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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엄 Jul 02. 2024

초면인 친척과 만나고 와서

또는 외할머니를 다르게 기억하고 싶어서


(1).

 

벌써 일 년이 지나갔나 보다. 일 년이 지나간 걸 알리듯 어젯밤부터 비가 내리더니 종일 멈추질 않는다.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는 말을 몸소 겪고도 남을 날이었다. 역시 외할머니의 날답다. 외할머니는 장마철, 구태여 돌려 말할 필요 없이 일 년 전 오늘 돌아가셨다. 비가 끝없이 내리는 오늘은 외할머니 기일이다.

 





(2).

 

제사를 지내고자 외할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이미 도착한 외삼촌과 인사한 다음부터는 솔직히 말하자면 제대로 기억나는 순간이 없었다. 속속들이 외할아버지 댁으로 모여드는 사람 중 대다수가 초면이었다. 낯가림이 심한 탓에 낯선 사람과 단둘이 있어도 맥을 못 추는데, 평소에는 넓었던 외할아버지 댁이 좁게 느껴질 만큼 초면인 사람들로 북적였다. 즉, 제대로 기억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낯가리느라 그저 바빴다.


어떤 표정으로 인사했는지도 모르겠고, 인사 나누고 나서는 어떤 말로 침묵을 방어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애초에 나는 그들이 다 누구인지를 모르겠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사람들인데, 왜 별안간 전부 다 나와 가족이라는 걸까. 이만큼이나 내게는 초면인데, 우리 엄마와는 익숙한지 현관문 열릴 때마다 엄마는 반가워했다. 마치 이 자리는 친구의 친구를 처음 만나는 자리 같았다. 그 탓에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할머니 기일이건만 도무지 멀쩡히 뭘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오늘 글감으로 끌고 들어온 이유는 간단했다. 그나마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 덧붙여 그 순간을 오늘 이후로도 아주 오래 기억할 것 같아서였다.

 

“얘가 누구더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도대체 누구시길래 처음 보는 사이에 다짜고짜 내 손 꽉 부여잡고는 엄마 앞으로 끌고 가시는지. 이번에도 내게는 초면인 사람과 반갑게 인사하던 엄마는 그에게 내 이름을 넌지시 알려 주었다. 그러자 그의 두 눈이 내게 달려들었고, 대뜸 내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다. 그냥 부른 게 아니었다. 외쳐댔다. 내 이름을. 네? 어색하게 대답하자마자 그는 다시금 내 이름을 외치듯 크게 부르고는 이런 말을 꺼내 들었다.

 

“많이 컸다, 너! 살도 엄청나게 빠졌네!”

 

어라. 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알아본다. 많이 컸다며 머리칼을 쓰다듬기까지 한다. 게다가 살이 빠진 것도 알아챘다. 우리는 초면인데, 어떻게 알았지? 마음 같아서는 내 어느 시절을 기준으로 삼아, 내가 많이 크고 살은 또 엄청나게 빠진 걸 알아챘는지를 묻고 싶었다. 나는 열다섯 살부터 키가 그대로였고, 살은 줄곧 빠지고 늘기를 거듭하다가 작년부터는 쭉 비슷한 몸무게로 살았다. 줄여 말하자면 언제 적 나를 아는지 묻고 싶었다. 그런데 물어보기도 전에 그가 내 머리칼에 제 머리칼을 가져다 대고는 나도 모르는 어린 나를 읊조렸다.

 

문제는 ‘너 어렸을 때’로 시작해서 이어지는 ‘어린 나’ 역시 초면이었다. 누구지. 저 사람에게 예쁨이라는 걸 받았고, 저 사람의 기억 어딘가에 당당히 자리 잡기까지 한 ‘어린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도통 알 수 없는 사람과 관계뿐이었다.

 

이후로도 초면인 사람들은 기억 속에서 ‘어린 나’를 끄집어내기 바빴다. 눈 마주칠 때마다 내 이름을 자연스럽게 부르며, 내가 누구였었고 나도 모르던 어린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를 알려 주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나는 내가 어떤 통속극에 나오는 줄 알았다.


