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기약 없는 시작

비긴어게인 : 잠시 쉬어가는 것일 뿐

by 평생사춘기


2020년 4월 1일, 거짓말 같은 내 생일날,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을 주기로 했었다. 바로, 세계여행의 시작, 비행기를 타고 첫 여행지인 스코틀랜드로 떠나는 비행기표였다.


2018년 11월 1일 갑작스럽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내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 9시 출근을 하고 일을 마치면 퇴근을 했었다. 그렇게 10년, 평범하게 나름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내며, 성실하게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잘 지내고 있었다. 내 삶의 버팀목이었던 엄마의 부재, 지옥 같은 2019년을 보냈다. 수시로 쏟아지는 눈물을 애써 참지 않았다.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었고,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루하루 버티는 게 힘이 들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휴식이 필요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인스타그램에서나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계여행'을 결심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은 만나고 새로운 경험 하면서 그다음을 생각해보자. 일단 1년 동안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휴식을 취해보자. 춤도 실컷 추고, 여행도 실컷 하고 나면, 나에게도 변화가 오겠지. 다시 살고 싶은 이유가 생기겠지. 그렇게 힘든 2019년을 새로운 삶을 준비하며 버텼다. 내년 3월까지만 견뎌내자. 조금씩 생기를 찾아갔고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 떠나는 거야. 후회는 없다.


2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시아에서 기승을 부리고, 3월 전 세계로 퍼져가기 시작했다. 그래 일단 3월 중순까지만 지켜보고 결정하자. 사태는 심각해져만 갔고, 댄스 이벤트들이 하나둘씩 취소되었다. 결국 내 계획은 기약 없이 보류되었다. 그래도 슬프지는 않았다. 그래, 이번 기회에 쉬어가자. 정말 푹 쉬었던 적이 언제인가. 평일엔 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이면 강습을 했다. 실컷 잠도 자고, 드라마 몰아보기도 해야지. 그렇게 3월 한 달을 보냈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오랜만에 그리운 친구들과 연락도 했다.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그림도 그리면서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나의 의지로 채워나갔다. 내 인생이 정말 내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평일 낮에 동사무소에도 갈 수 있고, 커피숍에 앉아 멍 때릴 수도 있고, 배워보고 싶었던 수업들도 하나씩 신청을 했다. 4월 그렇게 나름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미래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빼고는 말이다. 잘한 결정일까,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나중에 후회를 하게 될까, 이제 나란 사람을 무엇으로 소개해야 할까, 왜 하필 지금 이런 일이 생겨났을까 - 갑작스러운 시간의 여유에 좋으면서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생겨난다.


그래, 15년 전 유학을 준비하면서도 까막 득했고, 유학을 가서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해낼 수 있을지, 뿌연 안개 속이었다. 난 그저 나의 결정을 믿고,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보냈을 뿐이다. 흘러가는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어떤 기회가 나에게 주어질지, 무엇을 하게 될지, 당연히 모르는 거다. 나 자신을 믿고 한 걸음씩만 나아가면 된다. 그리고 지금은 잠시 쉬어가도 된다. 10년을 성실하게 살아온 나에 대한 선물의 시간이다. 다시 한번 나를 가다듬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떠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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