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내리는 여자

# 나라는 여자의 자아

by 크랜베리

나의 직업은 바리스타다. 보통 느긋하게 일어나 점심쯤 카페로 출근해서 저녁까지 일한다. 출근하면 인수인계를 받고 커피가 추출 조건에 맞는지 위해 내려본다. 2구짜리 포타필터에 들어가는 원두 17g, 추출 시간 27-29초, 추출량은 2oz가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내려본 에스프레소의 향도 맡아본다. 어떤 날은 초코렛향과 신향이 적절히 나는데 어떤 날은 신향만 올라와서 싱겁겠다 싶은 날도 있다. 내려본 에스프레소에 헤이즐넛 파우더와 헤이즐넛 시럽을 섞어 우유에 담아 헤이즐넛 라떼를 만들어 먹는다. 요즘 꽂힌 커피다.


우리 카페는 나이대가 있으신 분들도 많이 찾는 카페라 할머니 손님들도 많이 오신다. 내 커피가 맛있다고 찾아주시는 분들도 있고 가끔씩 맛있는 걸 주시기도 하는데 나를 예뻐해 주셔서 그분들이 좋다. 다른 단골분들도 많이 계신데 오래 일하다 보니 한분 한분 항상 찾으시는 커피를 외우게 된다. 억지로 외우는 건 아니고 매번 같은 커피를 찾으시니 머리에 자연스레 입력이 돼버린다. 사람들을 많이 마주치다 보니 처음 본 얼굴도 금방금방 익는다.


마감 근무인 나는 카페를 정돈하고 쓸고 닦고 깔끔하게 정돈하는 일을 하고 나면 뭔가 뿌듯하다. 눈에 띄게 정돈된 카페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는 거다. 베이커리도 채워 넣고, 소모품도 차곡차곡 채워두고, 파우더 가루나 소스나 시럽이 찐득하게 붙은 것들을 닦아내고, 어지럽던 쇼케이스를 정돈하면 심신이 안정된다. 그전까지는 뭔가 어수선한 게 일거리가 아직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거다.


나는 이 일을 커피가 좋아서, 카페가 좋아서 시작했다. 커피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카페 다니는 것도 좋아하던 대학생 시절 바리스타는 내 꿈의 직업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렵던 전공으로 벌어먹고 사는 일이나 딱딱한 조직생활을 하는 것보다 커피를 내리며 사는 삶이 자유로워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나름대로"라고 할 것이다.


바리스타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을 땐 발을 들이기까지가 큰 도전이었고, 일을 배울 때는 이 일도 만만치 않는구나 하는 현실을 깨달았고, 일에 익숙해진 지금은 이게 내 일상이라 평범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것은 언젠가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던 이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고 바리스타에 대한 환상과 동경으로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해 미련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거다.


바리스타라는 자아를 가지고 사는 삶이 익숙해진 지금 나는 또 다른 자아들을 정립하는걸 꿈꾼다. 글을 쓰는 작가라는 자아, 꽃을 만지는 플로리스트라는 자아, 세계를 누비며 여행하는 자아를... 글을 쓰는 건 브런치에 하기로 하고 플로리스트는 꼭 배워볼 것이고, 세계여행도 꼭 해보고 말 것이다. 한번 사는 인생 뭐가 있을까, 하고 싶은 것들 하면서 사는 거지. 후회 없이 사는 인생을 꿈꾼다.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다 도전하며 사는 삶을.

keyword
이전 05화사랑받는 여자들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