왜, 그런 인물이 통속극에 한 명쯤 있지 않은가. 불미스러운 사고로 기억 상실증에 걸려, 함께 보낸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딱 그런 인물이 된 것 같았다. 그들은 ‘어린 나’를 속속들이 끄집어낼 수 있었지만, 정작 그중 내가 아는 ‘어린 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통속극 속 어떤 인물처럼 기억 상실증에 걸린 적은 없었는데, 대체 나도 잊고 지낸 ‘어린 나’를 어쩌다가 이리 오래 기억하고들 사는 걸까.

 

친척과 왕래하며 사는 부모님이나 언니와 다르게 나는 친척 모임에 얼굴 한번 들이밀지 않았다. 낯가림이 심하기도 하거니와 지금은 그나마에 가까운 개과천선을 하여, 대답 정도는 할 수 있게 됐지만, 옛날에는 누가 말만 걸면 피곤해지는, 일명 사회성 제로 인간이었다. 그러느라 외할머니 장례식 전까지는 십몇 년을 안 보고 살았건만. 그들은 아직도 나를 기억했다.

 

그들은 비록 ‘지금의 나’를 전혀 모르는 듯했지만, ‘어린 나’는 나보다 더 잘 알았다. 심지어 내 이름만 들어도 웃는 아저씨가 있었다. 작은 고모할아버지로 불러야 하는지 당최 어떤 식으로 호칭 정리를 하면 좋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아빠나 엄마에게 알려 주면 단번에 정리되겠지만, 어째서인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찌 됐든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은 나와 눈만 마주쳐도 환히 웃어 줬다. ‘어린 나’를 보고 자주 웃어 주기라도 한 것인지 계속해서 환히.

 





(3).

 

집으로 돌아오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기억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주관적인 기준으로 쌓이는 것 같다. 같은 순간을 보냈어도 다르게 기억하고, 똑같은 시간 아래 있었다 한들 누군가는 놓치고, 누군가는 꼭 쥐고 사는. 기억을 보관하는 기간과 방법에는 객관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면 내 기억은 어떤 기준으로 쌓여 왔던 걸까.

 

어떤 기억은 당장 겪는 것처럼 티끌 하나 훼손되지 않았다. 또 어떤 순간은 가물가물했고, 또 다른 순간은 기억하고 싶은 만큼만 기억하느라 난도질도 이런 난도질이 없는 상태였다. 이쯤에서 나라는 인간은 주관이 전혀 없나 싶다가도 훼손되지 않은 기억들을 살피면 엄마가 괜히 고집 좀 죽이라고 잔소리하는 건 아닌 듯한데. 왜 나는 무려 ‘친척’으로 단단히 묶인 이들 중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눈만 마주쳐도 웃어 줄 만큼은 오랜 애정과 시간을 주고받은 사이였을 텐데, 왜 내게는 그들이 초면일까. 내가 기억을 갖거나 놓아주는 기준은 혹시,

 

아니다. 오늘만은 어떤 가정법도 가져오고 싶지 않다. 오늘은 외할머니의 기일이므로.






(4).

 

친척 모두가 초면이어도 외할머니는 내게 영원히 초면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매끄럽지 않게 잘린 기억 여기저기에 외할머니와 어린 내가 있다. 엄마는 그때 어디로 갔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어찌 되었든 엄마 없이 외할머니와 갈색 대야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던 순간. 과도로 도라지를 까면서도 틈틈이 나를 보며 픽 웃었던 외할머니 얼굴. 픽 웃어 놓고는 내가 따라 웃으려 하면 “지랄.”하고 핀잔주던 외할머니 목소리. 하도 나를 지랄이라고 불러서 나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그 욕을 섞으며 화내던 할머니가 나를 부르는 줄 알고 대뜸 대답했던 기억. 앞뒤가 잘려 삐뚤빼뚤한 모양이 되었어도 외할머니는 내 기억 군데군데에 남아 있다.

