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새겨진 기억을, 흔적을 성실하게도 지워 나가고 있다.
잊어야 그럭저럭 살 수 있지만 잊고 싶지 않은 기억.
잊고 싶지 않지만 잊을 수밖에 없는 기억.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
내 손가락은 길고 곧고 부드럽다. 어딜 가면 손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마 내 신체 부위 중에서 예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어본 곳일 것이다.
이런 내 손을 엄마가 하염없이 쓰다듬던 때가 있었다.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손등을 쓰다듬고, 손가락을 잡아보고, 단단하게 불거진 뼈를 꾹꾹 눌렀다. 한참 전이지만, 지금보다 더 어렸지만 나는 알았다. 엄마가 누구의 손을 쓰다듬고 있는지. 내 손에서 누구의 흔적을 찾고 있는지. 무얼 확인하려 하는지. 나와 함께 있던 엄마는 나와 함께 있지 않았다. 나를 보고 있던 엄마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걸 너무 알겠어서 마음이 아팠다. 화가 났다.
이 말을 들으면 오빠는 싫어하겠지만 나는 오빠와 닮았다. 튀어나온 눈썹 뼈, 살 많은 눈두덩이, 동글동글한 콧방울, 웃을 때 파이는 팔자주름, 길고 곧은 손…. 그래, 너네 남매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어렸을 때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면 그래, 너네 누구 집 애들인지 알겠다 소리를 들었을 만큼. 그렇게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 존재였다.
어릴 때 여름방학이 되면 한 살 아래의 사촌 동생이 곧잘 집으로 놀러 왔다. 오빠와 나와 동생은 학교 운동장에도 가고, 학교 뒤 낮은 산에도 오르고, 산 너머 논에서 개구리, 우렁이 등을 잡기도 하며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좁은 논길을 한 줄로 쪼로록 서서 걷고 있을 때였다. 앞서 걷던 오빠가 갑자기 뒤돌아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왜 그래?” 소리쳐 물었으나 오빠는 대답하지 않고 나를 지나치고 동생을 지나쳐 저만치 달려갔다. 앞으로 계속 걸어가던 나는 곧 오빠가 달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 앞에서 뱀 한 마리가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우리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 동생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오빠가 달려간 방향으로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누나, 어디 가?” 동생의 물음이 귓가를 스쳐 뒤로 멀어졌다. 큰길가로 올라오니 오빠가 허리를 접은 채 헉헉거리고 있었다. 그 옆에서 나도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헉헉거렸다. 저 멀리 논길에서 “우앗, 씨, 뱀이다!” 사촌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뱀이 오면 온다고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냐.” 내가 오빠에게 투덜거리고 있으려니 곧 사촌 동생이 도착했다. 역시나 헉헉거리며 동생은 말했다. “와, 씨. 둘이 어쩜 그렇게 똑같냐. 뱀이 오면 온다고 말해주고 같이 도망쳐야지 혼자 살겠다고 그렇게 뛰어가냐. 와, 진짜 너무한다, 너무해.”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 놀라고 당황하고 무서워서 나 역시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그저 뛰기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빠와 눈이 마주쳤다. 오빠도 그래서, 나처럼 그래서 아무 말 없이 뛰었던 거구나. 우리는 동생의 원망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배를 잡고 낄낄거렸다. 그래, 그렇게 우린 겁쟁이인 게 닮았었지.
오빠와 나는 꽤 좋은 파트너였다. 공장 한편에 놓인 작업대 위에 기다란 새시를 올려놓고 탁구를 쳤고, 집 안에서 풍선을 공 삼아 배구를 했고, 빈 음료수 병을 세워놓고 볼링을 쳤으며, 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가 거기 있는 아이들과 야구, 피구, 땅따먹기, 개뼉다귀, 콘테찌빵, 구슬치기, 비석치기 등 온갖 놀이를 함께했다. 롤러스케이트를 처음 함께 탄 사람도, 나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도 오빠였다. 내 친구 동생을 함께 놀리고 울리고 도망치고 잡혀서 혼나던 시간. 함께 잠들고 함께 일어나 함께 놀던 시간. 함께 싸우고 삐지고 화해하고 또 싸우던 시간. 그래도 미움보다는 아끼는 마음이 더 컸던 시간. 그 시간이 쌓이고 쌓여 말투, 표정, 몸짓 같은 것이 닮아갔으리라. 같은 말투, 표정, 몸짓 같은 것이 내 몸에 쌓이고 쌓여 깊이 각인되어 있었으리라.
