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느 모임에서나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장소 따윈 가리지 않고 사람도 가리지 않았다. 나는 엄마랑 단 둘이 있을 때를 떠올리면 귀에서 피가 난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느낀 적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엄마가 말 수가 적어졌다. 엉뚱한 얘기를 하거나 딴소리를 하는 습관은 여전하지만 엄마 특유의 혼잣말과 수다는 많이, 아주 많이 줄어들었다.
엄마는 부지런함과 게으름이라는 두 선택지 중에 언제나 게으름을 택하는 쪽이었다. 할 일은 최대한 미루고 지금 마음에 가는 일부터 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엄마가 늘 미루던 집안일을 척척 해낸다. 군말 없이 지체 없이 해낸다. 나에게 늘 하던 빨래 좀 해줘, 설거지 좀 해놔, 밥 좀 해놔, 같은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엄마는 넷플릭스를 좋아한다. 한국 드라마, 미국 드라마 가리지 않고 꽂히는 대로 잘 보곤 했다. 그런 엄마가 부쩍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예상컨대 아무것도 안 하면 딴생각에 잠길까 봐 염려하는 듯하다.
엄마는 이따금씩 봉제인형을 만들곤 했다. 퇴근 후 보니 집에 인형 만들기 세트가 하나 더 와 있다. 밤을 새 가며 시간 지나는 줄 모르고 손바느질해 만들던 인형들이 늘어나 내 침대에 하나둘씩 자리할 것 같다.
엄마는 식 집사다. 큰 식물이며 작은 식물이며 가리지 않고 받아와 키우곤 했다. 무심한 듯 자상한 엄마의 사랑에 식물은 늘 쑥쑥 자라곤 했다. 하루가 다르게 식물들이 점점 늘어난다. 그들의 생명을 지키고 싶다는 사명감을 가진 것인지 수많은 식물들을 위해 매일 눈을 맞추고 사랑을 준다.
집 안에 엄마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요함이라는 것이 퍼져있다.
이상한 느낌에 내 방을 나서서 엄마를 찾아본다.
안방 침대에 등을 보인채 모로 누워있는 엄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