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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주 Dec 27. 2018

꿈에 대하여

꿈이 있으면 행복할까? 꿈이 없으면 불행할까?

사람들이 말하는 ‘꿈을 가지라’는 말 속에는
‘꿈꾸는 일을 해서 성공해’, ‘그 일로 돈을 벌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돈만 버는 삶은 의미가 없고,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돈은 벌지 못하는 삶은 가치가 없다.
ⓒ 조성민


원고를 마감하고, 한숨을 돌렸다. 언제까지 어딘가에 넘겨주어야 하는 마감은 아니고, 내가 정한 기간 안에 내가 시작한 일을 끝내는 셀프 마감(?)이었는데도, 진이 빠진다. 몸 안에 있는 무언가가 뭉텅 빠져나간 기분이다. 홀가분하면서 허전한, 시원하면서 섭섭한, 뿌듯하면서 허무한 기분…. ‘좋아! 마감을 했으니 며칠 동안은 손 하나 까닥하지 않을 테다’ 다짐하며 거실 한가운데 벌렁 드러누워 창밖을 바라본다.


초여름, 무성해진 나뭇잎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앞뒤 베란다 문을 열어놓았더니 바람이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쪼르르 달려 나간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기분이 새끼발가락 끝에서 머리카락 끝까지 톡톡톡 피어오른다.


초등학생 때 개학 전날 밤이면 우리 집은 늘 눈물 바람이었다. 나는 밥상 위에 일기장을 펼쳐놓고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일기를 썼다.


“그러게 미리미리 좀 하지.”


옆에서 타박 소리가 들려오면 ‘그러게. 미리미리 할 걸 그랬지’라는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와 눈물로 쏟아져 내렸다. 방학 시작하자마자 숙제를 팽개쳐두고 밖으로 쏘다니기만 했던 일이 사무치게 후회스러웠다. 탐구생활이나 만들기 숙제 같은 건 좀 밀려도 그럭저럭 할 수 있었지만 일기는 달랐다. 당장 보름 전의 날씨가 기억나지 않았다. 부모님께 물어보고, 오빠한테 물어봐도 알 수 없을 땐 잔머리를 굴려 애매하게 구름 위로 반쯤 떠오른 해를 그려 넣었다. 그런 뒤 시작했다. 일기 지어내기를.


“그렇게 울지 말고 적당히 반만 써. 한 바닥 채우느라 시간이 더 걸리잖아. 반만 쓰고 조금이라도 자야지.”


엄마가 옆에서 어르고 달랬지만 고지식한 나는 꾸역꾸역 하루 한 바닥씩 일기를 써나갔다. 일기를 쓰다 고개를 들면 뿌옇게 밝아온 새벽하늘이 보였다. 하늘은 자꾸 밝아지는데 써야 할 일기는 아직도 남아 있으니 초조함이 폭포처럼 덮쳐와 또다시 눈물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정말 학교로 출발해야 하는 그 시간에 딱 맞춰 일기 숙제를 끝마쳤다. 부랴부랴 준비하고 허둥지둥 다른 숙제를 챙겨 종종걸음으로 학교에 갔다. 그렇게 쓴 일기는 장려상, 우수상, 최우수상 딱지를 붙이고 교실 뒤에 전시되곤 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딱히 잘 써서 상을 받았다기보다는 일기를 한 바닥씩 꽉꽉 채워 쓴 아이가 별로 없었기에 질보다 양에서 승리한 것 같지만….


울며불며 난리를 쳤으면 다음 방학 땐 미리미리 일기를 써야 하거늘 시간이 흐를수록 느는 것은 잔머리와 요령뿐이니, 일기장에 그날그날의 날씨만 적어두고 팽팽 놀기를 반복했다. 무엇이든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고 보는 게으름이, 지나간 시간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순간의 쾌락에 끌려다니는 의지박약이, 현실과 타협할 줄 모르는 고지식함이 복합적으로 빚어낸 희비극이었다.


어쩌면 내 마감 인생은 이때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다. 마감에 쫓겨 글을 쓰는 인생, 부옇게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초조한 눈으로 노려보며 책을 마감하는 내 인생은 코찔찔이 어린 시절에 이미 정해졌던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등줄기를 타고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운명이란 정말 존재하는 것이었더란 말이냐!


내 최초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내가 사람을 가려가며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처럼 티 나게 편애하는 사람이 선생님이 된다면 분명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거라는 생각에 고이 접어 묻어버렸다.


그다음 꿈이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쓴 일기가 칭찬을 받고 독후감 대회에 나가 쓴 글이 곧잘 상을 타오면서 ‘내가 잘하는 일이 이건가? 그렇다면 이 길을 가야지’라고 생각했다. 딱히 정해놓은 분야도 없었다. 소설가가 되어야지 했다가, 시인이 되어야지 했다가, 수필가가 되어야지 했다가, 어쨌든 글 쓰는 사람 안에서 왔다 갔다 하며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글 쓰는 사람이 되려면, 글쓰기에 대해 배우려면 국문과에 들어가는 게 당연한 순서라 생각했으므로 국문과에 들어갔다. 졸업 후에는 돈을 벌어야 했다.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작가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글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출판사에 취직했다. 돈도 벌고, 글 쓰는 데 도움도 되니 일석이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뒤돌아보면 중학생 때부터 비교적 명확한 꿈을 갖고 한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온 셈이다.


꿈이 있으면 행복할까? 꿈이 없으면 불행할까? 목표가 있던 나는 행복했는가? 목표로 가고 있는 지금 나는 행복한가? 달리다 멈춰 서서 문득문득 이런 질문을 던졌다.


