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책의 단상 03, 초가을, 가을, 늦가을
굳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원래 가을은 3개월이었으니까.
열두 달 동안 네 개의 계절이 돌아가니,
공평하게 한 계절에 삼 개월을 할당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분배이다.
그리고, 가을은 9, 10, 11월이 맞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름과 겨울의 기세가 커지고,
사이에 낀 간절기들의 시간이 조금씩 줄어든다.
그럼에도 가을을 삼등분하고 싶다.
초가을, 가을, 늦가을,
여름에서 순간,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 날에
가을이 시작되는가 보다 하는 느낌,
그래서 초가을이 좋다.
초가을에 내리는 비는 조금 어설프다.
나무에 붙어 있는 잎을 모두 떨구지도 못하면서 가을을 챙긴다.
나무도 아직 잎을 붙들고 있을 힘이 있다.
버티어 내는 시간이다.
하지만, 곧 속절없이 떨굴 것이다.
그래도 좋다.
떨구는 것이 아니라, 보내는 것이기에.
치열했던 시간을 정리하고,
조용히 정리하는 시간으로 초가을이 제격이다.
성큼 달아날 긴장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아직 여름의 끝자락에서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에 대한 안도감.
그래서 초가을이 좋다.
빨갛게 물들면 더 예쁘겠지만, 물들기 시작하는 나무도 좋다.
보다 투명하고 맑다.
가을을 설레게 하기에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직 가을의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음을 알려주기에
더 좋다.
그런데,
초가을이 채 한 달이 안된다.
금세 가을로 깊어지고, 늦가을이 온다.
어제와 다른 찬바람이 몇 번을 반복하면서
가을이 제법 무르익는다.
어느새 가을이 되었다.
가운데 가을이다.
오래 머물지 않을 가을을 만나야겠다.
그리고,
늦가을은 그냥 초겨울이다.
가을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