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반려식물은...?
일상에서 '쉼'이라는 단어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어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특히 우리의 '뇌'를 쉬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때 꼭 필요한 것이 의도적인 한가로움, 또는 게으름이라고 해요. 일분일초가 아깝다고 뛰어다니는 분초사회에서 그 반대편 끝에 있는 '게으름'은 온전히 대우받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의 의도가 필요합니다. 나의 의지가 필요하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나온 것이 '멍 때리기'대희 같은 의도입니다. 뇌를 쉬게 한다는 것이 소파에 널브러져 TV 채널을 돌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요. '조금 쉬자'라고 말하면서, 게임으로 다시 뇌를 가동하는 것은 '쉼'이 아닙니다. 또 다른 뇌의 풀가동입니다.
뇌를 쉬게 하는 여러 요소들이 있어요. 명상 같은 좀 더 기술적인 그러면서 근원적이 것이 있고요. 앞에 이야기 한 다양한 '멍떄리기'가 있습니다. 불멍, 물멍 등, 다양하게 개인의 취향에 맞추어 실행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 거예요. 저는 그중에서 '식멍'을 좋아합니다.
베란다에서 키우는 식물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저의 '쉼'이 되었어요. 오랜 시간 식물을 키우긴 했지만, 정성을 들여 보란 듯이 성공한 '식집사'는 아닙니다. 분갈이도 때를 놓치고요. 더운 여름에 제대로 관리를 못해서 많이 정리하기도 했어요. 다육이부터 고사리, 호야, 관엽 식물까지 다 좋아합니다. 언제는 다육에게 꽂히고요. 그다음에는 호야, 그리고 고사리, 관엽은 늘 꾸준하게. 관심이 옮겨다니긴 합니다. 그렇게 생존에 성공한 것들이 가득 차 있어요.
그리고 식물들 덕에 몰입해서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낙엽 정리예요. 핀셋으로 낙엽을 떼어내는 작업입니다. 세심하게 잎 사이로 보이는 낙엽을 떼어야 해요. 아이들 이발시키는 과정입니다. 그렇게 떼어내고 나면, 한층 더 이쁘지요. 모아진 낙엽들을 보는 것도 뿌듯하고요. 별 것 아닌 일이지만, 행위에만 집중하고 생각이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 몰입이에요.
모아 둔 낙엽을 바로 치우는 부지런함까지는 없어서요. 그냥 저렇게 모아둡니다. 나중에 청소하면서 한 번에 비우고요. 빈 통을 보는 것보다 낙엽이 채워진 것이 더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요.
식물을 키우다 보면 가장 답답할 때가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을 때에요. 분명히 내가 아는 식물인데 이름이 생각 안나는 경우지요. 이름을 알기에 이름푯말도 제거했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이름이 생각이 안 날 수가 있지?, 분명 아는 건데...' 이런 생각이 매번 들어요. 물론 그 대상이 바뀌면서요.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뭐가 너무 많이 들어있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해요. 비워야 하는 것 중에 나의 뇌, 생각들도 있습니다. 굳이 이름을 찾으려 애쓰지 않아요. 궁금함을 조금 참아봅니다. 다음 날 생각이 날 수도 있으니까요.
김용섭 소장님의 <라이프 트렌드 2024>에 '반려'라는 키워드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네이버에서 '반려'라는 키워드의 주요 연관도 검색을 하면 의외의 결과가 나오는데요.
반려동물 > 반려식물 > 반려인=반려로봇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반려로봇이 우리의 반려인과 같은 중요도를 갖습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으로 높고요. 반려식물도 반려인보다 높더라고요.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상 자체의 중요도 순서는 아닐 거예요. 하지만, 반려를 생각할 때, 반드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시사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많은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거예요.
식물을 키우거나, 동물을 키우는 행위가 사람을 대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위치해야 하는 레벨이 다릅니다. 각각의 역할이 다르지요.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현대인들의 단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관계는 관계 속에서 풀어야 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저에게 식물은 몰입을 주는, 쉼을 주는 그런 대상입니다. 마음의 안정을 주는 반려 대상인 것은 맞지만요. '의도적인 한가로움'과 '게으름'을 주는 고마운 대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