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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엄 Jul 18. 2024

한때는 히키코모리였지만

무적 인간이어도 마음은 무적이 아니야


“이를테면 일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이나. 뭐랄까, 가족, 친구, 연인, 일까지 어쨌든 사회와의 모든 연결 고리에서 벗어나 지킬 게 하나도 없는 사람. 그래서 오히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정신 상태의 사람, 같은 느낌이야. 사회로부터 튕겨 나갔다고 해야 하나.”


일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사회로부터 튕겨 나가.

 

- 책 정욕(아사이 료) 중에서

 

 




(1).

 

오래오래 믿었던 사람이 뒤에서 나를 방에서만 은둔하는 히키코모리로 표현하며, 나를 하소연 삼아 돈 빌리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하필 난 집 앞이었다. 묵묵히 집 외관을 훑었다. 평소와 달라진 것 하나 없는데도 집 안으로 들어가기 싫었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또 붙였다. 몇 번이나 반복하며 집 앞에 고여 있었다. 마치 집 앞의 히키코모리인 양. 내내 고민했다. 그 사람 말대로 정말 난 히키코모리고, 집에 틀어박혀선 모든 연결 고리를 끊어낸 사람인 걸까. 사회로부터 튕겨 나간 걸까.

 

한 시간쯤 지났나.


집에 들어갔고, 우두커니 방 한가운데에서 또 고민했다. 그 사람은 거짓말을 잘한다. 히키코모리 동생을 두었다는 말 역시 거짓말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 동생은 방금 전까지 그 사람을 보려고 응급실에 다녀왔지 않은가. 응급실 역시 밖 아닌가.

 

문제는 히키코모리 동생을 제외한 모두가 그 말을 믿었다는 거다. 그 말만 믿고 히키코모리 동생을 둔 언니에게 돈도 눈물도 흘려보내 줬다. 이토록 모두가 굳게 믿은 말은 거짓말이 될 수 없지 않나. 게다가 그 히키코모리 동생은 지금도 방 안에 틀어박혀, 이딴 글이나 쓰고 있다. 그러니 그 히키코모리 동생은 히키코모리, 사회로부터 튕겨 나간 채 가족 모두의 하소연으로 쓸 만한 존재일 수도.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그 히키코모리 동생은 억울한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억울한 마음에 그 히키코모리 동생은 아버지도 팔로우 중인 브런치 계정에 방 안에 머물렀던 순간을 기록하기로 한다. 이 글이 바로 그 글이다.

 





(2).

 

글쎄. 어디부터 기록하면 좋을까.

 

인정한다. 방에만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내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고, 가장 감추고 싶었던 치부부터 말하자면 집에 돈이 없어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끝내 학교에서 자살 시도를 한 날부터 학교로 돌아가기 싫어졌다. 그렇다고 방에만 있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나도 나가고 싶었다. 나를 돈 때문에 따돌리지 않을 사람들과 놀고 싶었다. 얼마나 간절했느냐면 밤낮 가리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것들을 봤다. 영화도 봤고, 드라마도 봤고, 예능 프로그램도 보며 ‘집 밖에 나가 있는 사람들’을 봤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놀고 싶다는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게끔 부단히 애썼었다.

 

그러다 태왕사신기를 봤다. 현대와 굉장히 먼 사극 드라마인데, 그 드라마 속 전투에 임하는 이필립을 보며 대뜸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었다. 그때부터 집 밖으로 나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잘하는 건 무엇이고, 좋아하는 건 또 뭔지 찾으며 한 발씩 밖으로 나갔다. 그 와중에 꾸준히 움직이는 것들을 봤다. 그때 만났다. 잘할 수 있을진 몰라도 평생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은 무언가를.

