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집밥이란?
"엄마, 학교 급식이 집밥이지. 집밥은 학교에서 많이 먹거든."
막내의 고등 1학년 첫 귀가일에 기숙사 담당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밥을 많이 먹습니다. 그러니, 댁에서 집밥 하시느라 고생하지 마시고, 피자, 치킨, 자장면 시켜 주세요." 그래서일까요? 보통 집에 오는 날에는 혹은 다음날에는 1인 1 닭을 실천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작은 아이도 그랬던 것 같아요. 매주 집에 오는데도 그렇게 치킨을 먹었어요. 엄마가 모르는 브랜드도 많더라고요. 한 친구는 특정 브랜드의 특정 메뉴를 챙겨 먹었다고요. 어쩌다 집에 오는 주말에는 몇 가지 메뉴를 골고루 '배달'시켜 먹으면 학교에 가는 시간이 왔어요. '가기 전, 한 끼 정도는 그래도 엄마밥을 먹여야지' 국이나 찌개, 그래봤자 불고기 정도 추가 된 밥을 해 먹이고 보냈어요.
그러던 아이들이 방학이라 집에 있으면 세끼를 챙기는 것이 여간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집밥은 학교에서 먹는다고 해서, 집에서는 특별식만 먹게 할 수도 없고요. 그렇다고 매번 맛갈나는 3찬과 주요리를 내놓을 여력도 안됩니다. 급식의 고마움은 아이들의 방학에서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삼시 세끼 먹이는 일이 공부시키기보다 어렵다'라고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오래전, 엄마는 너무 바빠 집에 늦게 들어오고, 아이들은 집에서 밥을 꼭 먹어야 하는 때에는 가까이 계시는 외할머니께 부탁을 드립니다. "엄마, 애들 저녁 좀 부탁드려요...", "그래, 뭐든 해 먹일 테니 보내라.", "힘들게 뭐 하시지 말고요. 그냥 김치에 스팸만 구워 줘도 잘 먹을 거예요." 사실, 그렇게만 차려도 아이들은 밥 한 공기 뚝딱이거든요. 중요한 것은 음식 하는 사람의 정성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스팸 좋지도 않은데..." 끝이 흐려지는 대답을 하곤 하셨지요. 엄마도 쏟지 못하는 정성을 할머니께 바랄 순 없으니까요. "괜찮아요. 자주 먹는 것도 아닌데요. 집에서는 거의 안 먹어요!"
그리고 또다시 아이들의 방학입니다. 방학이 긴~~ 대학생, 여름방학이 5주인 고등학생, 두 녀석의 밥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나마 닭가슴살을 주식의 주요 찬으로 하는 대학생은 야채만 잘 챙겨 놓으면 됩니다. 그마저도 손질을 미처 못하면 알아서 잘라 정리하더라고요. 나름 공부해야 한다는 고3 막내에게도 형의 식단을 슬쩍 권합니다. "밥은 잡곡밥으로 적당히 먹고, 이런 것들 많이 먹어. 양념 많이 들어간 음식보다 훨씬 좋아." 뭐든 잘 먹는 막내는 좋다고 해줍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 두 끼지요. 하루를 그렇게 먹으라 하면 미안합니다.
"오늘은 삼겹살 구워 놓고 나갈게!" 아침에 공부한다고 나가는 아이의 등에 대고 이야기합니다. "들어와서 챙겨 먹어라. 쌈 많이 먹고, 김치는 냉장고에 있고." 흔쾌히 좋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를 배웅하고 냉장고에 있는 고기의 해동 상태를 확인합니다.
스팸에서 삼겹살로 진화했을까요? 돼지고기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고기들을 냉동에 쟁여 놓습니다. 세일을 하면 사 들고 와서 급속 냉동칸에 넣어 두어요. 생고기 상태로 얼리고, 양념 고기는 거의 먹지 않게 됩니다. 주로 굽거나 찌거나, 가끔 볶거나요. 여전히 엄마의 정성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주 약간, 미안합니다.
'밑반찬이라도 몇 가지 해 놓을까?' 생각만 하고 실행은 거의 안 하지요. '반찬가게에서 사다 먹을까?' 언제나 망설입니다. 그건 또 좀... 미안하다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가끔 왕창 사 오기도 해요.
미국에서 오래 산 동생이 이야기합니다. "언니, 우리나라 음식이 진짜 손이 많이 가잖아. 한식이 맛이 없을 수가 없지. 그래도 편하게 먹어도 잘 살아. 그냥 한 접시 음식도 훌륭해." 맞는 말이라 생각해요. 그럼에도 한 접시 음식을 매번 내놓기가 쑥스러운 이유는 뭘까요?
'음식에는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생활 명제를 늘 이고 지고 살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실천하신 어르신들을 보고 자라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 아이들 세대에는 먹거리를 마련하는 일이 예전만큼 중요하지도 어렵지도 않아요. 편해졌다 얘기하고, 생활의 효율을 높이는 일이라 합니다.
인정하고, 가끔 그 효율을 누리면서 가족들의 식사를 챙깁니다. 그 효율의 치트키에 삼겹살이 있습니다. 적당히 구워서 쌈 채소 듬뿍 마련하면 되니까요. 정성이 아주 약간 들어가지만, 아이에게는 훌륭합니다. 집밥은 학교에서 많이 먹을 테니까요. 집에서는 가끔 삼겹살도 좋지요. (그리고, 냉장고에는 또 하나의 치트키 카레가 있습니다.)
또 어떤 치트키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