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유지원 님의 '글자 풍경'을 읽고, 북토크를 들은 지 6년 만에 책장에서 책을 다시 찾았다. 책을 읽으며, 유명한 스티브잡스의 스탠퍼드대학 졸업 연설 중 그도 리드대학시절 타이포그래피에 매료되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글자 풍경'은 내게도 타이포그래피의 미묘하고 섬세한 디테일한 아름다움에 한걸음 다가갈 용기를 준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 나는 세리프체와 산세리프체에 대해, 글자 조합에 따라 자간을 어떻게 달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훌륭한 타이포그래피를 훌륭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웠고, 역사적이었으며, 과학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예술적인 섬세함이 있었고, 나는 그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 모든 것이 내 삶에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From Steve Jobs' Stanford University Commencement Speech
공간디자인을 공부하던 대학시절, 스티브잡스처럼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듣지 않았지만-연설 중 그는 캘리스래피 수업이라고 칭했지만, 문맥을 살펴보면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나도 또한 시각디자인 수업을 개인적으로 선택해서 들었다. 수업 중 한글을 사용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이 유독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아마도 공간디자인을 보는 시각과 스케일의 차이가 있었을까? 아니면 연구와 재능의 부족일까? 20대 초반이었던 당시 난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인테리어디자이너로 1년 조금 넘게 일을 하다가, 좀 더 자유로움을 찾아 일러스트레이션 석사과정을 밟기 시작했을 때 한국에서 보다 좀 더 손 편지를 좋아하는 미국 문화에 편지를 쓰면 주변 사람들이 한글 영어 모두 포함하여 나의 손글씨를 유난히 좋아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도쿄 여행 가기 전 왕기초 일본어를 공부할 때조차, 선생님이 나의 히라가나 글씨체를 언급해서, 혹시 캘리그래피에 소질이 있나 싶어 강병인 작가님 캘리그래피 수업을 찾아 듣기도 했다. 하지만 타이포그래피와 마찬가지로, 인내심이 부족한 난 '먹'이란 재료의 이해가 부족했고, 잘하지 못하고,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글자 풍경'에서 서체 개발에 대한 엄청난 노고의 언급처럼 켜켜이 경험과 노력과 지식이 쌓여야 하는 영역 같다. 한자에 무지한 내가 일본어 수업을 기초단계에서 포기했을 때, 한자라는 글씨를 이해하지 못하니, 획과 획의 사이의 공간을 계획하고 그려내지 못해, 한자만 꼭 어린아이의 글씨같이 삐뚤빼뚤하여 창피했던 기억이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올랐다.
공간디자인을 공부하고,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니 가끔은 타이포그래피나 캘리그래피가 연관된 프로젝트를 참여할 기회가 오기도 한다. CJ 푸드빌의 'The Place' 레스토랑의 일러스트 작업을 했을 땐, 공간과 일러스트레이션과 어우러지는 로고 디자인을 함께 의뢰받았다. CJ 디자인팀과 협업을 해 결정을 했지만, 타이프페이스(Iron Grunge One과 CPL Kirkwood Slab)를 직접 골라 제안드리고, 드물긴 하지만 신세계나 아모레퍼시픽과의 협업에서 일러스트와 함께 영문 캘리그래피를 추가로 의뢰받기도 한다.
그래서 타이포그래피와 캘리그래피를 좀 더 잘 판단하고 관찰하는 세심한 눈을 좀 더 기르고 싶다는 갈망에 정말 오랜만에 트레바리 독서모임을 신청했다. INTJ인 난 내향적 성격이 매우 강하고,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가 많이 불편하다. 게다가 클라이언트와는 대부분 이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혼자 일하는 직업에다 요즘은 에너지 넘치는 1살 강아지의 개육아에 푹 빠져 일상을 채우니 대화의 기술은 모래성과 같이 흔적도 없이 허물어져버렸다. 독서모임 참가자인데 아이러니하게 책과도 너무 멀다. 30여 년 전 책에 빠져 살았던 중학교 2학년 시절, 그 1년의 시간이 아직까지 중년이 된 나의 문해력을 힘겹게 떠받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유각서주 (有脚書廚) 유지원 님의 글을 읽으면 냉철하고 막힘없이 도도할 거라는 이미지를 그렸었다. 그런데 2019년 북토크를 들으며 처음 마주했던 선한 눈빛과 따스한 미소를 기억하자면 아무도 밟기 전 새하얗게 쌓인 함박눈에 발자국을 새기며 처음 뛰어놀던 나의 반려견의 표정이 떠오른다. 해맑음과 호기심이 가득하고, 기쁨을 나누고자 마음이 스스럼없이 진솔한 표정이었다. '글자 풍경' 프롤로그의 서점에서의 일화처럼 포근한 기억으로 채워진 사람, 많은 지식에 따뜻함을 겸비한 분이라니, 더 호감이 갔던 것 같다.