꿈이 있었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다녔으나 글을 쓰지 않는 내가, 야근을 하고 회식을 하고 집에 들어와 쓰러져 잠만 자는 내가 바보 같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늘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손에 잡고 있는 일에는 충분한 애정을 쏟지 않았다. 충분한 애정을 쏟지 않아서, 작가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서 내가 만들고 있는 책들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자괴감과 죄책감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시간이 생겨도 글을 쓰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을까? 작가의 삶이, 그들이 누리는 것들이, 작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선망에 찬 시선이 갖고 싶었던 것뿐 아니었을까? 깊게 뿌리 내리기 위해 고통스럽게 참고 견뎌온 시간은 보지 않고, 가지에 매달린 알록달록한 열매만 부럽다 갖고 싶다 탐내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의심이 싹터 올랐다.


갑자기 길이 사라져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도는 기분이었다. 일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니까 글을 못 쓰는 거야. 텅 빈 속을 들키지 않으려고, 길을 잃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현실을 방패막이 삼았다. 비겁한 녀석이라고 스스로를 욕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으니 행복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한 건 그래도 글을 놓지는 못했다는 거다.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그렁그렁한 눈으로 바라보며 한 바닥씩 공책을 채워나가던 고지식함 때문인지 아직도 글을 쓰겠다 고집을 부리고 있다. 등교시간까지 여유가 조금 있고, 공책도 한 바닥을 채우지 못했다. 인정사정없는 시간에 쫓겨가며 꾸준히 글을 채워나갈 수밖에.


이왕이면 글 쓰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 싶어서 선택한 편집자도, 자괴감과 죄책감을 심어주었던 그 직업도 지금 와 돌이켜보면 생각지 못한 방향에서 내 등을 밀어주는 따뜻한 바람이었다. 원고를 다듬는 기술,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익혔을 뿐 아니라 글을 쓰겠다는 나의 말에 누구 하나 ‘배고프고 고단한 그 일을 뭐 하러 하느냐’ 반대하지 않았고, 열심히 하라고,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잔뜩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슬그머니 건네준 책들이, 힘내라고 토닥여준 다정한 손길이,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준 마음들이 방패를 내리고 비겁함 속에서 천천히 빠져나올 수 있도록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라라랜드>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은 해피엔딩을 맞지 못했지만 각자가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는 점에서는 해피엔딩이다. 그리고, 그래서 영화적인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꿈을 가지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꿈을 꾸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젊은이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싫었다. 열정적으로 일하지 않는다고, 무기력하다고 꾸짖는 말이 싫었다. 어쩌면 내가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기에, 무기력하게 상황에 끌려다니고 있었기에 그 말이 듣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라라랜드>를 보면서 ‘꿈을 가지라’는 말이 내내 불편했던 이유를 한 가지 더 깨달았다. 꿈을 바라보는 이중성. 우리는 꿈만 꾸며 살 수 없다. 사람 노릇을 해야 한다. 부모님의 생신·환갑·칠순, 친구의 결혼·생일 같은 경조사를 챙기며 살아야 한다. 남들처럼 번듯하게 사람 노릇을 하며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말하는 ‘꿈을 가지라’는 말 속에는 ‘꿈꾸는 일을 해서 성공해’, ‘그 일로 돈을 벌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돈만 버는 삶은 의미가 없고,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돈은 벌지 못하는 삶은 가치가 없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세바스찬이 정통 재즈를 연주하며 살길 바랐다. 재즈를 다른 장르와 혼합하는 키이스의 밴드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랐다. 키이스의 밴드가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세바스찬이 가고자 하는 길과 달랐기 때문에. 하지만 밴드에 들어가 투어를 다니고 인기를 얻고 돈을 벌고 여자친구 부모님께 번듯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그의 마음 또한 절절히 이해되었다.


맞바람 속에 몸을 누이고 지금 참 행복하다 생각한다. 더 이상 자괴감도, 죄책감도 들지 않고 비겁하다고 나를 욕하지도 않는다. 다음에는 무슨 글을 쓸까, 어떻게 쓸까 고민하는 시간이 즐겁다. 쓰고 싶은 글이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럼 됐다, 싶다. 내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나도 번듯한 사람이 되고 싶다.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싶고, 같이 여행도 가고 싶고, 주변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고, 예쁜 옷도 사고 싶다. 서른여덟 살, 겨우 내 용돈만 벌며 몸도 성치 않은 부모님께 얹혀사는 철딱서니 없는 딸이 아니라 번듯한 직장을 갖고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며 당당히 독립된 삶을 사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면 미아는 아직 오디션을 보러 다니겠지. 아니면 배우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았을 거야. 어쩌면 꿈을 포기하지 못해 배우의 길로 돌아왔을지도 몰라. 세바스찬은 재즈바를 열지 못했을 거야. 가게를 열었다 해도 매출을 보며 한숨지었겠지. 현실은 녹록지 않으니까.


아마 나의 미래도 해피엔딩이긴 어려울 것이다. 내가 쓴 글이 책으로 나올지 알 수 없고(책은 나와야 나온 거니까) 책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책 팔아 생계를 꾸려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뭐, 지금 행복하면 된 거 아닌가? 앞일은 다가오면 그때 또 생각하면 되지. 어쩌면 내게도 영화 같은 엔딩이 찾아올지 모르잖아? 천하 태평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니 그렇게 일기를 미뤘겠지…. 쯧쯧.)


꿈이 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꿈이 없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며, 꿈꾸는 사람이 훌륭한 것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시원찮은 것도 아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선택하고 책임지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멋지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삶을, 삶 그 자체로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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