 

그게 바로 지금 내가 하는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은 예술로 구분된다. 솔직히 예술인지 잘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이 예술로 구분하므로 나 역시 예술로 인식하는 편인 그 업계에 열아홉쯤 관심이 생겼다. 그때부터 난 주로 집 밖에 머물렀다. 그 업계에 발들이겠다는 각오로 학원과 과외를 오갔고, 선생님들께 드릴 돈을 모으느라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때 히키코모리였던 사실을 인정했으니

인정받은 순간도 이쯤에서 기록해 두어야지.

 

그러다 인정받았다. 약 천몇 대 일을 뚫고, 지금 일과 관련된 공모전에 내 이름을 갖다 박았다. 발표 당시 아르바이트 가는 길이었는데, 이미 결과를 확인한 학원 사람들의 연락이 끊이질 않는 중이었다. 얼떨떨했지만, 공모전 관계자에게도 연락이 왔다. 얼른 이 업계에 발 붙이라는 초대장이었다. 당시 집 밖 모든 사람은 내게 ‘기적’이라든지 ‘미친 재능’이라든지 하는 말을 가져다주었던 기억도 있다.

 

이후 재능 하나로 따박따박 돈을 받았고, 그 시간은 육 년째 계속되고 있다. 종종 내 재능을 의심하는 시간에 잠겨 살아도 그래도 출근해야 하는 날에는 출근한다. 출근해서 일도 한다. 그들이 나를 보러 내 방까지 온 적은 없다. 내가 그들을 보러 간다. 내가 회사로 간다고. 이 정도면 나, 히키코모리는 아니지 않나. 정욕에서 말하는 ‘무적 인간’은 아니지 않나. 나 그래도 히키코모리였던 시절은 벗어나 왔다고 생각했는데,

 

왜 아직도 나는

히키코모리 동생일까.

 

왜. 왜 언니는 내가 아빠도 볼 브런치 계정에 이런 글을 남길 수밖에 없게끔, 왜 나를 또 그 시절로 밀어 버렸을까.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기 싫었다. 그런데 아직도 언니 눈에 나는 ‘그 히키코모리 동생’이라는 사실이 나를 끝없는 절벽으로 미는 것 같다. 이대로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져, 또 방 안에서 하염없이 내 마음에 난 상처만 들여다보기는 싫은 마음에 무작정 글을 쓴다.

 

이다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아빠. 이 글 보고 있어?

 

평생 말하지 않으려 했었어. 내가 집에 돈이 없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는 사실을 아빠랑 엄마만은 알게 하기 싫었어. 그래서 그때 공부하기 싫어졌다고, 내가 원래 이렇게 제멋대로이지 않느냐고 했었어. 이후로도 제발 평범하게 좀 살라는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 시절을 막 얘기하고 싶었지만, 참았었어. 그냥. 돈 없어서 따돌림당한 게 나조차 자존심 상해서 미치겠는데, 엄마랑 아빠는 얼마나 더 자존심 상할까 싶은 마음에 말 안 했었어.

 

근데 있잖아. 설령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도 제발 미안해하지 마. 엄마도 미안해하지 마. 아무도 나한테 미안해하지 마. 왜냐면 난 이제 열여덟이 아니거든. 난 이제 서른이 넘었고, 이젠 알아. 돈이 없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해도 됐던 세상이 잘못됐던 거지, 우리 가족 중 누가 잘못해서 내가 따돌림당한 게 아니라는 걸.

 





(3).

 

그런데 그 모든 시절을 다 알았고, 부모님 몰래 우리끼리 알자며 나를 달래주기까지 한 사람이 돈 빌리는 수단으로 히키코모리 동생을 써먹는다는 걸 들은 지금. 그 말을 모두가 믿고, 히키코모리 동생 둔 언니를 불쌍히 여겼다는 말을 들은 지금. 대체 난 뭔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방 안에 자주 머문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재택근무고, 업무 특성상 노트북을 자주 봐야 하는 일이라서 그렇다. 물론, 방에 틀어박혀 있다는 하소연이 끊이질 않았다는 말에 지금은 억지로 카페에 나와, 글을 쓰고 있으며 이 글 다 쓰면 카페에서 일도 할 거다. 이러면 난 히키코모리가 아닌 게 되나.

