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희주 Jun 10. 2023

질병, 난임 그리고 조기 폐경

5. 나만 불행한 병

결혼생활은 나에게 있어서 보상받을 수 없는 희생이었다. 나보다 어른이라 생각했던 남편은 자격지심과 열등감에 똘똘 뭉친 사람이었고 불평불만이 많았다. 사장이 일을 안 한다며 불평이 많았던 남편은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회사를 때려치웠다.



“나도 이제 내 사업하고 싶어.”

“하고 싶으면 해. 그런데 돈을 어디서 구해…?”




아이를 갖고 싶어 시험관을 하고 싶다고 제안할 때는 ‘나중에’ ‘돈이 어디 있어’라고 말하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본인은 사업을 하고 싶다고 나에게 말했다. 많이 야속했지만 남편의 꿈을 지지해 주는 아내가 되어 주고 싶어서 온전히 남편 입장에서 말해주었다. 



 내가 자진해서 집의 보증금을 뺄 수 있는지 알아봤고 또 친정 엄마 이름을 빌려 대출받고, 시어머니께 가서 돈을 빌리기도 했다. 그렇게 사업자금을 만들어 남편을 도왔다.

 


 남편의 사업을 개업하고 나서 초기에는 매출이 좋았다. 하지만 점점 매출이 줄었고 가게 보증금까지 다 소진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남편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가게 주인분께 전화를 드려 월세를 책임지고 낼 것을 약속한 뒤 그 약속을 지키러 일을 나갔다.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만 하며 살아왔는데 언제까지 고생만 하며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설거지하는 도중 내 머릿속에 스쳐갔다. 30세가 넘어도 내가 원하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미신을 믿지 않았던 나였는데 29살이라는 ‘아홉수’ 때문일까 하며 나이 탓을 했고 그릇을 수돗물로 씻는 건지 눈물로 씻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깨톡’

*OO의 돌잔치에 초대합니다*


‘하… 가기 싫은데’

 쉬는 날 집에서 모처럼 잠을 자고 있었다. 메신저가 울려 확인해 봤더니 돌잔치 초대장이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데 가고 싶지 않았다. 정말 친한 친구 1명 말고는 돌잔치에 가지 않았다.



 출산한 글이며, 임신한 글,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 등등 SNS에 친구들의 글들이 올라온다. 나는 차마 좋아요 와 어떤 댓글도 달 수 없었다. 남들은 다 행복해 보이고 나만 불행한 것 같았다.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께 원망도 많이 했다.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왔고 남의 아이라도 훔쳐서 키우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남편에게 입양도 권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젠간 생기겠지’였다. 난 ‘부부관계도 안 하는데 퍽이나 잘 생기겠네요~’ 하며 속으로 원망을 했다.



 입양도 할 수 없고 아기는 갖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스마트폰에서 초록색 검색창을 띄우고 검색을 했다. “난임지원금”을 검색했다. 

새해가 되면 늘 검색하던 지원금이었다. ‘올해는 좀 더 보완이 되었을까? 지원을 많이 해줄까?’ 하며 적은 금액이라도 지원받기를 바라며 매년 검색하고 알아보았다. 



 지원금이 나오고 비용이 줄어든다고 해도 ‘부담스럽다 나중에’라고 남편은 말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인공수정은 시험관 보다 쉽고 비용도 저렴하다고 계속 설득한 끝에 시도하게 되었다. 



  병원에 방문하여 인공수정 상담을 받았다. 예전 수술했던 ‘자궁내막증’ 때문에 난임 검사를 진행했다. 남편은 ‘정자 검사’, 나는 ‘나팔관 조영술’ 이였다. 우선 진통제를 맞고 일반 침대 위에 누워 다리를 벌려야 했다. 그러면 담당 선생님께서 가느다란 관을 자궁 안에 통과시키고 그 관을 통하여 조영제를 넣었다.

 이 검사는 나팔관이 막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시행하는 검사인데 아주 수치스러웠다. 진통제를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아파 소리를 지르지 못해 이를 악물었다. 결국 눈물도 났다.



X-RAY 촬영을 통해 나의 나팔관과 자궁을 확인할 수 있다. 다행히 막혀 있는 부분은 없었다. 어떤 난임 카페에서 나팔관 조영술을 하고 나면 정자가 더 잘 유입되어서 임신이 잘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 글을 때문에 아파도 견딜 수 있었고 잘 될 거라는 희망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검사를 마치고 얼마 뒤 배란기일에 맞춰 다시 병원에 방문했다. 인공수정과 시험관의 차이를 나도 자세히 알지 못해 난임 카페와 지식인에 많이 검색했다. 인공수정은 남편의 정자를 채취해서 나의 몸에 넣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밀실에 들어가 정자를 채취하러 들어갔고, 나는 옷을 갈아입은 뒤 시술하는 곳으로 갔다. 그곳엔 의사 선생님 외에 간호사선생님이 2분 더 계셨다. 차가운 침대에 누어 또 민망한 자세로 다리를 벌리고 누어야 했다.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민망함과 수치심이 들었지만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텼다. 



인공수정은 허무하게 실패로 다가왔다. 

실패의 원인은 난포가 터져 난자가 나와 있거나 24시간 안에 터져야 했는데 내 몸속의 난자는 정자를 만나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는데 자녀 복이 없는 걸까,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아이를 원하지 않는 남편을 붙잡고 나 혼자 억지 부려서 안 생기는 건가 하는 많은 생각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전 04화 질병, 난임 그리고 조기 폐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