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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엄 Jul 16. 2024

종일 누워만 있다가

해야 할 일이 되어 버린 하고 싶은 일



(1).


자다 깨다 하는 동안 이따금 빗소리만 들렸다. 비가 내리다가 멈추기를 거듭하는지 아니면 푹 자길 바라는 마음에서 무의식이 때려 박는 빗소리를 자꾸 밀어내는지.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일어나 앉는 동안에도 비는 쏟아지는 중이었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무언가가 정수리를 꽉 누르는 것 같았다. 그 탓에 다시 누워서 빗소리에 집중했다. 그러자 비 대신 잠이 쏟아졌다. 아무래도 더 자야 할 시간 또는 몸인가 보다.


장마철도 오랜만이고, 몸살도 오랜만이다.






(2).


연신 머리 어딘가가 골골대고 있다. 휴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잘못 돌아가는 나사가 머릿속에 있는 양 끊임없이 헛도는 두통이 일었다. 하고 싶었던 일이 얼마나 많았는데. 두통과 몸살 앞에서 그 일은 순식간에 ‘해야 할 일’로 탈바꿈하고 만다.


영화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두통과 함께 영화 자막을 읽다 보니 보고 싶었던 마음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두통만 남았다. 장마 때 맞추어서 구매한 책도 읽고 싶었다. 그러나 서너 장쯤 넘기자마자 두통이 눈두덩으로 내려왔다. 두통에 마구 짓이겨진 눈두덩은 곧바로 무너져, 나를 잠으로 이끌었다. 취미 삼아 틈틈이 쓰던 글도 마무리하고 싶었다. 문제는 한 문장 쓸 때마다 손가락이 부수어지는 줄 알았다. 결국, 남은 것은 두통과 부채감뿐이다.


하고 싶었던 일이

왜 부채감과 두통으로 되돌아왔을까.


몸을 겨우 추스르고 나서야 물밀듯 쏟아진 생각이었다. 업무 기간 내내 원동력 삼았던 하고 싶었던 일이 왜 갑자기 몸을 괴롭히는 일부가 되었는지를 곱씹으며, 지금도 아메리카노를 사러 가는 길이다. 일하는 날에만 마시는 아메리카노를 말이다. 아메리카노라도 마셔야 남은 열몇 시간을 잘 쪼개 쓰고, 다시 일하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조금 억울했다. 마침내 쉬는 날인데 왜 내 몸은 다 하기 싫다고 몸부림칠까. 왜 누워만 있겠다고 파업 선언일까. 언제쯤 내 몸과 내 마음 사이에서 협의점을 찾을 수 있는 걸까.






(3).


“그렇게 피곤하면 자.”

“휴일이야. 절대 자고 싶지 않아.”


 단 한 마디로 축약한 하소연에 친구 H는 오로지 웃음으로만 대답했다. 쉬는 날 안 자면 언제 잘래? 라든지. 쉬는 날에 쉬어야지, 왜 자꾸 몸을 혹사시켜? 라든지. 너 그렇게 하루도 안 쉬고 살면 골병 난다라든지. 그런 말 한 번 없이 한참이나 웃다가 단 두 마디로 나를 눕혔다.


“하고 싶을 수 있을 때 해야지. 자기 싫을 때 안 잘 수 있으면 안 자는 게 맞아.”


 하고 싶을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마음도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뜻일까.


뭘 하든 생각 많은 나답게 친구 H의 두 마디 뒤로도 무수한 생각이 들러붙었다. 하고 싶을 수 있을 때. 그러니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살아 있을 때. 그런 때가 있다는 건 그런 때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순간도 온다는 것 같았다. 그 생각에 다다르자마자 몸과 마음이 정반대로 분주해졌다. 하고 싶은 순간이 지나가기 전에 얼른 다 하자는 마음. 하고 싶은 순간은 이미 아까가 되었고, 쉬고 싶은 순간이 왔으므로 조금만 쉬자는 몸.


서둘러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몸이 오늘만 좀 쉬자는데도 늘 그래 왔듯이 마음 편에만 섰다가는 더 서운해진 몸이 더 비뚤어질 것 같았다. 그때부터는 친구 H가 말한 대로 ’하고 싶을 수 있을 때‘를 영영 눈 바로 앞에서 놓칠 것도 같았다.


게다가 쉬고 싶은 몸 역시 ‘지금 당장 몸이든 마음이든 둘 중 하나는 꼭 하고 싶은 순간’이지 않을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머릿속 나사 하나가 헛도는 듯한 두통이 인다. 이러다가 내일도 누워서 끙끙대기만 하면 어쩌지. 그러느라 아무것도 못 하면 어떡하지. 이렇듯 또 마음 편으로 기울고 만다. 부디 내일은 내 몸이 못 이기는 척 마음 가는 대로 동참해 주기를 바라지만, 하고 싶을 수 있을 때 해야 하므로 내일 역시 몸의 의견을 물어봐야겠다.






(4).


하고 싶은 걸 더는 할 수 없는 때를 보내는 사람들은 뭘 하고 있을까. 뭘 하며 하루씩 보태는 삶을 살까. 아침 또는 일어나야 할 시간에 느지막이 뜬 눈으로 뭘 보고, 그와 동시에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을 집어넣거나 또는 뱉고 있을까. 그런 게 궁금해졌다.


언젠가 그런 사람을 만나거나

내가 그런 사람이 된다면

꼭 지금 이 글에 답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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