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엄 Jul 17. 2024

친구의 인생 책을 읽고 나서

눈물을 마시는 새 1권을 다 읽은 날


 

(1).

 

눈물을 마시는 새 1권을 다 읽었다.

 

이 책은 한국 판타지 소설의 정점이라는 표현으로 칭송받는 책이고, 좁혀 말하자면 십여 년간 내 친구의 ‘인생 책’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책이다. 지난 십여 년간 친구는 내게 이 책을 꾸준히 영업했지만, 친구 사이는 끼리끼리라더니 친구만큼 고집 센 나는 절대 읽지 않겠다는 대답만 꺼냈다.

 

일단 난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과 동떨어진 소설을 상상할 때마다 두통이 이는데, 두통 대비 내 상상력은 판타지 소설 앞에서 유독 성능이 떨어진다. 뭘 상상해도 기대 이하로 상상한다. 만일 판타지 소설에 용이 나온다면 내 머릿속에는 픽셀 덩어리인 리자몽이 날아다닌다. 만일 판타지 소설에 하늘을 나는 괴물이 나온다면 내 머릿속에는 색만 바꾼 리자몽이 또 픽셀 다 깨진 채로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이런 나에게 판타지 소설은 내 상상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내내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두 번째로

친구의 인생 책이라니까 더더욱 읽고 싶지 않았다.

 

괜히 부리는 고집이었다. 친구가 추천해 주는 드라마나 영화, 책 등은 곧바로 봤지만, ‘인생’까지 걸고넘어지니까 도저히 읽어 주기 싫었다. 워낙 죽 잘 맞는 친구이므로 ‘인생 책’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내 취향이겠지만, 왜인지 읽기 싫어졌다. 그 ‘왜’를 파악하고 싶지도 않아서 십여 년간 안 읽겠다는 대답만 홀랑 내놓는 나였다.

 





(2).


그런 우리 사이에 서울국제도서전이 굴러들어 왔다.

 

내 친구는 웬만하면 서울에 가지 않는다. 서울은 멀고, 친구가 사는 동네엔 이미 뭐든 갖추어져서 구태여 서울행을 택할 이유 따윈 없다. 그런 친구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이영도 작가의 굿즈를 판매한다는 소식만 듣고 부리나케 내게 연락해 왔다. 너 서울국제도서전 가지? 나도 가야겠다. 가서 이영도 작가 굿즈 싹 쓸어 담아야 해. 여기서 이영도 작가란,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눈물을 마시는 새를 쓴 작가다. 이때도 친구는 은근슬쩍 눈물을 마시는 새를 영업했지만,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놈의 호기심이다.


뭘 사려고 저렇게 신난 걸까? 그 호기심에 이영도 작가 굿즈를 검색했고, 그다음 날 서둘러 도서관에 가야 했다. 눈물을 마시는 새 굿즈 중 패브릭 천이 내 취향이었던 탓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도가 그려진 패브릭 천을 사기엔 양심에 찔렸던 나는 눈물을 마시는 새 1권을 대여했다. 이때만 해도 다 읽을 생각은 없었다. 대충 읽는 시늉만 하다가 양심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패브릭 천으로 책장 꾸밀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 읽어 버렸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한 백 페이지 정도만 읽고 도서관에 돌려놓을 생각이었건만. 지금 나는 눈물을 마시는 새 1 서평까지 다 쓴 상태고, 그걸로는 모자라 이런 글까지 쓰고 앉았다. 왜?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3).

 

그 책이 내 친구와 닮았기 때문이다.

 

친구가 괜히 인생 책으로 추켜세우는 게 아니었다. 그 책은 내 친구 그 자체였다. 이 책이 나왔을 2003년엔 아주 아주 어렸을 친구는 그때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이 책 곳곳엔 친구의 잡담이 적혀 있었다. 친구가 내게 지나가듯 해 주었던 말이 이 책에서 출발했다는 생각이 들 즈음부터 다 읽을 수밖에 없었다. 책 속 모든 문장이 네 목소리로 읽혔고, 너와 내가 나누었던 잡담이 주석인 양 곳곳에서 달라붙었다. 네 인생 책이 맞나 보다. 네가 여기 가득 적혀 있었다. 그런 책을 어떻게 읽다가 멈추겠어. 나는 너의 가장 친한 친구인데.

