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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기록

가을이면 뭐다?

가을 산책의 단상 04. 가을에 해야 하는 하나는.

by 부키

운동회다.



가을이면 곳곳에서 운동회를 한다. 운동회는 가을에 해야 제맛이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운동회가 사라졌다. 어릴 때 누구나 운동회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어린 친구들에게는 너무 아쉬운 시절이 지나갔다.



그리고, 올 가을, 드디어 운동회가 등장했다.

동네의 큰~ 공원에 지역 어린이집의 운동회가 한창이다. 주말에 하는 운동회는 부모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공원에 사람이 많아 공간을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넓지 않은 공간에 아이들보다 어른이 더 많아 보이는 운동회가 열리고 있었다.





운동회의 꽃은 마지막에 있는 계주다. 학교에서 하는 운동회의 계주는 아이들의 달리기가 있고, 선생님들의 달리기가 있다.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남자 선생님들이 많지 않아, 남자 션생님이라면 누구나 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운동회 계주는 선생님 대신 학부모가 뛴다. 아빠가 있으면 좋고, 아님, 엄마라도. 열심히 달리고 계시는 젊은 아빠들을 본다. 아이보다 더 신이 나있다. 덩달아 신이 난 할머니, 엄마, 그리고 옆에서 지나가는 행인, 나마저도.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누가 이겼는지 괜히 궁금해서.






그리고, 아주 오래전 우리들의 운동회가 기억이 났는데. 흑.

막내의 유치원 운동회니, 벌써 10여 년 전이다. 겨우 시간을 내서 운동회에 참가하기로 다짐한다. 김밥을 쌀 정신은 없고, 주먹밥으로 대체한 것 같다. 마침 집 앞에 대형마트가 있어서, 기타의 간식을 준비하기는 수월하다. 가을 하늘 아래, 무엇을 먹어도 맛있을 그날에, 큰 아이와도 친구인 집 엄마와 함께 자리를 마련했다. 터울이 지는 동생들이라, 상대적으로 우린 평균 나이 이상의 엄마들이었다. 운동회쯤 수백 번도 더 다녀왔다는 포스로 대충 앉아있다. 정성은 별로 없고, 가짓수만 많은 그런 음식들을 정리하고, 이런저런 수다에 빠졌는데.



그때도 여지없이 학부모가 뛰어야 하는 마지막 순서가 있다. 아이를 안고, 또는 업고 뛰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한다면 난이도가 낮지. 아이들은 매트 위에 엎드려 있고, 엄마들은 아이의 운동화를 보고 내 아이를 알아차린 후, 데리고 뛰어야 한다. 다시 말해, 엄마가 뛰지 않으면 아이는 그곳에 엎드려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가 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뛰기로.



출발선에서 아이들이 엎드려 있는 곳까지 전력 질주를 한다. 내 아이이 운동화를 찾아야 한다. 저기 보인다. 모두 같은 원복을 입고 있지만, 운동화는 다르니까,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얼른 아이를 안아 일으켜서 방향을 도는데.



"엥? 너 왜 아직 엎드려 있어?"



아니, 우리 아이는 아직도 엎드린 채로 엄마를 올려다보는 것 아닌가? 그렇다. 같은 신발의 다른 아이를 안으려 했던 것이다. 민망.



왜 엄마들은 비슷한 신발을 신겨가지고, 하필, 세일하는 나OO 운동화 종류가 별로 없어서. 순간적인 투덜거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럴 정신이 있나. 얼른 아이를 바꿔 안아 일으키는데, 너무나 웃음이 나서. 미안하기도 하고. 옇든, 전력을 다해 달려, 꼴찌는 면한다.



엄마에 대한 신뢰가 가끔 의심받는 이유가 그때부터였던 것을, 올 가을 남의 운동회에서 알게 되었다.



사실은 핑크 뮬리를 보러 갔다. 몇 년 전부터 시에서 공원에 핑크 뮬리를 잔뜩 식재했다. 그러고 잊고 있었는데, 동네 가을 소식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곳의 사진이 참으로 궁금하게 한다. 잠깐의 계절 동안만 제대로 피어있는 핑크 뮬리를 볼 수 있으니 비가 개인 주말 낮에 안 가볼 수가 없다. 덕분에 만보를 걸으면서.



사람을 피해 사진을 찍으려 하지만, 어렵다. 그런데, 이건 또 뭐? 못 보던 나무들이 올망졸망 모여 식재되어 있다. 아직 어린 나무들이다. 몇 년이 지나면 울창해지려나? 그리고, 이 아이들이 바로 피마자, 아주까리라는 것을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들의 수다에서 알아낸다. 아주까리? 그 기름내는? 확실히 우리나라가 많이 더워졌다. 이곳 중부지방 공원에 아주까리 몇 그루라니.




그렇게 핑크 뮬리를 한 껏 보고 간다.

핑크가 엄청나다.



다음 주에는 핑크 뮬리는 쇠하고,

단풍이 더 기세를 올릴 듯하다.


깊어가는 가을이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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