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은 왜 해?
"너! 약속했잖아!"
그 대상이 무엇이든 이 한 문장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진짜?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기네!"
약속을 어기는 것이 밥 먹는 일처럼 흔해지기도 한다.
가기로 약속했으면 가면 되고,
오기로 약속했으면 오면 된다.
밥 먹기로 약속했으면 같이 밥 먹으면 되고,
함께 일하기로 약속했으면, 함께 하면 된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다시금 고민을 한다. "가지 말까?",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100가지 생각난다. "하지 말까?"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또 100가지 생각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야 하는 이유, 함께 일해야 하는 이유는 10가지만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약속을 취소하기가 너무 쉬운 세상이 되었다. 예전, 아주 예전이라고 말해야 하는 그때, 핸드폰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시절이 아닌 그때는 약속을 취소하기가 쉽지 않았다. 연락할 방법이 막연해서다. 집으로 연락하면 분명히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이메일을 써서 취소를 일방적으로 알릴 수도 없다. 약속 장소가 변경된다거나, 시간이 변경되는 경우에도 연락할 방법이 없다. 어디 '다방'의 게시판에 메모를 남기는 것이 전부인 그런 때.
그때는 약속은 지키는 것이었다.
수많은 관계를 만들고 엎어버리는 환경에서 약속도 그런 모습을 갖는다. 쉽게 이야기하고, 더 쉽게 취소한다. 약속은 상대를 기대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그 기대를 무색하게 만드는 행위가 된 것이다. '저 사람은 어차피 취소할 테니까, 일단 한다고 해두지. 먼저 못한다고 할게 분명해.' 반대하고 싶지만, 기꺼이 참여한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취소를 할 테니까.
'괜히 약속했네. 그 시간이면 다른 일을 몇 가지를 할 수 있는데, 시간이 좀 아깝네.' 그럼, 100가지 이유 중, 서너 가지를 추려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전화도 필요 없다. 이럴 때 쓰라고 메신저 서비스가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약속은 지키는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과, 지키지 않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상대방에게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말하겠지만, 사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는 약속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나 자신에게.
약속은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고민할 대상이 아니다.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행동을 하면 된다.
그래야 나와의 약속도 지킬 수 있다.
일찍 자고, 야식 먹지 않고, 운동하고.
벌써 몇 개를 어겼는지, 아침을 후회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