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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기한 Dec 24. 2019

우리의 관계를 '결혼'으로
규정짓고 싶어 하는 그 앞에

연애를 시작할 땐 몰랐다. 

'결혼'에 대해 우리가 이렇게나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줄은... 

나는 결혼은 필수가 아니며 연애의 끝이 결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결혼의 낭만보다는, 결혼으로 인한 현실과 무게에 대해 깊이 공감하게 되면서 결혼은 내 인생 선택지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반면 그는 결혼과 출산에 대해 자신 만의 인생 나이 로드맵이 있을 정도로 결혼은 당연한 과업 중의 하나였다. 


우린 결혼을 전제로 만난 사이는 아니었다. 

우리 둘 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년생이었고 직장생활이 반년이 넘어가면서 황금주말을 솔로로 보내기엔 다소 적적하던 때였다. 누군가 한 번 만나볼까, 라는 타이밍에 서로 나쁘지 않아 소개팅으로 잘 된 케이스였다. 


나는 결혼은 까마득한 미래로 여기고 그와 '연애'만 생각했는데 그는 나를 보자마자 '이 사람과 결혼을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고 연애가 깊어질수록 우리의 결혼 가치관은 충돌했다. 

나는 그 사람은 좋.았.지.만 한국사회 속 결혼이란 제도는 부담스러웠고 그는 나와 결혼하기 위해 인내하고 감내하고 기다렸다. 무려 5년이란 시간을.! 


나이 앞자리가 바뀌고 우린 한 번씩 결혼 문제를 진지하게 대화했지만 서로의 격차는 잘 좁혀지지 않았다. 

보통 연애 기간이 길어지고 나이가 30대가 넘어가면 결혼에 대한 조급함은 주로 여자 쪽에서 느끼지만 우리는 반대였다. 그는 내가 30살이 넘어가도 다급함을 느끼지 않자 가끔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랑 결혼하지 않을 거면 내가 더 늙기 전에 놓아줘. 남자도 한창때라는 게 있는데 그전에 다른 여자 만나야지"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가 귀여우면서도 

"근데 지금 우리 둘이 이렇게 좋은데 결혼을 안 한다는 이유만으로 헤어져야 해?" 되물었다. 

"결혼 안 할 거면 우리 지금 왜 만나? 이렇게 좋은데 왜 결혼은 안 하겠다는 거야?" 

"우리의 관계를 꼭 결혼으로 규정 지어야 해? 

 평일엔 각자의 시간을 누리다가 주말에 이렇게 같이 노는 거 너무 좋지 않아? 난 지금을 깨고 싶지 않아"

"난 너랑 이렇게 좋은 순간을 매일매일 함께 하고 싶다고!!" 



우린 결혼에 대한 논쟁을 연례행사처럼 빼놓지 않고 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횟수는 늘어났다.

평소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결혼 얘기만 하면 끝이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기분이었던 우리... 

이랬던 내가 그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잘 지내던 커플도 싸우게 만든다는 결혼 준비를 몸소 겪으면서 나는 기진맥진했고 이 수고스러움을 내가 왜 감당해야 하는 건지 이해되지가 않았다. 수많은 가구를 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욱한 나는 그에게 물었다.

"결혼 꼭 해야 해? 이렇게 피곤하고 수고스러운 일을 꼭 해야겠어?"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자유와 행복은 누리고 싶고 책임과 무게는 지고 싶지 않았다. 

연인으로써 즐거움은 유지하고 싶지만 아내, 며느리로서 져야 하는 의무는 싫었다. 

지금의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불확실한 결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게 괜찮은 선택인지 알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사랑과 신뢰는 충분했지만 가족으로까지 확대되는 관계는 별개의 문제였다.  

나는 우리의 관계를 '결혼'으로 규정짓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했는데 그는 우리의 관계를 '결혼'으로 묶고 싶어 했다. 


어떤 사람은 확신 없는 결혼은 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결혼이 내 인생에 있어 잘한 선택이라는 확신 없이 그와 함께할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결혼 자체는 확신이 없었지만 그에 대한 믿음은 있었기에 우선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이렇게 결혼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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