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좋은 이웃

‘좋은 이웃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by 부키


‘좋은 이웃’은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에 실린 작품 중 하나의 제목이다.

그리고 우리 집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공사 안내문에도 ’ 좋은 이웃‘이 박혀있다.


작품 속 주인공은 이사를 가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집주인이 매도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전세 세입자다. 열심히 살면서 내 집 마련에 성공한 부부가 아닌, 열심히 살았지만 아직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한, 아주 흔한 우리 이웃이다. ‘그때 샀어야 하나 ‘라는 후회도 입에 달고 사는 아주 흔한 이웃.


그러던 그들에게 ‘좋은 이웃’이 등장한다. 새로 이사 들어온다는 젊은 부부,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며 양해를 구하는 그들은 좋은 이웃이 되겠다 한다. 하지만 막상 공사가 시작되고 온갖 소음과 불편이 발생해도 좋은 이웃은 반응이 없다. 그들은 그냥 자칭 좋은 이웃이었다. 주인공은 게시문에 적힌 ’ 좋은 이웃’에 물 묻은 손을 문대어 잉크를 번지게 한다. 소심한 항의를 한 것이다. ‘좋은’이 망가졌을지, ‘이웃‘이 망가졌을지 드러나진 않는다. 아마 두 단어 모두였겠지.



엘리베이터를 타면 우리 아파트 ‘좋은 이웃‘들을 목격한다. 아이들의 나이가 비슷한 경우가 많다. 같은 학교에 다니거나, 같은 교육을 시키거나. 오가며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모습을 뒤에 서서 보는 것도 좋다. 저들은 ‘이웃사촌’이구나. 아이를 맡기기도 하고, 갑자기 떨어진 참기름도 빌리고, 이 정도면 서로의 ‘좋은 이웃’이다. 연세가 드신 분들의 ‘이웃사촌’은 보다 정겹다. 오늘 겉절이 했으니 좀 가져가라고, 텃밭에서 가져왔는데 나눠가라고. 아침에 같이 운동 나가자고. 서로의 배우자보다 더 친하게 지내실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 공사 안내문이 붙었고, 이웃 세대의 동의를 얻는 모습도 보였다. ’좋은 이웃’이 되겠다는 그분들은 종량제 봉투를 집집마다 현관에 걸어 놓으셨고, ‘좋은 이웃이 생기겠구나’ 기대도 했다.



그런데.

공사는 예상 일정보다 길어지고, 큰 소음이 발생하는 날 역시 늘어나고 달라졌다. 물론 이에 대한 어떤 양해도 없었다. 우리의 예비 ’좋은 이웃‘은 현장에 없었고, 공사를 진행하는 분들만 계셨으니. 그분들께 항의한들 전달이 될리 없다. 이제는 우리가 좋은 이웃이 되어야 했다. 이왕 시작한 공사, 끝날 때까지 잘 참아주는 좋은 이웃.



아마 입주하셨을 것이다. 아직 일면식이 없는 우리의 ‘좋은 이웃‘은 그들의 ‘좋은 이웃‘을 궁금해할지 잘 모르겠다.

게시판에는 새로운 호소문이 붙었다. ‘제발 실내 흡연 자제해 달라는, 아이가 천식이라고…‘ 내 짐작이 맡다면, 000호의 좋은 이웃인 000호의 아저씨의 흡연이 문제다. 오랫동안 살아온 이웃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그분.



오늘도 여전히 엘리베이터에는 좋은 이웃들이 만난다.

좋은 이웃은 뭘까? 서로에게 호의를 베풀고, 그 호의에 답하는 관계?

그보다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함이 먼저 아닐까? 호의보다는 배려가 우선이다.

아직 겉으로 보여주는 ‘좋은 이웃‘이 되지 못한 나는 그저 인사만 할 뿐이다.

미소와 목례로. 가끔 ‘안녕하세요.’라는 안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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