 

옛날에는 나 좋아하더니.

 

거기까지만 말하고 힐끔 나를 보던 할머니 얼굴. 낯가리느라 방문 닫으려던 내가 슬쩍 내다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랄.”하고 픽 웃던 할머니도. 그러나 어렸을 때처럼 마주 앉을 자신이 없어서 그대로 방문 닫던 나도. 시간 순서대로 두든 시간을 역행하듯 순서 뒤집어도 할머니는 나를 한결같이 “지랄.”이라고 부르고는 픽 웃으며 쳐다본다. 그러나 기억 속 나는 한결같질 않은 탓에 기억 속 나 역시 오늘 마주쳤던 친척들만큼이나 자주 초면이다.

 




(5).

 

내 기억의 보관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도 내년 할머니 기일에는 부디 나 역시 그들에게 일 년 전이라도 좋으니까 끄집어낼 기억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지랄.” 그 애칭인지 욕인지 모를 말 말고도 다른 기억으로 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설령 다른 기억을 전혀 끄집어낼 수 없다면. 그만큼이나 내 기억 속 할머니와 관련된 기억 대다수가 보관 기간이 지나, 폐기되어 버렸다면. 오늘 초면이었다가 다시 알게 된 그들의 기억에서라도 할머니와 관련된 기억을 빌려오고 싶다. 빌려와서 곱씹고도 싶다. 그냥, 그러고 싶어졌다. 그래야만 할 이유 역시 있다.

 

그러다 문득 묻고 싶어졌다.

물론, 대답은 들을 수 없다.

이미 늦어도 너무 늦은 질문인 걸 안다.

 

“할머니의 기억에는 내가 어떻게 보관돼 있나요?”

 

어릴 때는 아무리 욕해도 옆에 딱 붙어 있더니 커갈수록 도망치던, 그다지 기억할 필요 없는 손녀로 남았을까. 남기나 했을까. 할머니는 손주가 한둘이 아닌데 나 하나쯤은 잊지 않았을까. 게다가 할머니는 치매를 앓기도 했으니 나쯤이야 진즉 기억 밖으로 내쫓았을 수도.

 

차라리 내쫓기는 게 나을 것도 같다. 내가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멀쩡히 기억하는 할머니와의 기억은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순간이었는데, 할머니는 그 기억을 본인 기억 보관함 밖으로 내쫓아 버렸으면 좋겠다.

 

그때 나는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엄마는 내게 적어도 할머니에게는 흡연자인 걸 들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고, 이럴 때만 말 잘 듣는 나는. 그러니까 나는 도망쳤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보행 보조 기구에 의지해, 우리 집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고, 평소에는 볼 수 없을 만큼 환히 웃던 할머니가 “지랄한다.”하고 내게 말을 건 것은 그 직후였다. (할머니는 적어도 내 앞에선 픽 웃는 정도로만 웃을 뿐, 늘 무심하거나 지친 낯이었다) 그런데 담배 피우는 내가 너무 쪽팔렸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날 담배를 피우며 울고 있던 내가 쪽팔려서 도망쳤다. 아무렇게나 소리 내며 울던 나를 할머니에게 들킨 게 쪽팔린 나머지 도망쳤다. 어디 가는지 몇 번이고 묻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막 도망쳤다. 그게 내가 할머니와 보낸 마지막 순간이었다.

 

부디 울다가 도망친 손녀만은 초면이기를.


그 애칭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내 기억 카테고리에서 사랑받은 기억으로 분류해 두었듯 할머니의 기억에도 나에게 사랑받은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를. 제발 할머니가 기억하는 ‘나와의 마지막 기억’은 도망치던 뒷모습이 아니기를.

 





(6).

 

마침 또 비가 내린다. 왜 할머니의 기일도, 할머니를 깊이 생각하는 순간에도 자꾸 비만 내릴까. 정작 내가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태양이 기승을 부렸고, 할머니를 등지고 달리는 동안 뙤약볕 아래 해바라기 하나가 크게 피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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