 

여전히 나는 방 안에 자주 머문다. 첫 번째로 사람을 너무 가까이에 두면 자꾸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두 번째로 내 MBTI는 INFJ다. 갑자기 뭔 엠비티아이 얘기냐면, 집을 제일 편하게 여기는 집순이라서 그렇다. 집순이도 히키코모리를 뜻하나. 집 밖에서 사람들과 떠드는 것보다 혼자 누워, 책 읽는 게 좋은데 이런 나는 사회로부터 튕겨 나온 사람인가. 집 좀 좋아하면 안 되나.

 

물론, 여전히 방 안에 자주 머무는 나이기에 나 역시 안다. 내가 보통 사람은 될 수 없다는 걸. 내가 제일 잘 알지 않을까. 나만큼 나를 오래 겪은 사람이 없는데, 내가 모를까. 열여덟 그때 그 교실에서 나는 보통 사람이라면 넘지 않을 선을 넘었다. 이후 그 선을 넘은 책임은 다 하겠노라 결심했다.

 

내가 해석한 ‘그 책임감’은 최대한 혼자 지내는 시간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난 외로움을 많이 타면서도 웬만하면 혼자 있으려고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넘지 않을 선을 넘은 만큼 보통 사람처럼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십 대를 보냈다. 삼십 대인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하다. 남들은 평범하게 보냈을 시간을 태왕사신기와 보낸 값은 톡톡히 치러야 한다고 여기므로 태왕사신기 속 이필립처럼 고독하게 살기를 자처했다. 이미 브런치 글 어디엔가 남겼다. 나는 내가 사랑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 난 사랑받기에도, 사랑 주기에도 참 모자란 사람이다. 아무에게도 말 안 했지만, 이 생각 뒤로 ‘따돌림당한 사람이니까.’라는 대답을 붙일 만큼 내 인생 군데군데에 뭔 유리컵에 난 지문 자국처럼 열여덟이 들러붙어 있다. 이 자국이 완벽히 지워질 때까지 혼자 살 생각이다.

 

근데 나 그냥 산 게 아니라 진짜 열심히 살았다.

이 사실 하나만은 자부한다.

 

난 열등감이 심하다. 가끔은 나와 다르게 제대로 산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나도 집에 돈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그딴 일 안 당했을 텐데. 나도 멀쩡히 사랑 주고받으며 살았을 텐데. 그런 열등감에 시달릴 때도 있었다. 그 탓에 한때는 부모님이 미웠고, 세상이 너무나도 미웠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도 희망을 부둥켜안고 살았다. 나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하면서도 열여덟 때부터 지금껏 내려놓지 않은 단어였다. 희망.

 

일하며 알게 된 사람들은 내 작품에 희망이 가득하다고 한다. 너는 인간을 너무 사랑스럽게 본다고도 한다. 나처럼 다정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고도 한다. 실은 세상을 정말 싫어하지만, 세상도 그 누구도 탓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정말 열심히도 애쓰며 살았다.

 

그래. 그 누군가의 출발선은 조금 유리하게 그어졌을 수도 있지. 난 조금 많이 불리했던 것도 같아. 근데 우리 아빠라고, 우리 엄마라고 나를 불리한 출발선에 데려다주고 싶었을까. 그놈의 유리한 출발선이 나보다 더 간절했을걸. 나보다 더 속상했을 거야. 엄마랑 아빠는 이미 불리하게 출발해 봐서 이 출발선에서 달리기 시작하면 내가 힘들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야. 그럼에도 불리한 출발선에 자기 딸을 세워 둔 게 얼마나 한이었을까. 미안하기도 했을 거야. 근데 그게 엄마랑 아빠 잘못인가. 엄마랑 아빠가 뭘 잘못했지. 더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내가 뭘 해야 할까. 도착. 도착을 해야 해. 도착해 버리자. 불리했어도 기어이 도착하는 거야.

