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고 있다
오랜만에 아침 산책을 나간다.
바쁜 오전 일정을 미뤄두고, 산책을 나가기로 한 것은 계획에 의한 행동은 아니다. 기숙사에 있는 아이가 '무엇인가를 빼놓고 들어가서', 택배를 보내주기 위해 나가는 길에. 조금 걷다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물론, 택배를 보내는 편의점은 코앞이지만.
이왕 나가는 길에 도서관에 책도 반납하자 생각한다.
상호대차로 대여한 두 권의 책이 아무래도 손이 가질 않는다. '공부하는 삶'과 '나이 듦 수업', 오래된 책이라 책의 상태가 썩 좋지 못해 책을 펼쳐 읽는 것에 특별한 배려를 해야 한다. 펼치기가 쉽지 않은 제본상태다. 그냥 안 읽기로, 포기한다. 눈에서 안 보여야 부담도 없지.
택배를 보내는 길에. 도서관에 반납하는 길에,
산책도 하기로 한다. 산책길에 택배도 보내고, 도서관에도 가면 좋겠지만, 택배와 도서관의 도움으로 산책을 하게 되는 일상이라도 다행이고 고맙지. 그리고 늘 다니는 공원길에 내려서는데.
꽃이 바뀌었다.
눈길이 닿는 곳에 지천으로 초록잎과 작은 꽃들이 군데군데 피기 시작한다. 그저 푸석거리는 잡초만 무성했던 곳이었는데, 어느새 꽃이 바뀌어 있다. 하루의 일조량이 바뀌고, 비도 제법 내려서 땅의 기운이 변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기운에 따라 꽃이 바뀌었다. 작년에도 이런 모습이었나 생각해 보지만, 모르겠다. 아무렴 어때.
엄청난 여름을 보냈다.
미국에서 살던 동생 내외가 몇 년 만에 한국에 귀국한 첫 해, 첫여름에 그들을 기함시킨 여름이다. "한국 여름이 원래 이랬나?" 기록적인 강수량을 기록하는 폭우가 며칠을 이어지더니, 더 놀랍도록 뜨겁고 더운 날들이 지속되는, 한국의 여름이 이랬냐고? 나도 올해 같은 여름은 처음이지.
그럼에도, 어김없이 계절이 바뀌고 있다.
갈대의 키가 훌쩍 커지고, 한 여름에 식재한 작은 나무들이 자리를 잡아간다. 여전히 푸른 가로수지만,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나뭇잎도 언뜻 보이고, 열매를 매달고 있는 나무들도 더러 있다. 여름의 끝자락이 너무 길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래도 가을은 오고 있었다. 고맙지 뭐야.
가을을 보내는 것은 한 해를 보내는 의식의 시간이다.
며칠 후면 2024를 맞이할 D-100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올해가 100여 일 남았다는 의미다. 가을은 한 해를 정리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일지라도, 끝맺음을 향해 가는 마음가짐은 사뭇 비장하다. 열심히 살아왔을 지난 시간이지만, 정리라는 하나의 일상을 더하는 것이다. 어떻게 정리할지는 생각 중.
그리고 정리는 새로운 시작과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