가 있었다. 오래도록 연애를 하지 않았던 조지가 한 달쯤 전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흥미로웠다. 연말이 되었고 아직까지도 둘이 잘 만나고 있다면 한 번쯤은 보겠지 하고 있었다. 그렇게 12월 31일을 조용히 집에있기로 한 우리는 혹시 조지는 계획이 있을까 연락했고 즉흥적으로 마리아도 함께 오게 된 것이다. 둘이 잘 만나고 있다는 뜻이긴 한데, 완전히 잘 만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며칠 전 마리아의 작은 고백이 있었고 그 작은 고백이 조지에게는 폭탄선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50이 막 넘은 조지는 늘 깔끔한 차림새에 미니멀리즘이 몸에 밴 친구이다. 투명한 안경태에 군살하나 없이 날씬한 그는 운동도 즐겨하고 매사에 단정한 태도로 본인 나이보다 10살은 어리게 보인다. 독일에서 친구사이에 나이야 큰 의미가 없지만 외모가 어려 보이니 더 내 또래 같기도 해서 편하다. 음식의 취향도 옷의 취향도 나름 본인의 기준이 있는 그 라서 이성을 보는 눈도 꽤나 높을 거라고 나 혼자 짐작하고 있었다. 12월 31일 저녁에 처음 만난 마리아는 역시나 세련되면서도 성격 좋은 40대 중반의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조지에게 폭탄처럼 터진 마리아의 고백은 본인은 반드시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것이고 이미 계획했다는 것이었다. 연애를 시작하며 초반부터 출산의 계획을 논의하는 것이 흔하지 않아도 있을 수는 일이다. 그렇지만 마리아의 얘기는 좀 달랐다. 조지와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뜻이 아니었으므로. 이미 조지를 만나기 한참 전에 한 남자와 '계약'처럼 맺어놓은 것이 있었다. 그녀는 출산의 희망을 가진 제삼자의 정자를 받아 수정을 할 것이고 그와 앞으로는 계약을 기반으로 공동육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3자와 연애나 결혼 혹은 전통적인 가정을 꾸리는 일은 없을 것이고 그는 아이의 '생물학적 아빠'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잡아놓은 병원 예약일이 한 달도 안 남은 2026년 1월 말이라는 것. 계획한 대로만 진행된다면 그녀는 1년 후에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녀는 반드시 아이를 갖고 싶었고 여성으로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시기는 객관적으로 정해져 있고 그 가능성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막연히 걱정하고 생각만 하는 대다수의 사람과 달리 그녀는 계획했고 행동으로 옮겼다. 그 남자는 마리아의 전 연인이거나 전 남편과 같은 로맨스의 관계가 아닌 마리아처럼 반드시 아기를 가지고 싶다는 공통의 바람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둘의 계약이 성사될 수 있던 것이다. 같은 여자로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남다른 행동력이 인상 깊었고 앞으로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얼마나 오래도록 유지될지 새삼 생각해 보게 되는 소식이었다.


이러한 사건이 있어서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졌던 것이다. 제삼자로 멀리서 이야기만 전해 듣는 나도 이런데 조지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폭탄처럼 다가온 마리아의 작은 고백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지는 마리아를 계속 만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소개해주었다. 이 둘이 얼마나 더 만나게 될지는 본인들도 모르지 않을까 싶었다. 이 이야기를 발터와 나는 조지를 통해 들었을 뿐이고 처음 만나 어색함도 살짝 있는 자리라 마리아에게 대뜸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우리는 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고 늦게까지 보드게임을 하며 평범한 파티의 밤을 보냈다. 그러면서 새삼 내가 베를린에 살고 있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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