 

그 생각으로 열등감에 시달려 가면서도 꾸역꾸역 앞만 보고 달렸다. 옆에서 수월하게 달리는 사람을 보려 할 때마다 하늘이라든지 희망이라든지 아무튼 높아 보이는 것들을 봤다. 그러고는 이 악물고 결심했다. 엄마. 나 그래도 잘 뛰지. 아빠. 그래도 나 잘 뛰었지. 엄마가 딸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 키웠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을 상상하며 지치든 말든 달렸다. 난 그게 다였다. 그게 열여덟 이후 내 인생이었다. 나처럼 불리하고 불쌍한 우리 엄마 데리고 탁 트인 데 다다를 때까지 뛰고 싶었고, 뛰고 싶은 마음보다 더 빠르게 달렸다.

 

쉴 틈 없던 달리기 끝에 나는 이제 프로 소리를 듣는다.

 

이만큼이나 달려왔다. 나 그래도 달렸다고. 나 진짜 열심히 달렸는데, 이래도 내가 ‘그 히키코모리 동생’인가. 대체 이 세상 어떤 히키코모리가 어떤 모양과 결과일지 알 수 없는 도착 지점을 향해 이딴 식의 전력 질주를 하는데. 내가 사회에서 튕겨 나갔다고? 튕겨 나가지 않으려고 얼마나 허둥대며 살았는지 알아?

 

언니가 뭔데 내 인생을 그런 식으로 기록해.


나는 언제나 최고 기록을 내며 질주하진 못 하더라도 남들만큼은 달리려고 전력 질주해 왔어. 남에게는 설렁설렁 뛰는 모양새가 나한테는 전력 질주였다고. 근데 언니가 뭔데. 언니 주변 사람들은 뭔데. 나를 ‘그 히키코모리 동생’으로 믿고, 의심 따위는 하지도 않는 거야?

 





(4).

 

나는 앞으로도 달릴 거야.


안 멈춰. 절대 멈추지 않을 거야. 엄마랑 어렸을 때 약속했어. 트로트 가사대로 약속했단 말이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 지어 주겠다는 약속. 내가 그 약속 때문에 얼마나 열심히 사는 줄 알기나 해? 나에겐 절대 허락되지 않았던 ‘정상성’을 재능으로 갈아 끼우고 남들 눈엔 절름발이든 뭐든지 간에 얼마나 무턱대고 달려왔는지 알기나 하느냐고.

 

언니 눈에는 내가 아직도 히키코모리인가 봐?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어. 나라는 히키코모리 진짜 열심히 달렸으니까. 나 맨날 열심히 달려. 이젠 취미까지 달리기야. 막 숨이 찰 때도 있어. 그만 좀 뛰고 싶을 때도 있어. 나도 남들처럼 연애하거나 결혼하거나, 아니어도 남들처럼 좀 평범하게 살고 싶을 때가 있어. 근데 나는 도무지 평범이란 게 뭔지 모르겠는 거야. 나한텐 내가 제일 평범한데, 다들 나한테 평범하지 않다고 하니까 그놈의 평범이 뭔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그냥 가뿐히 평범을 포기했어. 그냥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기로 했어. 그랬더니 이젠 사람들이 나보고 갓생러라고 해. 아무도 나를 히키코모리라고는 하지 않아. 근데 뭘 안다고 아직도 나를 히키코모리라고 해. 대체 언니가 뭔데 나를 아직도 그 시절에 가두려고 해.

 

절대 갇히지 않을 거야. 절대 돌아가지 않아.