어떤 식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남겨진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상실이 있고, 조금씩 결이 다를 그 모든 상실을 내가 제대로 잘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형제를 잃은 상실은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음에 어떤 그늘이 드리워지는지, 몸에 어떤 슬픔이 새겨지는지, 기억에 어떤 자물쇠가 채워지는지, 앞으로의 시간에 늘 누군가가 놓쳐버린 그 시간이 어떤 식으로 겹쳐지는지. 무엇을 부정당하고, 무엇을 억압하며,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 어딘가에서 나와 비슷한 상실감을 안고 홀로 괴로워하고 있을지 모를 누군가에게 내 목소리가 가닿는다면 좋겠다. 나는 그랬는데, 당신은 어땠나요? 말을 걸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건네는 이야기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저 여기 있어요 손 들고 일어난 내 행위가 누군가의 마음에 위안으로 다가가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오빠가 뜨거운 불 속에서 재로 변해가고 있을 때 나는 화장터 식당에 앉아 불어터진 우동을 먹었다. 생이 소멸하는 장소에서, 육신이 사라지는 장소에서 나는 불어터진 우동으로 생을 이어가고 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어김없이 솟아나는 삶을 향한 의지가 그렇게 씁쓸하고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그 상황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그 어긋남이 슬퍼서 눈물이 났다. 창으로 비쳐드는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눈물이 났다. 불어터진 우동과 미지근한 국물이 너무 맛이 없어서 눈물이 났다. 우동 옆에 놓인 노란 단무지의 색이 너무 고와서 눈물이 났다. 거기 앉아서 그러고 있는 내가 싫어서, 거기 누워서 그러고 있는 오빠가 미워서 눈물이 났다.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함께할 수 없구나 싶어서 눈물이 났다. 세상이 온통 슬픔투성이여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보이는 것 뒤에는 늘 슬픔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아버린 사람에게, 나보다 더 아파하는 사람 옆에서 아프다 내색할 수 없었던 사람에게, 슬픔을 견디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을 끌어안고 또 다른 상처를 몸에 새기고 있는 사람에게, 먼저 간 사람이 애도의 대상이 아닌 질투의 대상이 되고 그 감정을 마음속에 죄책감이란 이름으로 쌓아간 사람에게, ‘내가 대신 죽었다면 이 사람들의 슬픔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생각한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편지를 띄우는 심정으로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내 슬픔의 웅덩이를, 나조차 돌보기를 잠시 미뤄두었던 내 슬픔의 웅덩이를 함께 들여다보고 함께 가꿀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살아 있다면 오빠는 이제 마흔이 되었을 것이다. 마흔의 오빠는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나와 닮았을까? 여전히 곧고 긴 손을 갖고 있을까? 오빠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말투, 표정, 몸짓 같은 것도. 늘 함께였던 어린 시절이 희미해진다. 그건 또 그것대로 가슴 아픈 일이라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잊어야 그럭저럭 살 수 있지만 잊고 싶지 않은 기억. 잊고 싶지 않지만 잊을 수밖에 없는 기억.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 머리 위에서 지치지도 않고 쏟아지는 시간이라는 물줄기가 내 몸에 새겨진 오빠의 기억을, 흔적을 성실하게도 지워 나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제 엄마는 내 손을 그런 식으로 쓰다듬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건 그것대로 또 슬픈 일.
겨울이 돼서 쌓인 눈을 보면 오빠를 떠올린다. 오빠가 있다면 눈싸움하러 나가자고 할 텐데. 오빠는 귀찮다고 짜증을 내다 결국엔 같이 나갈 텐데. 하기 싫다고 하고선 나에게 먼저 눈덩이를 던질 텐데. 오빠의 부재가, 함께 놀던 내 인생 최초의 친구가 이제는 없다는 사실이 참 많이 아쉽다. 연탄재를 넣고 눈을 뭉쳐 공격력을 강화하는 방법 같은 건, 그런 야비한 방법 같은 건 다 오빠한테 배웠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