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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오 Jul 26. 2024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내가 가장 받고 싶었던 사랑방식

사춘기가 찾아온 중학교 생일 무렵이었다. 엄마는 어항을 사왔다. 거기에는 흔히 봐온 구피 떼가 헤엄치고 있었다. 엄마는 말했다. 생일 선물이야. 나는 구피를 키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몹시 실망해서 짜증을 낸 나와 그로인해 무안해진 엄마 사이에 흐른 어색한 공기로 그해 생일은 얼룩졌다. 좀더 어릴 때 유치원에서는 산타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적어 보라고 했다. 단짝친구와 나는 똑같이 미미의 2층집을 적었다. 친구는 적은 대로 큼지막한 미미의 2층집을 선물받았지만 내 손에 주어진 건 손에 묻지 않는 크레용이었다.


내가 평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니까 엄마는 크레용을 사주기로 했고, 또 동물을 워낙 좋아하니까 고심해서 구피를 사들고 힘겹게 집에 왔을 테다.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그때의 기분은 잊히지 않고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왜였을까. 나를 생각해서 고른 선물을 응당 기쁘게 받지 못하는 마음의 기저에는 뭐가 있었을까. 요즘 나는 생각한다. 내가 가장 받고 싶은 사랑방식은 추측이 아니라 살펴주는 것이었다고. 긴 시간 상담치료를 받으며 알아차린 사실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에 대해 아무도 궁금해하거나 물어주지 않았던 걸 직접 물어보길 바랐다.


여러 개성 강한 직군을 거치며 나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걸 잘 아는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그저 내가 변덕스럽고 끈기가 부족해 관심사가 휙휙 바뀌는 거라고. 하지만 최근에서야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단숨에 대답할 수 없었고 그건 그런 질문을 안에서도 밖에서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애착이 생긴 장난감을 친척동생에게 줘야 한다고 뺏기다시피 했던 일도 이상하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마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걸 모르는 아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이런저런 경험으로 원하는 걸 말해도 이뤄지지 않거나 뺏길 수 있다고 체득했다.


구피 사건 탓이었는지 집에서 울적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던 어느 해 부모님은 갖고 싶은 걸 물어왔다. 당시 나는 그렇게 어린 애도 아니었는데 곧바로 곰인형을 갖고 싶다고 답했다. 우리는 함께 아빠 차를 타고 열려 있는 아무 팬시점에 들어가 정수리가 이염된 금빛 곰인형을 집어왔다. 어딘가 하자가 있어 보인 곰인형은 단박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면서 흘린 침으로 범벅이 되어도 바로 그 곰인형 옆이 아니면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부모님은 드물게, 울적해하던 내 마음을 살피고 원하는 걸 물어줬는데 바로 실행에 옮기기까지 했다! 어떤 크리스마스보다 근사한 하루였다.


더이상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이벤트를 바라지 않고, 그저 무탈히 흘러가기를 바라게 된 지금. 상처 없이 사랑만 해주고 싶었을 우리 엄마, 아빠도 언니와 나에게 모진 원망을 많이 듣고 버텼다. 묵묵히 다시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을 나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의 깊숙한 곳에는 두려움이 있다. 강한 애착을 느끼는 대상이 나로 인해 결핍되는 일을 끝없이 경험하기 무섭다는 마음. 요즘 나는 숱하게 나를 용서하고 껴안은 부모님을 생각하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현상황이 힘겨워 죽음으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사라졌다. 다만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은 온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을 때 나는 속엣말을 한다. 마치 내 안에 누가 있는 것처럼 말을 건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차근차근 대답을 이어가다보면 알게 된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지금 나를 향해 웃는 너의 얼굴을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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