내가 얼마나 아팠는 줄 알아? 아픈데도 아프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 내 자존심을 알아? 나 자존심 하나로 여태 입 다물고 달리기만 했어. 엄마한테는 늘 말썽만 부리는 딸이어도 상관없었어. 엄마도 언니처럼 나를 방에만 있는 히키코모리, 사회에서 탈락한 인간으로 봐도 상관이 없었어. 결과로 보여 주면 됐거든. 그리고 보여 줬어. 천몇 대 일 뚫기가 쉬운 줄 알아? 어려워. 근데 난 그 어려운 걸 해냈거든. 그래서 난 알아 버렸어. 내가 달리면 우리 엄마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으로 데려가 줄 수도 있겠다고. 그 가능성이 내게 있다고. 평생 엄마랑 나는 유독 찌뿌둥한 날씨 아래에 서 있어야 할 줄 알았는데, 그 날씨를 끝낼 힘이 나에게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천몇 명을 제치고 깨달았어. 나 우리 엄마한테 가장 쾌청한 날씨와 그와 어울리는 집을 주고 싶어.

 

이렇듯 나는 히키코모리가 되지 않으려고 지난 십몇 년을 안 멈추고 계속 살았어.

 

근데 이상해. 왜 나는 아직도 언니의 그런 하소연일까. 왜 언니는 아직도 ‘히키코모리 동생’으로 나를 기억해? 왜 내 흔적을 못 알아봤어? 그러면서 왜 알아보는 척했어?

 

내가 방에만 있는 것 같았어?

내가 방에서 뭘 하는 것 같았어?

 

열여덟 이후로 줄곧 세상을 좋게 보려고 했어. 비록 나에게 그 좋은 세상은 허락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열심히도 세상을 좋게만 봤어. 그 덕분에 나한테 다들 희망찬 이야기를 해서 좋대. 난 겪어 본 적도 없는 희망이 내 작업물을 함축하는 단어래. 심지어 얼마 전에 누가 그러더라. 이번 프로젝트는 네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 같다고. 내가 얼마나 웃었게. 내가? 이런 행복한 프로젝트가 나를 닮았다고? 내가 그랬어.

 

그런 나한테 왜 그랬어.

 

집 밖 사람들은 다 나를 알아봐 주거나 알아보고 싶어 하는데, 왜 언닌 날 못 알아봤어. 나 좀 알아봐 주지. 언니 말대로 난 방 안에만 있었는데, 정말 가까이에 있었는데. 왜 몰라봤어. 어떻게 된 게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회사 사람들보다 나를 몰라. 그들은 내가 울기 직전에 짓는 표정도 알더라. 언니는 모르지.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며 안아도 주더라. 언닌 그래 준 적 없지.

 

그럼에도 나는 또 이 세상 곳곳에서 희망을 찾아낼 거야. 나는 쥐어 본 적도 없는 희망을 이야기할 거야. 그게 내 재능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거야. 신께서 이미 재능으로 주었기에, 내 인생에는 희망을 주지 못했다고 여겼던 날을 절대 부정하지 않을 거야. 다정하고, 희망찬 사람으로 봐주는 집 밖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또 무너질 것 같아서, 또 그때로 돌아가 세상 모든 걸 탓하고 싶은 마음에 미칠 노릇이지만,


절대 언니 뜻대로 돌아가 주지 않을 거야. 한때는 히키코모리였던 그 동생이 이 넓은 세상을 얼마나 오래 누비는지 보여 줄게.

 

그리고 조금은 고마워. 요즘 일하는 나를 의심하는 시간이 길어졌었는데, 언니가 ‘그 히키코모리 동생’을 하소연 삼아서 돈 빌리고 다닌다는 소식에 정신이 번뜩 들었어. 그 말이 아직도 통하는 세상에 대항할 거야. 나, 한때 사회에서 튕겨 나가졌던 나였지만, 기어코 버티고 있다는 소식이 평생 내 근황이자 내가 전할 수 있는 안부가 되도록 나, 더 달릴 거야. 더 가 볼 거야.

 

그리고 언니는 엄마랑 아빠한테 지어 주지 않을, 지어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저 푸른 초원 위에 집. 내가 지을 거야. 견고하게 지은 그 집에 내 방을 더 견고히 둘 거야. 더는 아무도 나를 무너트릴 수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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