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랑은 오해다'
영화 <파반느>에서 들은 이 문장이 자꾸 떠올랐다. 계속 내 머릿속에 구름처럼 떠 다녔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말 대신 오해를 넣어보니 그럴듯하게 다 말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한 사람이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래, 그건 네가 너 자신을 그렇게 오해하고 있는 거라니까?"
아. 그런가. 사람들은 늘 오해를 하나보다. 남을 오해하고, 나를 오해하고 산다. 가족끼리라고 해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까울수록 더 깊은 오해들이 있다. 모든 사랑이 오해라면, 사랑이 깊을수록 오해도 깊어질 테니.
결혼을 할 때, 시댁의 어른 중 한 분이 나와 같사남에게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다.
"결혼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니?" 나는 대답하지 않고 뒷말을 기다렸다.
"그건 바로 '이해'란다. 너네가 결혼생활을 하면서 이해라는 말을 늘 기억하면 좋겠다."
살아보니 '이해'는 정말로 중요했지만 언제나 이해를 넘어서는 오해가 있었음을 고백해 본다. 역시 이보다는 '오'가 크잖아..(이건 약간 드립이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친구 중에 S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녀는 자신이 낯을 가리고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편이라고 종종 말한다. 또한 그녀의 추구미는 아마도 시크함이다. 그러나 내가 보는 그녀는 사람들을 참 좋아하고 모이는 것도 좋아한다. 기꺼이 많은 것을 나누는, 시크함보다는 멍뭉미가 있는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 아니면 내가 그녀를 오해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 오해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 또는 타인을 사랑하는 동시에 오해한다.
얼마 전에는 스스로를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정하고 따뜻한 글을 쓸 거라는(쓰고 싶다는) 오해. 소설을 쓰면서 완전히 깨어졌다. 자꾸 소설에서 사람을 죽이고(살인 아님), 등장인물은 피상적인 인물이며, 그 등장인물을 상황적으로 조소하는 문장들이 내 손에서 나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어라? 하면서 약간 어리둥절했다. 글에서 드러나는 '다정함과 따뜻함' 그것은 그저 나의 추구미에 불과했고, 사실은 이 징글징글한 세상과 나를 비롯한 인간들을 글에서 은근히 비웃어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인간이라는 다면적인 존재를 지독하게 애증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그런 시니컬함이 글에서 드러난다 해도 그것을 굳이 감추지 않겠다고도 생각했다.
다시 <파반느>로 돌아와서, '모든 사랑은 오해다'라는 대사 뒤에는 이렇게 이어진다.
'그 사람은 남들과 다르다는 오해, 그 사람은 지금 외로울 거라는 오해, 내가 전부일 거라는 오해 그리고 영원할 거라는 오해.'
그러고 보니 이 글이 올라가는 날이 '나를 15년 동안 오해하고 있던' 남자의 생일이다. 서로 오해하며 산지도 꽤 햇수가 되었다. 이 오해 가득한 글의 끝에서 축하를 전하고 싶다.
-희노가
오늘은 뭘 오해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