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합리적 소비의 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제법 사람들이 많다.
상행하는 에스컬레이에 서 계신 중년의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무엇인가 품 안에 안고 오는.
'아니? 저것은?'
그때, 아주머니 한 분이 급하게 에스컬레이터에서 걸어 내려가신다.
서 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다음 하행 에스컬레이터에 안착하시더니 또다시 걷기를...
그리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엄청 바쁘시구먼,... 혹시?'
오픈 시간이다.
아직도 그 행사를 하는 걸까?
그럼 나도?
휴일 대형마트에는 안 가는 것이 상책이다.
꼭 가야 하는 일이 있다면, 오픈 시간에 맞추어 일찍 다녀오는 것이 오랜 지침이다.
꼭 가야 하는 일정만, 원하는 목록만 얼른 사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목적은 시계 배터리 교환이었다.
마트 오픈 시간을 조금 넘었지만, 벌써 사람들이 많다.
그 와중에 벌써 무엇인가를 사서 돌아가는 아저씨,
나보다 더 급히 뭔가를 사려 서두르는 아주머니.
나도 한 번 사볼까?
물론 나의 리스트에는 없는 것이다.
'벌써 품절일 거야. 괜히 몸에 좋지도 않은 거 사려고 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혹시 있으면 한 번은 살까? 궁금은 하잖아?'
이렇게 나의 합리적 소비는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좋아, 있으면 사야지!'
그리고, 계산대를 향해 가는 통로에서 발견하였다.
여전히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구매제한이 있었다.
일인당 세 개까지.
그 옆에는 함께 인기를 얻고 있는 타사의 제품도 같이 판매되고 있었다.
그리고, 친절한 안내문에 있는 대로,
나는 세 개의 먹태깡과 한 개의 노가리칩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뜻이다. The Logic of Life (경제학 콘서트, 팀 하포드)의 저자에 의하면, 그 선택의 기준은 일대일 거래와 인센티브에 대한 반응이라고 한다. 내가 주고받는 것으로 발생하는 인센티브와 가치가 우리를 선택하게 한다. 재화를 얻는 것뿐 아니라, 행동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하지만, 가끔은 부조리한 선택을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나의 선택은 그 합리성과 부조리의 중간쯤에 있었다.
분명, 불합리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예정되어 있었던 품목이 아닐뿐더러, 필요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물품도 아니다. 그저 온갖 미디어에 노출되어 소문만 들었던 물품일 뿐이다. 과자와 라면을 먹지 않겠다는 실천이 제법 잘 지켜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예정되어 있는 장거리 운전, 운전할 때 졸음을 깨우고 지겨움을 타파하는 데 스낵 한 봉지는 유용하다.
그렇게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매우 피곤할 것이다. 이럴 때 책맥 타임은 그야말로 노곤함을 풀어주기에 제격이다. 물론 기분만 그렇다. 그리고 마침 냉장고에 딱! 한 개의 맥주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선택에 대한 변명을 생각해 내며 주섬주섬 장바구니에 담은 것이다.
역시, 인간은 나약하다. 그러면서도 어리석게 치밀하다.
나의 변명을 합리화하기 위한 시간이다.
예상대로 간식이 아닌 안주이다.
다음날까지 짠맛이 남을 것 같다.
그리고,
토지는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