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극복 과정 (2/2)
이제야 Balance가 맞추어졌다. 성과는 이제부터.
20대 때는 목표가 아주 높았다. 어찌보면 허황된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예쁘고 싶었고, 인기도 많고 싶었고, 재미있는 말을 하고 싶었고, 친구들에게 연락 많이 받는 친구가 되고 싶었고, 주목받고 싶었고, 공부도 잘하고 싶었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시간도 효율적으로 쓰고 싶었다. 그렇게 많은 불명확한 목표가 짓누르다 보니 항상 힘이 없었다. 머리속만 복잡하고 막상 어떤 것 부터 해야할지 몰랐다. 고민에 가득한 20대를 보냈다. 머리가 복잡할때는 무작정 걷기만 했다.
그때는 의지도 높지 않았고,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일도 남이 보기에 폼나지 않는 것 같으면 은근슬쩍 의욕이 사라지고 하다 말기를 반복했다.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니 의지도 생기지 않고 성과는 더더군다나 없었다. 이것저것 벌려놓기만 하고 만족할만한 성과는 단 하나도 없는 20대를 보냈다. 그러다보니 멘탈도 약했고, 관계에서도 자신이 없었다. 혹은 그 반대여서 성과가 안 났는지도 모르겠다. 관계에서 눈치를 보느라 나만의 성과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는 많았지만, 무기력하게 누워서 보낸 시간이 너무 많던 때, 시간을 아깝게 흘려보낸 때, 처음 호언장담보다 결과물이 항상 초라하던 때, 나의 20대의 한숨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보니 20대 중반에 들어온 회사에서는 성과를 제대로 낼리가 만무했다. 동기들 중에 회사를 제일 먼저 그만 둘 친구로 꼽히던 나였고, 작은 일에도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했고, 나는 이런 단순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안되는 망상에 회사에서 수시로 해야하는 단순한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간단한 일도 쉽게 처리하지 못하고 너무나 고민하는 내 모습이 부담스러울꺼라 생각해서 더욱더 티내기 싫었고, 고요한 사무실은 어깨위를 더욱더 짓눌렀다.
이 악순환이 깨진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성과라는 것을 처음 맛본 것은 회사의 사이버 강의 하나를 마무리하면서 시작되었다. 조금은 어려운 과목이었고, 마무리를 못하면 돈을 물어내야 하는 상황. 이전에도 몇번 물어냈던 적이 있어서 그냥 넘겨버릴까 하다가 마음먹고 마무리를 한 적이 있다. 그 간단한 경험이 뭐라고, 내가 할 수 있다는 성취감으로 지금까지 기억이 될까. 그 기억이 조금씩 나를 마무리를 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주었다. 일만 벌리는게 아니라 마무리를 하는 인간으로.
그리고 30대가 넘어가면서 만나고 결혼한 남편이 긍정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라, 기본적으로 불안하고 의심많던 나의 멘탈을 안정적으로 다져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잘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사람으로 바뀔 수 있었다.
30대 때는 너무도 여유가 없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어떻게 가는지 모르던 때들. 체력적으로 너무 피곤했던 때였다. 경제적인 불안감과 시간적 여유와, 신체적 에너지가 떨어져있어서, 뭔가 일을 벌릴 에너지가 부족했다. 20대때 너무 아무것도 안하던 댓가를 치르는구나 싶었던 30대. 아이가 크면서 30대가 훅 가버렸다. 아이들 크는 사진 몇 장과 함께. 그래도 콩나물에 물 주는 것처럼 아이들은 쑥쑥 자랐다. 지나고 보니 지들 혼자서 자란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주말에도 엄마만의 시간을 두어시간 만들 수 있는 때가 슬슬 되었다.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거치면서 인간 관계에 대해 조금씩은 능숙해진 것 같다. '능숙' 이라는 말 보다는 '적당한 무심' 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데이터베이스를 쌓아서 어떤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할지 적당한 대꾸를 할 줄 안다. 내가 한 말, 들은 말에 연연하지 않고 적당히 넘길 줄 안다. 어느 정도 새로운 화제를 꺼낼 줄 안다. 정도의 수준이지만, 이 수준을 얻기 위해 몇십년의 경험이 필요했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면서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내 일에 집중해서 성과로 이어지는 과정에 에너지 손실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열등감'이라는 게 많이 없어진 상태. 나의 성과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목표한만큼, 노력한만큼 쭉쭉 성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상태가 이제야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