익숙하지만 낯선 뉴욕의 헬베티카
빽빽하고 울창한 숲과 같은 독일의 블랙레터는 이국적인 만큼 헤쳐 나아가기 어려운 존재처럼 느껴진다. 반면 석사를 하는 동안 3년을 머무르며 뉴욕에서 숱하게 스쳐 지났을 헬베티카는 책을 읽어 내려가며 반가운 첫 얼굴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무심코 지나치거나, 사용했던 서체이기에 산뜻한 만남이기도 하다. 그전엔 헬베티카가 스위스에서 만들어지고, "이름도 스위스를 뜻하는 '헬베티아(Helvetia)'에서 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산세리프체를 고를 때 무난하게 헬베티카와 에어리얼을 자주 고르곤 했는데, 저자가 판별할 수 있는 힌트로 표시해 준 영역을 보고, 아하! 미처 인지하지 못한 차이점들이 그제야 보인다. 차이점들을 익히고 나니 유니버스체는 평소 사용한 적이 없음에도 정갈한 아름다움이 있어 언젠가 사용해야겠다고 체크를 해 두었다. 평소 서울의 사인들을 눈여겨보질 않았는데,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기에 서울남산체도 말쑥하니 아름답다고 느꼈다. 독일어에 관해선 문외한이지만 "Man lernt nie aus. / 아무리 잘 알아도 모르는 것은 항상 남아 있으니, 겸손하라는 뜻"이 이 챕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3년간 수 없이 지하철을 타며 익숙하다고 느꼈던 헬베티카에 관해 별로 관심이 없었구나라고 깨닫는다.
건축의 플러런(fleuron) 보다 더 함축적인 도량과 여유
이제는 디자이너보다는 일러스트레이터의 비중이 월등하게 높아진 내게 선의 필력이 느껴지는 악보의 피날레 장식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표지에도 실린 옛 악보의 피날레 장식들 중 "사냥개가 토끼를 쫓아가는" 그 자그마한 요소에 다급함과 파워와 속도감이 모두 느껴진다. FIT의 일러스트레이션 수업 중 한 학기 동안 레퍼런스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고 현장에서 연필스케치 없이 펜으로만 스케치북을 채우고, '포스트잇 페이스'라고 해서 작은 포스트잇에 빠르게 지나가는 인물을 그려내는 숙제가 있었다. 선을 그리는 두려움을 없애고, 작가마다의 리듬을 찾으면 작은 그림 안에서 생기가 느껴지고, 평소 드로잉과는 다른 꾸밈없는 청신함을 경험했던 과제였다. 그런 유사한 경험은 싱가포르, 맨체스터, 포르투,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어반 스케쳐스 심포지엄을 참가하면서도 느꼈었던 것 같다. 악보의 피날레 장식들의 즉흥적 흔적같이 말이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악보가 어떤 현대미술의 작업보다 더 예술적인 것 같다. 그의 악보를 액자로 만들어 모던한 공간에 건다면 싸이 톰블리의 로만 노트 시리즈 이상 아름답지 않을까? 피크닉에서 프랑수아 알라르 / François Halard의 사진전, '비지트 프리베 | Visite Privée' 전시를 본 적이 있다.
"알라르가 첫 월급으로 구입한 미술품은 싸이 톰블리/ Cy Twombly의 <로만 노트/Roman Notes> 시리즈의 일부로 만들어진 석판화"였고, "아를의 집을 사게 된 계기 역시 톰블리의 집과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시장에서 알라르의 인터뷰 영상을 보다가 빛바랜 스카이 블루 벽에 걸린 싸이 톰블리의 '로만 노트' 드로잉 작업이 낭만적이라 생각했다. 마치 휘갈긴 필체 같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선의 에너지와 자유로움과 헤아릴 수 없는 억겁의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마치 액자에 담긴 음악이나 시처럼. 그런데 음악처럼이 아닌 실제 음악의 대가가 동판으로 정성스레 동시에 대범한 필체로 제작한 악보라니!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깊이와 힘이 느껴졌다. 바흐가 동시대와 후대의 연주가들에게 건네는 꽃들이라니 합목적이라지만 감미로운 한 페이지 예술의 마무리이자, 교감이다. 뉴욕의 3년의 시간 동안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모건 라이브러리 앤 뮤지엄이었다. 학생의 신분이었기에 로비에서 클래식 연주가들이 연주를 하고, 무료 전시를 볼 수 있는 금요일 저녁을 기다렸다 전시를 보았다. 미술 전시뿐 아니라 music manuscripts collection 또한 볼 수 있었는데, 바흐부터 존케이지까지 다양한 시대의 음악가들의 자필악보의 필체도 다르고, 음악을 잘 몰라 디테일을 전부 놓치더라도 모르지만 그저 좋아 찬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낱글자, 길산스 울트라 볼드 i (Gill Sans Ultra Bold i
단순한 i의 변주가 이렇게 흥미로울지 몰랐다. 폰트마다 점의 형태의 표현뿐 아니라, 웨이트 파생규칙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도 몰랐었다. 에릭 길이 길 산스 울트라 볼드 i를 유연하게 처리한 결과물은 입꼬리가 올라간 채 씩 웃고 있는 것만 같다. 난 유머도 전혀 없고, 계획에 어긋나지 않게 FM대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예술을 하려면 융통성과 엉뚱함이 절실해지는 순간들도 있다.
월인천강
저자는 책의 마무리를 "월인천강(月印千江), 이 네 글자는 내게 인쇄술과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로 읽힌다. 달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생각이다. 그 생각을 강물이라는 종이에 찍고 스크린에 실어 여러 사람에게 전한다. 이것이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글을 더 정련해서 전하고자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또 타이포그래피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사람들이 책과 신문과 잡지를 만들고 인터넷을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갓 창제된 훈민정음으로 한국어를 표기한 오래된 문헌 중 하나인 '월인천강지곡'은 세종대왕이 지은 제목이다." 박찬욱 감독의 추천의 글처럼 그동안 한 번도 유심히 보지 않았던 쌀알보다 작은 공간을 주의 깊게 바라볼 여유와 여백을 선사하고, 세심하고 섬세한 설명으로 이끌며, 함축적인 네 글자로 말쑥하고 품위 있게 간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