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다고 하니 응원해주는 사람도 많지만 반면에 걱정해 주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서야 옮겨? 부장급이 옮겨서 적응할 수 있을까? 가서 왜 이렇게 아는게 없냐고 구박받을 껄~ 한동안 엄청 힘들껄~ 이라고 직접적으로 농담반 진담반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고, 그 예전에 누구 알지 그 사람이 어느 부서 가서 완전 바보됐잖아 라고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간접적으로 우려를 비추는 사람도 있다. 그런 얘기 듣고 싶지 않아, 나는 고민을 충분히 하고 결심한거야라고 단호하게 얘기해버리면 좋겠으나, 지금의 불안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솔깃할 수 밖에 없는 얘기라서 진짜로? 어머 어떡해? 라고 맞장구 치면서 듣게 된다. 무수히 바보된 사람들은 두 손에 꼽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다. 대기업이라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그런 예들은 한트럭이 넘치게 갖다댈 수 있는게 사실이다.
사례 1) 조직개편으로 비슷한 기능을 합치자고 한 부서 10명 남짓 사람들을 다른 부서로 보낸 경우가 있다. 받은 곳에서는 점령군처럼 10명을 한 부서로 놓지 않고 조각조각 찢어서 다른 업무로 전환시켜 버렸다. 그리고 원래 있던 파트장 A에게는 파트 아래 소파트 아래 소파트의 소속 담당으로 그냥 두었다. 파트장 A는 야심이 있거나 정치력이 있는 스타일이 아니고 부서원을 걱정하고 잘 들어주는 공감형의 사람이어서 이런 변화에 상처를 받고 심한 무기력을 느끼게 된다. 특히 바뀐 곳의 파트장이 기존에 경쟁 모드의 사람이었어서 심하게 비난하고 압박하며 모든 정보 루트에서 제외시키고 방치시킨다. 이에 A는 1년 동안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괴로워하다가 퇴직을 결정하게 된다.
사례2) 기존 부서에서 주재원 등 승진 코스에 들었던 개발 부장 B님. 기존 사업이 정리되면서 다른 사업부 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천생 개발자에 온유한 성격을 가지신 분이라 어디서든 적응이 가능하다고 기대했지만, 옮긴 부서는 주니어급이 많은 부서인데다 새로 온 사람에게 텃세 부리고 안 가르쳐주고 막 대하기 유명했던 부서. 결국 주변 친구들의 드센 성격을 버티지 못하고 새로운 개발 기술도 배우지 못하고 상처만 가득한 채 개발을 떠나야 했고, 그 와중에 에너지를 너무 소진해버리고 무기력함에 길들여버려서인지 아주 소극적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관련 부서를 전전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공부 안 하는 사람으로 평판이 나 버려서 더 이상 개선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사례3) 본사 기획에서 성실성과 근성으로 승부 보시는 부장 C님. 성질 더럽지만 리더십 있는? 자기 맘대로 전사를 좌지우지하는 상사를 몇 년간 모시며 엉덩이힘으로 버티던 C님은 상사가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서 드디어 리더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기를 얼마지나 강하게 누르던 힘이 사라진 곳에서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반항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전사 관계부서 사람들이 조금은 가볍게, 혹은 만만하게 보면서 기존과는 다르게 일이 잘 안 돌아가고 무시당하는 나날들이 계속 되었고, 부서 내부에서도 전에는 뒤에서 궁시렁댈 지언정 앞에서는 권력에 순응하던 후배들이 온갖 들이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위아래로 너무 치이고 사람의 양면성에 치를 떨게 된다. 결국 조직장을 내려놓겠다고 통보하고, 다른 부서로의 이동을 계획해 놓았으나 그 부서에도 이미 다른 부장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갈 곳이 애매해져서 결국 아주 작은 업무만 담당하는 실무자 역할만 수행하게 된다.
내가 사원, 대리 시절 .. 이렇게 적응에 실패하고 무능(?)해 보이는 분들을 보면 겉으로 예의는 차리면서도 개인 능력이 부족했던 거지, 적응을 못하면 도태되는게 맞는거지.. 라고 속으로 판단해버리기도 했다. 심하게는 어휴 월급충들... 이라고 수근거리는 젊은 친구들도 많았다. 더군다나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일할 자리가 넘쳐났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한 사업을 접으면 다른 사업으로 옮겨서 초기에 자리잡고 일하기가 어렵지 않은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부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하는 얘기였던가. 부장급이 되어 존재감을 계속 유지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자리를 잡고 그 자리를 공격하는 수많은 어택에 대응하지 못하면 혹은 줄 한번 잘못 타면 그 다음 파도에 휩쓸려나가 갯벌 어딘가에 정처없이 떨궈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사업이 정리되고 넘어가는 시점에는 다른 세계로 바뀌는 것이니 많은 사람의 운세가 변하는 것 같다.
무수한 포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빗발치는데 전사자와 부상자가 넘어져서 무수히 흩어져 있는 전쟁터가 떠오른다. 전사자와 부상자에게 어떻게 된건지 괜찮은지 챙겨보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살아서 이 전투에서 이겨야 전사자와 부상자를 챙겨볼 여유가 생길테니 우선은 달려야 한다.
전사자는 우선 나중에 고민해야겠다. 전투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흥건한 피의 흔적들만 보고 겁먹어서 짐싸서 집에 갈 수는 없으니.. 살아남아 다음 전투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고, 고향으로 무사 귀환한 사람들도 있다. 전원 전멸 이라는 전투는 전쟁 역사상 없을 것이고... 누군가는 살아서 그 결과를 전했을테니 살아 남기만 해서 결과를 전하자. 승자까지 되려고 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