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엄마로부터의 착각
아들을 키우는 엄마는 딸에 비해 그 마음의 느긋함이 더 해야 한다. 기다림의 미학이 더 요구되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다른 말은 기대함고 있음이다.
초등 남아들의 생활 모습은 학교에서나, 학원에서나 또래 여아에 비해 조금 늦되긴 하다. 물론, 개인차가 많이 있다. 야무지지 못한 우리 아들이 늘 이렇지는 않겠지 생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말 '조금 크면 나아지겠지.' 5학년에도 저학년처럼 놀고, 6학년이 되어도 여전한 놀이를 보면서 '나아지겠지...' 물론, 나아지긴 한다. 그런데 엄마 눈에 흡족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나아지겠지...'
공부도 철이 들어야 한다고 한다. 왜 공부하는지의 동기부여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엄친아의 엄마가 되고 싶다 어필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중요한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렇지 않은 일은 덜 신경 쓰면 좋겠는 그 정도의 처신을 바랄 뿐이다. '철이 들면 나아진다'라고 하는 그것 하나에 아직 때가 아니라고 위로해 본다. '철들면 잘하겠지.'
'우리 아들이 철이 안 들어서...', '철이 들면 잘할 텐데, 아직 부족해요.' 마치 아이들이 '내가 공부만 하면 잘할 수 있는데 안 해서 그래!'라고 말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선생님, 우리 아들이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래요. 잘 봐주세요.' 근데 그 철이 언제 드는 거냐고... 엄마의 억장이 무너져야 드는 철인가 싶다. '이젠 나의 철이 소실되는 때인데... '
기다린 세월이 이만큼인데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니. 타인을 돕기는커녕 제 앞가림도 못하는 그런 어른이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지나버린 시간이 안타까워지는 때가 온다. '그때 좀 더 시킬걸, 철 들길 기다렸더니 아무것도 안 되었잖아.' 도대체 철은 언제 드냐고!
철이 들 때까지 이렇게 끼고 키우면 되는 줄 알았다. 품 안에 자식이라고 하니 이렇게 데리고 있다가 철들면 내놓아야지 생각했을 것이다. '철들면 다 할 텐데 지금부터 무슨 고생이야' 싶어 곱게 곱게 키우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발이라도 다칠까, 걸어가는 길마다 먼저 가서 돌멩이를 치워 놓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엄마도 아직 철이 안 들었던 것 아닐까.
'철'은 시행착오를 겪는 아이에게만 올 수 있음을 몰랐을까?
아이는 엄마가 가져다주는 '철'을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다른 사람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해야 한다.
엄마부터 착각에서 벗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