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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엄 Jul 15. 2024

사랑을 무참히 속인 당신에게

친한 누군가를 신고하러 경찰서에 다녀온 하루


(1).


사랑이 또 밟혔다. 오래오래 사랑할 각오로 내어 준 것들도 짓밟혀서 뭐든 꿈틀대지도 않는다. 내 평생이었던 사랑이 오늘 또 죽었다.






(2).


몇 년 전을 기억해? 그때 그 골목 말이야. 난 당신에게 무릎 꿇고 빌었었지. 제발 사실대로 말해 달라고 말이야. 있지. 사실을 알면 덜 아플 것 같아서 또는 사실을 빌미로 더 아프게 할 작정으로 빌었던 게 아니야. 나를 어떻게든 아프게 할 사실 중 그나마 사랑할 만한 사실이라도 찾고 싶었어. 난 정말이지, 평생 당신을 사랑하고 싶었거든.


몇 년 뒤인 지금을 기억해. 난 또 당신에게 빌고 있어. 사실대로 말해 달라고 말이야. 몇 년 전을 기억하느냐며 제발 이번에는 사실만 말해 달라고 했어. 이번에도 이유는 같아. 그나마 사랑할 만한 사실을 쥐고서라도 당신 곁에서 함께 버티고 싶었어.


몇 년이 지나서야 진부한 말이 왜 진부한지를 이해해. 사람은 변하지 않나 봐. 당신은 계속 거짓말을 해. 당신도 아는 거지? 사람은 변하지 않아서 당신에게 거짓말은 습관이고, 사람은 변하지 않아서 다들 당신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줄 수밖에 없다는 걸. 다 알고 이런 거지?






(3).


왜 사랑은 사람을 죽일까.


칼보다 위험한 게 사랑인가 봐. 사랑한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사랑 때문이 죽도록 아파하는 걸 자꾸 봐. 특히 당신 주변이 그래. 나도 당신 주변 중 하나이니 내가 죽도록 아프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당신은 사랑한다는 말에 진심을 얼마나 넣었을까. 그 진심은 뭐였지.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죽어 달라는 말과 같나 봐. 당신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해. 사랑은 좋은 건데, 분명 좋은 거라고 했는데 왜 사람들은 사랑 앞에서 자주 울까.






(4).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난 당신을 부러워했었어.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을 최대한 다 받으며 사는 당신이 되고 싶었지. 참 오래 애썼어. 나 진심으로 당신처럼 자라고 싶었어. 나는 한두 마디만 해도 사람이 떠나는데 당신은 별짓 다 해도 별난 사랑 다 받는 게 얼마나 부러웠게. 당신이 별난 것인지 유별나게 당신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지를 평생 헷갈려했어.


내가 당신이라면.


그 문장을 아주 오래 마음에 달고 살았었어.


난 말이야. 연애를 해도 육 개월이 최대였어. 다들 내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며 떠나더라. 이상했지. 당신은 나보다 더 사람을 지치게 하고, 끝내 망가트리는데도 몇 년이고 평생이고 사람이 떠나질 않았는데, 다들 왜 난 못 버텨 주지. 내가 당신이라면 다들 나를 떠나지 않았을까. 때로는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어.


당신이 결혼하던 날에는 그 생각이 더 커졌어. 난 우리가 평생 결혼을 할 줄 몰랐다? 우리는 불행하고, 불행해야 하는 줄 알았거든. 우리가 그렇잖아. 뭘 제대로 사랑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당신은 당신이기에 사랑받아 마땅했는지 결혼도 했고, 사랑도 줄곧 받더라. 부러웠어.


내가 당신이라면.


평생 나를 괴롭혔던 말이야. 내가 당신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당신이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내가 당신이라면 사랑을 알았을까. 그러나 이젠 뒤에 다른 걸 붙여야 해. 내가 당신이라면 그렇게 흥청망청 사랑을 낭비하지 않았을 거야. 오늘 내내 생각했어. 당신과 나에게 사랑은 과분해. 난 과분한 그걸 못 받았고, 당신은 과분한 걸 분에 넘치게 받았지. 그래서 그렇게 흥청망청 썼나. 아니라면 실은 당신이 나보다 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인 걸까.


그렇겠네.


당신은 거짓말을 잘하니까 평생 사랑받는 척하며 나까지 속인 거야. 나도 속아 넘어간 거야. 평생 속느라 몰랐어. 내가 당신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평생 못 보다가 오늘에서야 봤어.






(5).


당신 몫이어야 할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당신 몫이 아닌 사랑을 인제 그만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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