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다! 내 자리!

기꺼이 내려오기

by 부키

그런 날이 올 것은 알고 있었어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도 했고요.

어쩌면 이미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엄마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일이요.



큰 아이가 얼만 전에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대학원 진학 전 마지막 방학을 보내고 있어요. 지도 교수님이 잘 쉬다 오라 하셨다고요. 어디든 갈 수만 있다면 다 다녀오는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일본도 다녀오고요. 이젠 부모의 허락을 받아 여행을 가야 하는 나이는 아닌지라,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잘 다녀오라는 이야기 정도 합니다. 생각나면 약간의 용돈을 엄청 생색 안 내면서! 보태지요. "쓸데없는 선물 사 온다고 신경 쓰지 말고, 필요한 것 없으니까! 잘 먹고 즐기고 와라!"



짧은 일정을 다녀온 아이가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꺼냅니다. 비닐백에 담긴 파스였어요. "엄마, 일본 파스 좋다잖아요. 그래서 몇 개 사 왔어요." "파스? 뭘 샀어~ 그래! 집에 두고 잘 쓰자!" 그렇게 집에 상비약으로 일본 파스가 생겼습니다. 다행히 동전파스는 없었어요. 전 동전파스가 별로였거든요.



여행 다녀온 며칠 후,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모양이었어요. 물어보진 않아도 알 수 있잖아요. 그리고 손에 검은색 작은 종이 가방이 보였습니다. 흰색 글씨로 브랜드명이 쓰여있는...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선물인가 봐요. 사이즈로 보니... 지갑? 화장품? 뭐든요. 제 것보다 좋은... 더 신경 써서 골랐을...



속으로 웃음이 나왔어요. 저는 뭘 그리 유심히 보았을까요? 안 보는 척하면서요. 당연히 묻지도, 아는 체 하지도 않았습니다.






엄마가 최우선으로 순위에 오르는 것이 언제일까요? 그리고 얼마나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유소년 기를 지나면서, 친구가 가장 소중해지고, 연인이 소중해지고, 배우자, 그리고 자녀가 가장 우선순위에 오르게 되는 인생의 시간과 순서가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도 그랬거든요. 아들이라고 다를까요. 오히려 그 변동이 너무 급격해서 순위를 내주어야 하는 사람은 멀리가 날지도요. 그 어려운 것을 엄마는 감당해야 합니다.



청년이 되는 아들을 보는 것은 독립시켜야 함을 인지하게 합니다. 더불어 부모도 자식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해요. 독립한다는 것이 서로에게 소홀해지는 것은 아닐 테지요. 그럼에도 새로운 관계에 치중해야 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요. 오히려 그러지 못하는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은 다른 카테고리로 옮겨지는 것일 수 있어요. 언제나 한결같이 꾸준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범주로요. 특별히 더 애쓰지 않지만, 군불의 온기로 충분히 좋은 그런 관계 속에 머무르는 것 아닐까요. 여전히 집중해야 하는 관계는 아닙니다. 스스로 나의 순위를 내려놓고, 옮겨 앉는 부모가 지혜롭겠지요. 때를 아는 것만큼 어렵고도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작은 아이에게서, 막내에게서도 순위가 내려오는 중입니다. 최우선 순위에 있을 때, 더 잘할걸 그랬나요? 그런다고 더 천천히 내려오게 되진 않겠지요. 그리고, 굳이 천천히 내려 올 이유도 없습니다. 내려와야 하는 때에 멀미 나지 않게, 잘 내딛는 근력을 키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거의 매일을 글을 쓴다고 앉았더니, 승모근이 많이 뭉쳐요.

파스를 써 봅니다.

"음! 좋은데!"

화장도 거의 안 하고요. 가방은 에코백도 충분하거든요.

선물을 잘 골랐네요!

엄마를 잘 알고, 배려하는 선물이었답니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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