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지 말고 함께 느껴요. 우리!
친절한 사람들이 주변에는 참 많다.
그리고 배려가 몸에 베인 사람도 주변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꽤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이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욕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연다면 주변에는 참~ 많은 따뜻함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주변은 많은 호의를 두고 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은 작은 자극에도 쉽게 웃고, 쉽게 운다.
어느 시점에서는 질문이 참 많아지기도 한다.
그때! 사명감을 가진 어른들 혹은 가장 가까운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고민보다는
자신의 경험 안에서 자신의 색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아이와 상호작용한다.
그나마 "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했을 때 아이에게 좋을까?"라는 작은 고민의 물음표를 던지는 부모는 부모로서의 자질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부모라고 모두 좋은 부모는 아니다. 하지만 나 스스로 좋은 부모가 되고자 노력한 부모는 이미 좋은 부모인 것이다.
자!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이는 모든 탐색을 마치고, 질문이 들어가는 시점에 첫 번째 질문이다.
"엄마! 왜 노란색을 노란색이라고 말해?"
당연한 것에 아이들만의 질문의 옷을 입힌 질문은 조금 당황스럽기만 하다.
단 한 번도 노란색이 왜 노란색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엄마는 '뭐라 설명해야 하지?'의 잠시 머뭇거림 후에
자신이 배운 데로 알고 있는 선에서 충분히 설명을 해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왜! 노란색의 이름을 가진 노란색이라는 아이를 노랑으로 부르는지 보다는
"내가 지금 노란색을 바라보고 있어요! 근데 그것이 궁금한데 나는 그 진리를 찾고 싶어요"라고 받아들였을 땐 조금 다르다
"우리 유나가 노란색을 노란색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궁금하구나? 유나는 뭐라고 생각해?"
"그건~ 노~~~~~랑 색은 노랗고 예쁘니까 그런 거지!"
어린 눈에 노란색이 참 예뻐 보이는 감각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 우리 예쁜 노랑~~~ 을 가진 것들이 뭐가 있나 밖에 나가볼까?"
세상에는 노랑으로 된 것들이 참 많다.
하지만 노랑이라고 다 예쁜 것은 아닐 수도 있고, 노랑이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이 노란색이라면 그 노랑 바탕에 뭘 그리고 싶을까?라는 나의 질문에
아이는 "그럼 엄마 온 세상이 노랑 색이면 어떻게 돼?"
나는 셀로판지를 사서 함께 노랑 안경을 만들어 쓰고 노란 세상을 함께 바라본다.
"엄마! 노랑은 왜 노랑인지 알았어! 계란 프라이에 있는 노른자가 '노랑'이라고 불렀을 때 제일 어울려! 그래서 노랑이라고 한 것 같다!"
"하하하 그렇구나~ 빨간 케첩이랑 어울린 노랑 계란 프라이 만들어 먹자!"
"좋아!!!"
작은 질문은 아이만의 색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정답을 알려주려고 애쓰기보다는
아이이의 시선을 따라 함께 나비가 되어 춤을 추며 이리저리 날아다녔을 때 아이의 우뇌는 자신의 욕구와 맞춰 신나게 세상을 탐색하게 될 것이다.
셀로판지는 비닐이라는 재질에 색이 입혀진 재미있는 놀잇감이다.
빛의 3요소를 쉽게 바라볼 수 있는 재료이며, 아이들이 셀로판지를 이용해서 이것저것 만들며 세상의 빛깔에 자신만의 빛깔을 비추듯이 입힐 수 있다.
셀로판지 놀이기법으로는 오리고 붙여색의 겹침을 표현할 수 있고. 종이에 구멍을 내고 위에 붙인 후 빛을 만나면
셀로판지의 색과 똑같은 그림자가 바닥에 드러난다.
바닥에 드러난 노란 셀로판지의 느낌은 아이에게 매우 신선한 자극일 수 있으며, 이를 이용한 놀이를 한참을 진행한 후에
아이가 물었던 질문을 다시 해보는 것이다.
"노랑은 왜 노랑이라고 부를까?"
아이들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 아이들이 스스로 깬 감각들의 대답도 각각 다를 것이다. 그러니 제발 아이에게 정답을 말하기보다는 그 과정을 즐기는 삶 자체를 선물하자 셀로판지는 문구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제발 하나 부탁하건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자신이 쉽게 가르치지 위해 일률적인 작품 틀에 영혼 없는 셀로판지를 붙이게 하지 말라!
똑같은 틀은 똑같지 않을 때 무척 불안하게 만드는 최악의 교수법이다.
차가운 물에 개구리를 담그고 서서히 불을 때어 죽음을 맞이하는 개구리들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 대한민국의 유아들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초등학교도 마찬가지다!
예술적 감각을 살리는 예술 선생님들이 각각 기관에 배치되어 아이들의 창의적인 감각을 아이들 마다 모두 다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은
우리나라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안 좋은 암기법을
빨강이 red 인지는 3학년 때 알아도 된다.
빨강을 보면 제발 red가 떠오르는 아이로 만들지 마라
red를 red로 자동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시기를 10살 때로 늦추어도 된다.
다만 세상의 모든 red를 바라보는 감각을 깨우는 시기는 아이가 질문한 그 순간이다. 그 질문을 가르치느라 놓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