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활주로 위에 서 있던 비행기는
하얀 숨을 길게 내뿜고 있었다.
눈이 얇게 내려앉은 땅,
그 위에 멈춰 선 비행기는
곧 떠날 사람들의 마음처럼
조용히 긴장 속에 서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도 같은 생각을 나누고 있었다.
준하를 만나러 가는 길.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은
조금 무겁고, 마음은 먼저 가 있었다.
러시아 이름으로는 다니일,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준하’였다.
구름 위를 건너는 동안
나는 자꾸만 그 아이를 떠올렸다.
아직 아장아장 걷던 시절,
포대기를 둘러 등에 업고 다니던 날들—
떼를 쓰며 업어달라 보채던 아이를
다시 등에 업고 공원으로 나가면
하늘에 떠오른 달을 보며
그렇게도 좋아하던 우리 준하.
창문 앞에 서면
달빛이 둘, 셋으로 반사되어
두둥실 떠오르던 밤,
“달… 달…
여기도 달, 저기도 달 있어!”
작은 손으로 가리키며
세상을 발견하던 아이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
이스지압 호숫가
고운 모래사장 위에서
태어나
생애 첫걸음을 떼던 날
나는 작은 손을 잡고 있다가
살며시 놓았다.
하나, 둘, 셋—
비척비척 걷다가
넘어지며 울음을 터뜨리던 준하.
모래투성이 얼굴로
내 품에 안겨오던 그 순간,
나는 그 아이의 놀람을
온몸으로 받아 안았다.
그리고 지금,
눈이 깊이 쌓인 어느 날
우리는 둑 위에 함께 서 있었다.
준하, 윤하, 민하, 그리고 우리들—
썰매 튜브를 붙잡고
하나로 이어진 채
“준비됐어?”
짧은 외침과 함께
몸을 맡겼다.
순간,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고
우리는 눈 위를 가르며
날아갔다.
둑을 넘어
언 강 위로 내려가는 동안
놀라 소리를 지르고
이내 웃음이 터졌다.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그 웃음은 더 크게 번졌다.
준하는 그 가운데서
가장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 사이로 그 아이가 나타났을 때
“할머니!”
그 한마디에
멀고 긴 여정은
순간에 녹아내렸다.
나는 그때 알았다.
세 걸음도 힘겨워하던 아이가
이제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지금 생각해도
그날 우리는
겁보다 웃음이 먼저였고
속도보다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일이
더 중요했다.
둑을 넘어
언 강 위에 닿던 그 순간,
우리는 날았던 것이 아니라
함께였기에 두렵지 않았다.
그날의 웃음은
지금도 눈밭 위에 남아
하얗게 빛나고 있다.
달을 부르던 아이
구름 위를 건너는 동안
나는 한 아이를 불렀다
준하,
다니일,
두 이름 사이에서
같은 온기로 자라는 아이
달을 보며
손을 흔들던 아이
“여기도 달, 저기도 달…”
세상을
처음으로 부르던 목소리
이스지압 호숫가
나는
그 아이의 손을 놓았다
하나, 둘, 셋—
넘어지며
울음을 터뜨리던 아이
눈 덮인 둑 위에서
우리는
함께 날아갔다
두려움보다 먼저
웃음이 터지던 날
세 걸음도 힘겨워하던 아이가
이제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넌다
나는 안다
손을 놓는 일도
사랑이라는 것을
달을 부르던 아이는
지금도
내 마음 속에
환하게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