 

가장 친한 친구인데도 나는,


나는 네가 자라는 걸 보지 못했으니까. 넌 알까. 나는 항상 네 성장 과정 속에 내가 없는 게 아쉬웠다. 우리 둘은 언제 만났어도 가장 친한 친구로 지냈을 텐데, 너무 늦게 만났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이렇듯 너무 늦게 만난 우리가 내내 아쉬웠던 나에게 이 책은 네 어린 시절이었다. 아주 어렸을 테고, 지금보다 볼이 더 통통했을 네가 책상 앞 또는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는 상상이 멈추질 않았다. 내 상상력은 형편없는 줄 알았는데, 네 어린 시절은 왜 이토록 상세히 상상하고 마는 건지. 형편없는 상상력도 너와 내 애정을 먹고 자란 건지. 알 순 없었지만, 나는 몰랐던 어린 네가 열중해서 이 책을 읽는 모습이 자꾸 보여서 자꾸만 읽었다. 나는 어린 네가 보고 싶었다.

 

게다가 나는 널 위로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 탓에 종종 너를 위로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만 기계처럼 반복할 때가 왕왕 있다. 정작 너는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다독여 주는데, 나만 널 위로 못 한다. 그런 나와 달리 이 책은 너에게 위로도 되어 준다고 했다. 그게 참 분했다. 책 따위가 뭐라고 나도 못 하는 위로를 해 주고 마는지. 난 모르는 어린 너도, 다 큰 너를 위로하는 방법도 이 책은 다 아는 게 질투 났나. 그래서 이 책 읽기가 싫었나. 그런데 읽다 보니 알겠다. 짜증 나게도 어느 구간에서 네가 위로받았을지가 눈에 훤히 보인다. 짜증도 나지만, 안도도 된다. 그래도 나는 네 가장 친한 친구구나. 너 없이 네 인생 책을 읽으며, 어느 구간이 네게 위로였을지를 가늠할 줄 아는 나는 네 가장 친한 사람이 맞아. 그런 안도감 때문에 이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더 나아가 이 책은 장르 자체로도 널 닮았다.

나에게 너는 언제나 판타지다.






(4).

 

언제부터 내 친구가 아니라 너라고 썼지. 잘 모르겠지만, 더 써 보자면 너는 언제나 내 판타지였다. 넌 나와 차원이 다른 사람이다. 생각하는 방식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판타지보다 어려운 게 나한텐 너였다. 넌 늘 종잡을 수 없는 생각과 대답으로 날 놀라게 한다. 어느 때든 내 상상이 형편없어질 만한 것들을 늘 내게 들려주거나 가져온다.

 

게다가 우린 가장 가깝지만, 다른 점이 유난히 많아서 20대 땐 미치도록 다퉜었다. 서로 보지 말자며 윽박지를 때도 잦았다. 그러다 일 년쯤 지나면 서로를 가장 가까운 데로 옮겼다. 옮기는 과정은 전화 한 통이면 됐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바뀌어도 너와 나는 서로인 걸 확신했고, 싸웠던 이유쯤 잊고 서로 웃으며 몇 시간이고 떠들었다. 그거면 됐다. 그거면 됐다고, 너라면 됐다고. 그렇게 서로에게서 부재를 지웠다. 삼십 대인 지금도 나는 네 부재만큼이나 인정할 수 없는 너를 자주 본다. 왜 저럴까. 그 생각에 잠겨, 너를 볼 때가 많다. 그런 너는 내 인생에 두 번 다신 없을 판타지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너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거다. 그런데도 나는 네가 좋다. 때로는 내 애인이 널 질투하고, 이따금 네 애인이 나를 질투할 만큼 가까운 우리가 좋다. 언제나 같은 방향을 다르게 바라보는 너를 좋아하는데, 왜 몰랐을까. 너는 판타지고, 그렇다는 건 나는 판타지 소설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인데. 왜 모르고 살았을까.

 

단순히 고집 좀 부린다고 좋아하는 마음이 멈출까. 좋아하는 마음에는 내 고집이나 결심 따위는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걸 너와 지낸 십삼 년 내내 깨우쳤으면서 십삼 년 내내 고집부렸다. 네 인생 책이라면, 읽지 않겠다고.

 

 




(5).

