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희주 Jun 03. 2023

질병, 난임 그리고 조기 폐경

4.실망이라는 병

결혼식 후 다음날 우리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공항에 왔다.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우리 둘 다 통장 잔고가 가난했다. 해외여행은 다음에 돈 모아서 가기로 했다.


비행기 탑승 후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내가 결혼을 했고 지금 신혼여행 중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결혼식 때 너무 정신없이 순식간에 지나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신부님 머리 어떻게 해드릴까요?"


"신부님 드레스가 흘러내리면 입장하시다가 발에 걸려 넘어지실 수 있어요! 그러니 부케하고 드레스를 같이 잡으셔야 해요 ~"


드레스를 입었을 때 웨딩 촬영 때 보다 5kg이나 쪄서 이쁘지 않아 속상했고, 올림머리 스타일을 부탁드렸는데 얼굴이 너무 달덩이처럼 커 보여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달라 속상했다. 


그리고 신부 입장할 때 드레스가 흘러내려 넘어질까 아래만 보면서 걸었던 것 이외에 결혼식 상황이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제의 기억을 회상하다 보니 제주도에 금방 도착했다. 우리는 자동차 렌트를 했고, 신혼여행의 첫날 저녁 메뉴는 흑 돼지 삼겹살을 먹었다. 똑같은 돼지고기 같은데 무엇이 다른 건지 나는 잘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남편하고 함께 먹어 좋았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향했다. 나는 첫날밤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었었다. 남편과 함께 와인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상상에 부풀어 있었다.


“오빠, 나 씻고 올 테니까 와인하고 안주 세팅해 줘~ 알았지??”

"응 알았어~"


하지만 그 상상은 부풀어 터져 버렸다. 내가 씻으러 간 사이에 남편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흔들어 깨워도 피곤하다며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빠 일어나! 우리 오늘 신혼 첫날밤인데 자는 거야?”

“미안해, 희주야… 오빠 오늘 너무 피곤하다.”



급기야 코까지 골면서 자는 남편이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나의 첫날밤이 사라졌다. 나는 이렇게 매너 없고 나에게 관심이 없는 남편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혼자 와인을 벌컥벌컥 마셨다. 일어나겠지 금방 깨어나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끝내 일어나지 않았고 와인에 취해 그대로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첫날밤 이후 우리의 결혼 생활은 절벽 위의 줄타기와 같았다. 신혼 초에 다른 것도 아닌 부부 관계로 부부 싸움을 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남편이 성욕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아내인 나와 해결하는 것이 아닌 혼자 해결해 왔고 그걸 내가 알게 되었다.



“오빠, 우리 아직 1년도 안된 신혼인데... 어떻게 나를 옆에 두고 볼 생각을 했어?”

“… 미안해 혼자 하던 습관이 있어서 그랬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나의 문제로도 벅찼던 아기를 갖는 문제가 남편의 문제도 더해져 내가 원하는 것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는 사실과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매력 없는 아내로서 비춰진다는 여자로서의 자괴감의 감정들이 같이 몰려왔다.


 


결혼하면 금방 아기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착각했고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나의 삶은 알 수 없는 미로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부관계를 과감히 버렸다.

이전 03화 질병, 난임 그리고 조기 폐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