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한다 말하세요..라는 책을 읽다가
지금? 오직 한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누굴 만나고 싶어?라는 질문에 빼꼼히 안경을 쓰고 공부를 하다가 잠시 기지개를 켜며 생각에 잠긴 딸은 긴 머리를 다시 단장하며 " 예수님?" 하고 대답한다. 왜 냐는 질문에..
"단 한사람이라면 예수님을 꼭 만나고 싶어..엄마는?"
"나는 열 여섯살의 나를 꼭 만나고 싶..." 까지 말하는데 가슴 깊이 뜨거운 송곳이 내 눈물방울이 흐르도록 눈물 샘을 찌른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볼 아래로 두 줄기의 물이 똑 똑 떨어진다. 코를 킁하는 소리에 달려나와서는
"엄마 울어?"
"아니, 그냥..단 한사람을 만난다면 그때의 나를 꼬옥 안아주고 싶어서...."
여기 책을 쓴 작가가
'제주도에서 교통비 달랑들고 서울로 올라와 실력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동기들을 보면서 불안해하고 열등감에 빠져있던 김창옥을,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했던 김창옥을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라고 나왔는데 그때 엄마도 그랬던거 같기도 하고,
딸은 뒤에서 꼬옥 안아주며 "엄마!" 하고 부른다.
열 여섯살의 나는 붓과 물감으로 인정에 목마름을 위한 우물을 팠었다. 그 노력으로 우물 안의 물은 언제나 가득했지만 도르레가 없었다.
엄마 아빠는 예고가 뭔지도 모르셨고, 중학교선생님은 부모님을 설득하셨지만 시골에서 오신 부모님은 여자라면 상고가 최곤 줄 아셨다. 은행직원으로의 삶을 살길 바라셨다. 죽기보다 싫은 상고였고, 우여곡절 인문계를 가긴 갔다. 그땐 돈이 쫌 있는 데, 공부 못하는 집 아이들이 그림그려서 실기점수를 노리던 때였고, 그림으로 우물을 팠던 나는 그런 친구들이 부럽다 못해 밉기 까지 했었다. 심리적 결핍은 아마 그때부터 였던거 같다.
지금은 서울대 나온 친구들이 은행에 가지만 그땐 상고나오고 공부 잘하면 은행직원이 되곤 했던 때다.
가끔 부모님말 들을껄 하고 후회섞인 푸념을 하면 딸 아이는
" 엄마! 그럼 날 낳지 않았겠지? 그럼 내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거야..." 자주 나오는 레파토리지만 큰 위안이 되곤 한다.
만약에 지금 신이 단 한사람을 만나게 허락 해준다면 누굴 만날지 다시 물어도, 난 열 여섯 살의 날 만나고 싶다. 혼자 끙끙 앓으며 울지 말라고 말 해주면서 안아주고 싶다. 무슨일 이 있어도 공부는 포기하면 안된다고..그림 공부 안시켜준다고 정신줄 놓으면 안된다고 귀뜸해주고 싶다.
얼마전 어반스케치에 대해 알았다.
열 여섯살때 썼던 붓으로 그려보았다.
"우와~엄마!! 잘 그렸네~ 아!! 나 미술 수행평가
나두 이렇게 그리면 점수 잘 나오겠다!"
"인정의 목마름으로 점수를 따는건 좋지 않은거 같아~"
"잉? 그게 몬 말이야~~목 마르면 물을 마셔야지!"
세살땐가 "앞으로 그러면 안돼!" 하고 훈육 할 때
"그럼 엄마, 뒤로는 괜찮아," 해서 혼내다 웃던 일이 생각난다. 화도 눈물도 미련도 웃음으로 만들어주는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