 

어쩌면 책 몇 권 따위로 네 인생 일부라도 엿보기 싫었던 걸지도 모른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내가 직접 너를 알아내고 싶었다. 지난 십삼 년간 단 한순간도 널 알아내는 과정이 질린 적 없었다. 늘 예상 밖인 너를 내 머릿속으로 들이다 보면 형편없이 망가질 때도 많았지만, 그 형편없는 것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형편없어져도 다 너라서. 망가지더라도 직접 부딪치며 널 알아내고 싶었다.

 

그 고집으로 십삼 년 버티다가 십삼 년이나 지나서야 네 인생 책을 읽었다. 너에겐 재밌었다고만 말했지만, 실은 읽으며 한숨도 많이 쉬었다. 부디 이 생각은 너와 멀었으면 좋겠는데. 네가 이 책에서 희망만 찾았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어땠느냐는 너에게 로맨스 소설인 줄 알았다는 우스갯소리만 했다. 나도 안다. 이 소설이 어떻게 로맨스 소설이겠어. 누가 봐도 철학적인 질문을 다루는 판타지 소설이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로맨스 소설 같은 점을 늘어놓았다. 전화 너머 네가 웃었다. 막 박장대소했다.

 

“역시 넌 나랑 너무 달라. 어떻게 같은 걸 봐도 전혀 다르게 보냐.”

 

같이 웃었다. 실은 네 시선을 가늠하며 읽었다는 말은 억눌렀다. 네 시선을 가늠하면서도 나는 판타지 소설을 로맨스 소설로 읽으려고 노력했다. 네가 세상을 사랑스럽게 봤으면 해서. 네 인생 책에서 사랑만 찾아내려 애썼다. 이따금 허무한 목소리와 시선으로 세상을 덧없게 바라보는 너에게 사랑을 전해 주고 싶어서 그랬다. 아마 눈치 빠른 넌, 나보다 나를 잘 아는 넌 내 의도쯤이야 눈치채고도 남았겠지만, 우리는 구태여 로맨스 소설인지 판타지 소설인지에 관해서는 논쟁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 참 다른 사람들이라며 웃을 뿐이었다.

 

그러느라 말 못 해 줬다.


말 못 해 준 걸 너는 읽지 않겠다고 한 브런치에라도 말해 둬야지. 이로써 너에게도 내가 판타지가 되는 거야. 나를 속속들이 아는 네가 모르는 내가 태어나는 거야.

 

 




(6).

 

눈물을 마시는 새는 4권으로 구성됐더라. 다 읽고 나서 더 자세히 떠들어 보자고 했지. 미리 나 혼자 떠들자면 앞으로도 나는 이 책을 로맨스 소설로 볼 거야. 얼마나 사랑스러운 구석이 가득한지를 너에게 말해 줄 거야. 그렇게라도 너에게 사랑을 전해 주고 싶어.

 

나는 너와 포옹도 낯간지러워서 십삼 년간 널 딱 한 번 안아 봤지만. 아낀다는 말도 겨우 십 년 만에 했지만. 너를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긴다는 말도 십일 년 만에 술 취해 꺼냈지만. 어린 너와 지금의 너, 내가 몰랐거나 아는 너, 모든 너에게 이 책이 인생 책이라면 나는 이 책을 혼란스러운 세상을 향해 떠나는 모험담으로 보지 않을래. 이 책을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을 지켜내는 이야기로 볼래.

 

언젠가는 이런 나도 너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지금도 너는 날 위로해 주고 싶어 하지. 잠결에라도 내가 전화를 걸면 듣자마자 내가 웃어버리는 애칭으로 나를 부르지. 괜찮냐는 말 뒤로 내게 필요한 말만 해 주지. 나도 마찬가지인데, 나는 참 너와 달리 서툴다. 글로는 무수한 말을 위로인 양 적겠지만, 네 목소리가 들리면 잡담 사이로 위로와 진심을 감추기 바빠. 그런 나에게 언제나 네 솔직한 마음을 내보이는 너를,

 

아니다. 이 뒷말은 너에게 직접 해 줘야 할 것 같아.

 

눈물을 마시는 새 2권을 다 읽고 꼭 너에게 직접 이 마음을 전해야겠어. 네가 내 하루와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서 브런치 글은 아주 나중에 몰아 읽겠다 했듯이. 나도 너에게 하고 싶거나 미처 전하지도 삼키지도 못한 말은 네 인생 책 다 읽고 말해 줄래. 그저 이 말만 남겨 둬야지.


내 형편없는 상상력에 늘 실체가 되어 주어서 고마워.

이전 19화 종일 누워만 있다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