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까지 오랜시간을 망설였다. 이제는 꽁꽁 숨겨둔 상자 속 기억들을 들춰 낼 준비가 되었을까... 그 기억들을 끝까지 써내려갈 수 있을까... 이 글을 마칠 때쯤 조금은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을까...
그 시작은 2019년 추석이 막 지난 9월이다. 여러모로 복잡한 마음에 오랜만에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었다. 집에 돌아와 마주한 엄마의 첫 한마디, "이번엔 우리 희정이가 유독 보고 싶더라." 그러곤 꼬옥 안아주셨다. 영문도 모른채 엄마 옆에 누워 재잘재잘 여행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다음날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빠가 툭 던지듯 말을 건내셨다. "너네 엄마, 암덩이가 있을 수도 있단다." 날벼락 같은 소리에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엄마가 건강검진을 받다가 복부 초음파에서 혹이 발견되어, 큰 병원에 예약을 잡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엄마는 조카들을 봐주러 언니네 집에도 가고 아무일도 없었던 듯이 지내고 계셨다. 그래 괜찮겠지.
몇일이 더 지났다. 엄마는 내가 옆에서 재잘재잘해주니 통증을 덜 느끼는 것 같다며, 오늘은 어디가지 말고 집에 있어달라신다. 속이 매스꺼워 음식도 제대로 못 삼키시고 우유를 마시며 통증약을 드시며 하루하루 흘러갔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평소 아프다는 투정 한번 해본 적 없는 엄마가 퇴근하신 아빠를 보며 "죽을 만큼 아프다."고 말하셨단다. 병원 예약날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응급실로 가는 길이라고, 퇴근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서둘러 검사를 하고 급히 응급실에 입원을 했다. 그렇게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정식으로 입원 수속을 밟았다. 퇴근 후 병원에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빠가 울먹이시며 건낸 한마디, "니 엄마 6개월 남았단다." 드라마에서나 듣던 이 청천벽력같은 소리는 뭐지, 불과 보름 전만해도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우리 엄마가 어떻게 된다고...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목놓아 울었다. 유독 엄마 밖에 모르던 나인데, 내 세상 전부인 우리 엄마인데... 엄마는 불안한 기색을 숨기려 애써 괜찮다고 하신다. 수술하면 다 나을꺼라고.
그렇게 엄마와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회사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쩌면 엄마와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인데 24시간 옆에 붙어 있고 싶었다. 엄마는 의사가 올 때마다, 수술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셨다. 너무나 살고 싶어하는 모습... 엄마는 최근 1~2년 행복하다고 자주 이야기하곤 하셨다. 이제 가족이 모두 자리잡아, 엄마의 유일한 걱정은 내가 시집가는 거였다. 조카들도 이쁘게 크고 있고, 나도 엄마와 시간을 더 보내려 여행도 다녔다. 아빠도 술을 끊으시고 다정다감해지셨다. 이제 우리 엄마 고생 끝, 행복 시작인가 했는데, 꿈이길 바라고 또 바랬다.
의사는 단호하게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라고 했다. 아빠가 사정하고 애원해서 조직 검사를 받았다. 또 한번의 청천벽력같은 소식, 일반암보다 더 나쁜 육종암이란다. 그래도 작은 희망은 수술이 가능한지 재검토를 해보겠다고, 그렇게 피말리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의사의 한마디에 엄마의 목숨이 달린거다. 빨리 좋은 소식을 들어야하는데, 의사가 올 때마다 숨이 막힌다. 극도의 긴장감으로 손발을 떨려온다. 제발 그 말만은 하지 않았으면...
간호사가 왔다. 내일 수술을 할 수도 있으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병이 큰 주사를 꽂아두고 갔다. 엄마랑 손을 꼭 잡고 퇴원하면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몇 시간 후, 의사가 나를 따로 밖으로 불러낸다. 엄마가 너무 살고 싶어하셔서,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다고. 최종 결과는... 수술 불가
새로운 의사가 찾아와 서둘러 항암치료를 하자고 했다. 주변 환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그 무서운 항암을 해야한단다. 내가 엄마 옆에 꼭 붙어 있을 꺼니까, 우리 함께 이겨내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엄마도 나도 무서운 마음은 숨긴 채, 꼭 이겨내서 빨리 집에 가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항암 치료 준비에 들어갔다. 아침에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내가 엄마 옆에서 강해져야 한다고 울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몇 시간 뒤, 의사가 다시 찾아왔다. 엄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으셔서, 바로 항암에 들어갈 수 없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희망이 사라져갔다.
그 날... 의사는 한 시간 단위로 찾아와 엄마의 수명을 줄여 말한다. 일주일 남았다고, 3일 남았다고, 오늘 넘기기 힘드실 것 같다고... 그렇게 마음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의 마지막이 왔다. 희미하게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남긴 채, 엄마는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