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100세가 되신 할아버님이 50대처럼 건강하게 현역으로 일을 하고 계셨다. 창문에 끼는 유리를 만들고, 그 유리를 자전거에 검은색 고무끈으로 묶어서 주문지까지 배달을 하고 계셨다. 아주 건강해 보이셨고, 몇 십kg 무게의 유리를 거뜬히 균형 맞게 자전거로 운송을 하셨다. "대단하십니다. 얼마나 이 일을 하셨어요?" "40년 했어~" 와 같은 일을 40년이나 하신 전문가셨다. 오랜 세월 하나의 일을 해오셨구나 싶었다. 할아버지의 그 다음 말이 뒤통수를 쳤다. " 60세때 심심해서 취미로 시작해봤어." 100-40= 60 이건만, 그 간단한 계산은 하지 못했다. 40년이란 세월을 한 우물만 판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만 했다. 60세에 취미로 시작해도 40년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지금 회사를 다니시는 부장님들은 대부분 50~55세이시다. 예전에는 정년까지 다니는게 하늘의 별따기였지만, 근로기준법의 강화와 최근 호황인 업황때문에 반강제적인 희망퇴직이 최근 몇 년 없었다. 그래서 55세 이후에도 임금피크제를 사용하셔서 58세까지 다니시는 분도 꽤 늘었다. 나이 들수록 좋아지는 대기업의 복리후생의 덕을 톡톡히 받으시기 위해 버티기에 들어가신 분들이 많다는 뜻이다.
50세가 넘으면 임원은 아예 물 건너 간다. 설마 하는 일말의 희망조차 사라지는 때다. 같은 조직에서 조직장을 3년 이상 맡지 못하게 하라는 제도까지 생겼다. 나이 든 부장급은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꼴이다. 원치 않는 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해 조그마한 자리라도 아니 역할이라도 꿰차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쭈그러들지 않게 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이 부서 저 부서의 공격과 마찰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부서의 위계를 잘 파악해서 상위 부서에게는 약한 모습을, 하위 부서에게는 강하게 지시하면서 일을 넘기는 노하우 아이템(강약약강 아이템)이 장착되어야 한다. 불확실한 일에 섣불리 얘기해서 책임지고 물러나야 하는 불상사를 막아야 한다. 위에서 정확히 지시받고 내가 보고해야 하는 일 외에는 다른 일은 보여도 안 보이는 척 시선을 돌리는 기술 또한 중요한 아이템(시선회피 아이템) 중에 하나이다. 상사에게는 작은 일이라도 크게 부풀려서 과정을 스펙타클하게 전달하는 건 가장 파워풀한 아이템(풍선효과 아이템)이다. 나의 공로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게. 위에 보고되는 조직마다의 주간업무를 보면 같은 업무를 작가에 따라 어떻게 포장해서 어떻게 보고하는지, 얼마나 읽는 맛이 다른지 맛볼 수 있는 묘미가 있다. 강약약강 아이템, 시선회피 아이템, 풍선효과 아이템을 장착했다면 임금피크까지 보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후배가 가져온 새로운 아이디어는 예전에 다 해봤어 그건 안돼 라는 보신, 보수주의적 접근을 한다. 내공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에서 쌓이는 것인데. 나는 해본 거지만 후배는 해보지 않았던 경험을 성공스토리만 전해준다고 내공이 쌓일까? "한번 해봐. 하다 안되는 건 내가 도와줄게."라는 말이 어려운가?
그러다보면 조직에서 틀니만 딸깍거리는 틀딱이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애사심이 활활 타올라 이들을 동기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젊은 친구들의 사기를 위해 이 분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거창한 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곧 퇴직하실 분들이, 나가면 전쟁이 아닌 지옥인 곳에서 생계를 유지하셔야 하는 분들이다. 10, 20년이 아닌 40년에 가까운 시절을. 모든 분들이 다 치킨을 튀기실 수도, 카페 사장님을 할 수도, 식당 주인을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사장님들끼리 계라도 만들어서 돌아가면서 식사를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세상 다 사신 분들처럼 회사 생활을 소극적으로 하시면서 인생을 소극적으로 만들지 말고, 적극적으로 제 2의 인생을 준비하셨으면 좋겠다. 적극적으로 태업을 하시더라도. 세상 뉴스와 회사 불만으로 하루를 보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으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