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리는 얼마나 멀고 또 가까운지.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에 실린 ‘이물감’에 나온 문장이다.
“기태의 젊은 시절의 꿈은 훌륭한 어른은 못 돼도 산뜻한 중년은 되는 거였다. (…) 긴 시간이 지나 기태가 진심으로 놀란 건 자신이 어쩌면 그렇게 자신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태는 자신을 둘러싼 좌표는 그대로되 ‘나‘라는 점만 이동하리라 착각했었다.(…) 마음이 늙는 일과 몸이 늙는 일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멀고 또 가까운 지도.” <안녕이라 그랬어, 이물감>
좌표계를 하나 설정하자.
‘x축은 마음이 늙는 일’, ‘y축은 몸이 늙는 일’
마음이 늙는 일을 무엇으로 정의할지 먼저 정해야 한다.
늙어감을 측정할 변수가 설정되고, 그 특성과 범위가 정해져야 한다.
개인적인 지표가 될 수밖에 없기에, 주관적 평가로 x값을 정한다.
예를 들어, 양의 방향은 이전보다 너그러워지고, 사려 깊어진 어른의 마음이 드러나는 횟수,
음의 방향은 의기소침해지거나, 우울, 무기력 등을 느낀 횟수 같은.
그에 비해, 몸이 늙는 일은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몸이 예전 같지 못하다는 말을 달고 사니, 이를 수치화하면 된다.
사람 몸은 노화가 정 방향이니 양의 방향을 늙어가는 축으로 가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가끔 역노화를 느낄 수도 있지만, 이는 점으로 찍히지 않을까?
어제보다 덜 아픈 내 무릎이 가능한 날 정도로.
중요한 것은 그래프의 추세다. 어느 쪽의 진행 속도가 빠른가를 짚어봐야 한다.
마음이 양의 방향으로 빠르게 진행된다면 가장 좋은 형태를 보일 것이다.
어른스러운 마음이 늘어나면서 몸이 늙어가는 것은 천천히 진행되는 형태일 테니.
기울기가 완만한 그래프가 그려질 것이다. 그러니까 작품 속 기태가 기대했던 ‘산뜻한 중년‘에 해당하는 그래프.
반대로 꼰대스럽고 고집스러워진 마음으로 늙어간다면 반대편에 대칭으로 그려진 그래프를 상상해야 한다.
이러한 마음은 몸의 늙어감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크므로 기울기도 역전된다.
몸이 늙어가는 것과 마음이 늙어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다시 말해, 두 변수는 독립적이지 않다.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마음이 늙는 것과 몸이 늙는 것을 양의 상관관계로 만들어야 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으니, 음의 상관관계를 가정할 수 없다.
마음은 늙어가는 데 , 몸은 젊어지는 것이 우리에게 가능할까? (푸틴과 시진핑은 그리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몸의 노화 속도를 줄이고, 마음을 양의 방향으로 가속 노화 시키는 것이 내가 바라는 그래프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작품 속 기태처럼, 좌표계는 젊은 시절 그대로인데 나만 움직이는 점이 되는 것이 아니기에.
좌표계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그 안에서 거리도 재조정해야 한다.
지나친 왜곡이 생기도록 조정하면 안 된다.
왜곡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
그러한 무리수는 이상한 특이점을 만들게 된다.
모든 상황을 현실적으로 수용하고 살펴보는 것.
원점의 역할이다. 출발하는 자세로서의 원점.
준비가 되었다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나만 애쓰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브런치로 돌아왔다는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